3주전 영월의 ‘잣봉과 동강’을 가면서 ‘단종애사’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09년 영월군은
서면을 ‘한반도面’, 김삿갓 묘소가 있는 하동면을 ‘김삿갓面’이라 개명하였는데 관광홍보를
위한 지자체의 고육책으로 이해하면서도 행정구역 명을 그리해도 되나 하는 아쉼이 있기도 하다.
오늘 그 ‘김삿갓’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영월읍에서 한참을 가면 ‘와석리’라는 곳에 그의 묘소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1807-63),
그 묘가 여기서 발견된 것은 그가 죽은지 119년만인 1982년이다.
김삿갓을 '삿갓 립'(笠)자를 써서 김립(金笠)이라고도 하였는데, 그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 났다.
평안도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반란군에
투항하는 바람에 집안이 멸족되었다.
그러나 어린 병연은 이 사실을 모른채 하인의 도움으로 겨우 형과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훗날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면서 영월로 옮겨와 살면서 과거에 응시했고 그 때 시험문제가
‘홍경래 난 때 김익순의 죄를 논하라‘ 였다.
김병연은 평소 실력대로 아주 실랄하게 비판한 글을 써서 장원급제 한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그 ‘김익순’이 친 할아버지란 말을 듣고 그 허망함을 달랠 길 없어 삿갓을 쓰고 전국 각지를
유랑하다가 57세에 전라도 화순에서 객사하였고, 훗날 둘째아들이 부친 유해를 찾아
영월에 묻는다
그는 가는 곳마다 시를 남긴 천재 시인이었다. 수많은 그의 시가 구전으로 전해오던 것을
그의 죽은 지 76년만인 1939년에 ‘이응수’가 ‘김립시집’을 펴냄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현재456편이 발굴되었다.
그에 대한 해석은 둘로 나뉜다. 박지원과 정약용의 뒤를 잇는 ‘사회비평시’로 보기도 하고
(주로 북한학자), 방랑과 풍자와 해학으로 타락한 세상을 보기 싫어한 희작(戱作)에
불과 하다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반사회를 풍자와 해학으로 비평하며 형식을 파괴한 면과, 민중의 애환을 달랜
민중시란 위상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 시 하나를 보자 ‘정신 바짝 차리고’ 한자씩 음미해 봐야 해석된다.
是是非非(시시비비)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꼭
옳은 것이 아니고
是非非是非非是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 이것은
그르고 또 그른 것이니)
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是非)일세
이해가 되십니까?
한시는 글자가 어려운 글만 난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밖에 모르겠다.
서늘한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
정겨운 임들과 함께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던
호음산(虎音山.虎陰山.930m)
거기를 간다....
김삿갓의 자유함을 한번 폼 잡으면서..
거창IC를 나와, 좌우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이 즐비한 길을 돌고돌아
무주로 넘어가는 빼재(신풍령)로 향하던 버스는
신풍령 바로 밑 3거리에서 북상면 방향으로 좌회전 했고
그렇게 산행은 출발하는데
'윗칡목재'란다. 해발 700m
백두대간이 삼봉산을 지나 빼재(신풍령)에서
갈미봉, 대봉, 지봉, 귀봉, 덕유산 주능선 백암봉,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으로
내 달리는데, 그 백두대간의 갈미봉에서 갈라져서
칡목재를 거쳐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은 시루봉(960m)과 호음산(930m)을
가파르게 곧추 세우고, 결국 수승대(搜勝臺)가 자리한 위천천으로 내려가는거다
'칡목재'라 칡이 많은가?
가파른 길을 밧줄에 의지하여 오르는데
가능하면 이런 비탈 길은
앞에 남정네 보다는 예쁜 여성분이면 덜 힘든다
오래전부터 그런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만 그런가? 덜 된 수행탓인가?
그렇다고 골라서 줄 서지는 않는다
그 가파른 길을 오르면 아늑한 숲이 이어지는데
계속 힘들어야 한다
장마철 처럼 며칠동안 이어진 비가
그친 것은 좋으나 습도 높은 길에
바람 한점이 없고..
오르면서 빠꼼히 되돌아 본
덕유능선...
하루종일 조망을 볼 줄 알았는데
장상전까지 이 조망이 전부였으니...
호음산 정상까지 6.2K는 종주길 처럼
오르내림이 계속되고...
그 시가 생각났다
조운님이 쓴, '산에가면'..
'산에가면
나는 좋더라
바다에 가면
나는 좋더라
님하고 가면
더 좋을네라만!'
어쩜, 그리 내 마음을 적었을까?
딱 그 맘이다. 님하고 ...
꿈이 이뤄진다던가!
지리종주 때마다 어느 대피소든 하룻밤 자면서 별을보고, 달을 봤으면..
꿈이 이뤄질 모양이다
이번 추석 연휴, 대피소 하룻밤이 당첨되었다.
청명한 날씨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렇게 오르내리며 도착한 곳은
'하수내 갈림길'
겨우 1.3K를 온거다
'소남봉'(867m) 이란다
하회장님이 눈을 감았지만 어쩌나 소남봉 사진은 이뿐이니...
촬영할 때 '하나,둘,셋..'을 안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막걸리도 나누고 ..
'시루봉'은 우측으로 향한다. 산 허리를 돌기도하고
소나무 한그루 구경하기 힘든
굴참나무 구간도 지난다.
호음산 정상까지
좌우의 좋은 산줄기를 두고도 전혀 조망할 수가 없다
여름 그늘은 좋으나..
출발지 칡목재가 700m 이고
최고봉 시루봉이 960이니
많이 오른 것도 아니면서 오르내림으로 힘듦은 여전하다
함께 살아가는 정겨운 임들..
혹 '지란지교(芝蘭之交)'는 못되더라도
'그리움'이라 하자 우리는.
굵은 굴참나무 아래로는 융단처럼 포근하다
오늘 산행은 바위하나를 보기가 힘들 정도로
전형적인 육산이다
사진을 찍을테니
'한 줄로 잘 서시오!'
... 참 착한 분들이다.
'너무 한 줄로 잘 서니 얼굴이 안 보이오!
얼굴들은 좌우로 돌리시오!'
웃는거다 그래서..
누가 붙였나?
최고봉 시루봉 나무 팻말이 장상 조금 아래
있고.
여기가 최고봉 '시루봉(960)' 이다
3.9K를 오르내린거다
거기에 삼각점이 있다
측량기술이 근대적일 때 측량은 할적마다 오차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위성으로 측량한다.
정상석은 없고 가운데는 묘지가 있다
시루봉은 오늘 산행의 최고점이다.
조망은 안되지만..
같은 위치의 사진을 다시 올린 것은
필자가 있어서가 절대 아니다
회장님과 늘 에너지 넘침의 '막걸리님' 때문이다.
거기서 한 참을 쉰다
힘들게 오른 길을 한참을 비탈길로 내려 가야한다
아깝기 그지없고..
산객이 드문 탓일까?
가을을 헤치며 나가가는 길이 좋다
가을이 그렇게 시작된다
겨우 덕유능선이 꿈결처럼 보인다 구름속에..
아! 향적봉..
지난 5월말, 그 종주길을 걸었다..
온갖 먹을 것들이 쏟아진다
문어, 족발, 각종 과일..
그렇게 점심을 먹고..
거창은 참 좋은 산들이 즐비하다
이제 호음산으로 간다.
'온곡' 갈림길이다
여기에 오면 호음산은 700m만 남은거다.
그렇게 정상에 도달할 무렵,
벌써 가을은 벌겋게 시작되고..
드디어 '호음산(930)' 정상에 선다
형상이 호랑이가 달리는 형상이라는 설과
호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는 설이 있다
빽빽한 나무들로 인하여 가끔 하늘만 뵈던 종일 길에
여기서 훤하게 뚫린
파노라마를 본다
북쪽으로 덕유 종주길... 향적봉부터 좌측으로 남덕유까지..
남으로는 현성산, 금원산 기백산, 오도산...
멀리 지리산도 아련하다.
정상석은 좀 ..
'거창한 거창'이 세웠다지만
좀 희화화 한 느낌이다.
아! 되돌아 본 지나온 시루봉
그 너머로 백두대간 삼봉산..
좌측으로는 남덕유까지 그렇게 이어진다
이제 황산마을까지 5.5K
안연하고 걷기좋은 길이다.
고단 했을 옛 사람들의 삶의 자취도 본다
여기서 밭을 일구고, 자식을 낳고,
그렇게 살았겠다
가끔 빗방울도 떨어지다가
좋은 햇살도 났다가 ..
편안한 길이다.
화사한 햇살은 머리위로 내려앉고
포근한 길은 누군가의 추억의 길이리라
작은 정원 같은 계곡도 만나고
맑은 물소리가 좋다.
그렇게 내려서면
'황산 저수지'를 만나는데
오랜 가믐 탓인지 ..
거기에 파라솔을 펴고 누군가 낚시를 한다
'옆 여인은 부인이 아닐거라고, 부인일리가 없다고...
한마디씩 한다.
부러워서 그럴거다
그렇게 3.9K 를 내려 온거다
여기서 수승대까지는 황산마을을 가로질러
내려가야한다
그러니까 백두대간 '갈미봉'에서 분기하여
동남쪽으로 그렇게 뻗은 산 줄기인거다
이 꽃 이름을 올리니
'강활'이라고 답하는데 그건 아닌듯 하고
'마타리과에 속한 '뚝갈'이 맞는듯하다.
이 꽃은 '마타리'일 확률이 90%
라고 답변이 온다.
그렇게 황산마을의 들판에도
가을은 왔다
그 마을 끝으로 위천천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꿈 같은 산들이 이어진다
이제 추석이 가까이 왔다
빨간 사과가 참 곱고..
그렇게 노란 풍요의 황산마을 들판을 내려오며
고향생각을 한다 이 논은 우리 아버지 닮은 부지런한 농부,
저 논은 게으른 농부...
그렇게 평가들을 하며
대추도 가을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이제 발갛게 되어 갈거다
부지런한 우리들 엄마는
추석때 올 자녀들을 위해
참깨도 곱게 말린다.
그렇게 그 너머로는 작년에 올랐던 현성산..
그 현성산은 우측으로 돌면 수승대로 떨어지고
좌측으로 이어지면 금원산 이었다.
그렇게 마을 끝에는
모과도 익어가고...
오랜만에 보는 맨드라미도
곱게 피었다.
그렇게 도착한 '수승대"
수승대(搜勝臺), 명승 제53호이다 널따란 화강암 암반으로
깊은 계곡과 숲이 어우러져 탁월한 자연경관을 이룬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였던 이곳은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을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 한다.
.
1543년 퇴계 이황이 이곳의 산수를 보고
속세의 근심을 잊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고 격찬하며
수승대로 바꿔 부를 것을 권하여
수승대(搜勝臺)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는 한바퀴돌며 거북 모양의 바위인 암구대,
자고암이라는 암자를 비롯하여 거창의 대표적인 정자 요수정(樂水亭),
구연서원(龜淵書院)의 문루격인 관수루(觀水樓) 등을
둘러 봐야하는데 자주 와 봤다는
교만으로 포기 했으니...
무더운 날씨에
라커룸까지 갖춘 샤워실에서
더구나 공짜로 샤워까지 마치니
거창군에게 큰 고마움을 전하고..
보호수 은행나무와 세월에 뒤틀린 버드나무를 보며
잠시 고향 연못 가를 사무치게 그리워도 해본다.
거기에 '이태사랑바위'를 본다
드라마 동의보감에 허준의 스승으로 나왔던
'유의태'를 유이태라 했단다
한 여인이 나타나 입마춤을 하며 구슬을 주었고...
이 글을 일고난 느낌은 유의태가 사랑을 포기하고
그래서 여인은 여우가 되고 자기는 위대한 의원이 되었다는 스토리인데
좀 아쉬웠다
나 같으면 여인의 사랑을 물리치지 않았겠다.
의원이야 딴사람이 해도 되지 않겠나....
그렇게 명승 '수승대'를 돌아보고 ..
정겨운 님들은
이른바 치맥 잔치를 하며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했던 하루..
벌초객들로 막히는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 돌고돈다
'배호'의 노래가 빗소리와 함께 처연했으니..
그렇게 걸었던 13K여의
길....
벌초의 기계소리가 요란하던 날..
서두에 말한 김삿갓은 이랬을까?
자유인으로의 그의 삶은 부럽기도 하다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그렇게 그의 묘는
영월의 감삿갓면 '와석리'에 있다.
그와 함께 한 하루
그 시를 한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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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 김삿갓
천황씨가 돌아간 거냐 인황씨가 돌아간 거냐?
온 나무 산들이 모두 상복을 입었구나
내일 만약 볕을 보내 조문을 하게 되면
집집의 처마마다 눈물이 흘러내리리라.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래조)
家家簷前淚滴滴(가가첨전누적적)
'山行..그리움따라 > 경남.부산.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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