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아! 지리산

반야봉,뱀사골(성삼재-반야봉-삼도봉-화개재-뱀사골-반선.19K)

산꾼 미시령 2015. 7. 27. 09:28

 

창시절, 이데오르기와 사회학이라는 세미나를 한 학기 공부한 기억이 있다. 다 잊어버렸지만

이데오르기가 얼마나 인간을 비인간화 하는지 통렬하게 기억된 바가 남아 있는데

 

이데올로기즉 '이념'이란 각자의 종교적 신념과 같아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좋고 나쁘다를 평하는 것은

종교적인 싸움과 다를 바 없는 것이며, 그래서 지금도 사이좋은 친구끼리나 형제간에도 술한잔 하다가 심지어 조상제사 드린후 한반중에도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상을 둘러 엎는 싸움으로 끝난다

 더 나아가 문제는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때론 형제도 부모도 두 번째이고, 자기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것이니 그 예 중 하나가 지리산의

이른바 빨치산이리라. ....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에서 나온 이 말은 적의 배후에서 비정규전(게릴라전술)을 펼치며 통신,교통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기나 물자를 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이른바 별동대 비정규군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전후에 각지에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를 이른다.

 

 지리산를 오를 때마다 이 좋은 시절에 산만 오름도 힘들어 숨이 막히는데 불안하게 이 능선 저 골짝에서

영하의 혹한를 참아가며, 쫓고 쫓기는 전쟁. 벌써 60여년전에 지리의 구석 구석의 능선과 골짝에서 원치

않은 전쟁에 운명처럼 내 몰려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젊은 빨치산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는 일조차 역적이 되었으니....

 

기록에 의하면 49년 이래 5년여에 걸친 소백·지리지구 공비토벌전에서 교전회수도 10,717회 전몰 군경의 수 6,333 , 빨치산측 사망자수 줄잡아 13천여명등 피아 2만 여명의 생명이 지리산 골골에 묵혔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민족의 비극이다.

  사실 이념이 무엇인가조차 모르며 다만 살기위하여 이리저리 내몰리다가 빨치산이 되고  역사에서 이들은 은 버렸고 이 저주한 최후전선 빨치산!.이 되었다

  지리산에 올라 지리산에서 스러져간 불쌍한 영혼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을 떠올린다...

 

지리산 종주때마다 새벽에만 왔던 '성삼재' 오늘은 10시가 다되어 출발한다,

태풍전날의 고요함은 바람 한점없이 습한 날씨에 강렬한 햇살이다.

여기서 노고단 고개까지는 2.5K이다.

길은 좋지만 계속 오름이고 새벽에도 땀이 젖는다

그 노고단 고개까지의 길은 종종 도로를 벗어나 숨가픈 지름 길로도 간다

 20여분 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닿는다.

여기서 노고단 고개까지는 400미터이다.

이윽고 도착한 '노고단 고개' 여기서 천왕봉 종주길은 25.5K이고

오늘 오를 반야봉까지는 5.5K이다.

이 고개 우측에 '노고단'이 있으나 좀처럼 오를 기회가 없다.

천왕봉에서 여기를 건너다 보면 저 노고단이 보인다 아련히...

종주 때면 새벽 공기가 '미치게' 좋았던 그 길을 간다  

5월 16일, 지리종주 때에는 지리산 능선답게 계절이 늦어 잎새도 막 띄였었는데

 이젠 한 여름이다. 야생화가 지천이고...

아! 그 날 운해가 가득했던 지리의 모습이

오늘은 맑은 여름 빛에 확연히 드러난다.

멋진 구름도 그렇고

 

아련한 그리움...

그 새벽 일출을 봤던 '돼지령'을 통과한다.

거기 있었다 말없이..

그 곳에는 눈길 닿는 곳마다 야생화가 지천이고

이윽고 지난 6월7일,  피아골에서 올랐던 3거리를 만난다.

5.3K를 온거다.

냉장고에 있던 물처럼 시원한 약수가 유명한 '임걸령'이다

지리 종주시엔 곳곳마다 물이 지천이다

그 물은 변함이 없는데...

그 임걸령을 나서자마자 가파른 계단이 끝없다.

무더운 날, 지리 종주길도 바람이 없고

도착한 '노루묵'여기서 반야봉, 삼도봉은 방향 바르게 각 1키로이다. 대부분 종주길에는

반야봉을 오르지 못하고 삼도봉으로 간다.

한 달여전 올랐던, 오늘 주 목표인 반야봉! 오른다.

반야봉 오름은 인내를 시험하는듯, 힘듦의 연속이다. 

마지막까지 그 반야봉은 숨어있다

햇살이 뜨겁고

앗! 한 달여만에 정상석이 바뀌었다.

훨씬 멋지다.

반야봉(般若峰)은 지리의 제2봉으로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여

반야낙조(般若落照)는 지리십경의 하나로 꼽힌다.

그 날 처럼 옆으로 비켜서서 천왕봉쪽을 바라보지만 

구름속에 묻혔다 천왕봉은... 그래도 그리움이 몰려는 오는 건어쩔 수 없고 

걸어온 노고단 쪽 방향을 설명한 사진이다 

(봉우리를 비교하기 위하여 옮겨온 사진 4장이다) 

그리운 그 길은 그렇게 이어지고..

종주시에는 저 봉을 다 가는거다

왜 이 봉들을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사무치게 그리울까?

오늘 그대로의 모습이다. 출발점 노고단쪽이다

6월 7일 출발지었던 피아골 방향도 보고

이제 급히 내려가자 갈 길이 멀다.

삼도봉 가까이 종주길 옆에 한 무덤이 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에 이렇게 묻히고 그것도 종주길 옆에 자리하니

참 부러운 고인이다.  야생화의 향기와 함께 명복을 빌어드린다.

가파르게 오른 삼도봉, 전북,전남,경남의 경계점이다.

삼도봉을 내려서며 멋진 계곡도 내려다보고..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길은 300여 미터의 긴 계단이 끝이없다.

하마터면 발목 다칠 위험이 있으니...

내려선 '화개재'... 바람이 그래도 시원하다.

화개재를 시계처럼 한 바퀴돈다. 아쉼에...

동쪽 방향으로 이 계단은 종주길 천왕봉을  향하는 길인데 아쉼에 담아본다.

오늘은 여기서 뱀사골로 내려가야한다.

원추리가 가득한 화개재. 방금 내려온 삼도봉이다.

아쉽게 능선 길을 벗어나려 한다  

여기서 종주길 '연하천 대피소'는 4여K, 

오늘 내려갈 '반선' 까지는 9.2K이다

그 길은 출발부터 거친 계단, 거친 너덜길이다.

비온 뒤의 그 길은 더 미끄럽다

200여 미터를 내려오니 바로 뱀사골 계곡은 시작되어 

그 물소리는 10K여를 이른다  

생채기 난 길... 사람의 오감에 어찌하랴

수만은 폭포, '소'의 이름이 있지만 구별하려니 

사진올림의 용량이 부족하다  

그러나 어떠랴 이 계절, 시원함이 있으면 그만이다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전설에 따르면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선 칠월 백중날 신선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어느 대사가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려는 스님의 가사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다.

 

다음날 뱀소 부근에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고 하여 뱀사골이란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무기에 죽어갔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반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뱀사골 입구 동네를 반선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리산

-김지하-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숲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

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

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히 흘러

울부짖는 것이여

깃발이여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한 자루의 녹슨 낫과 울며 껴안던 그 오랜 가난과

돌아오마던 덧없는 약속 남기고

가버린 것들이여

지금도 내 가슴에 울부짓는 것들이여

   

얼어붙은 겨울 밑

시냇물 흐름처럼 갔고

시냇물 흐름처럼 지금도 살아 돌아와

이렇게 나를 못살게 두드리는 소리여

옛 노래여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숲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타는 목마름으로, 창작과비평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