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vs 설악산
월간'산 2026년 10월호'에는 재밌는 기사가 나온다.
지리산 vs 설악산, 두 산의 매력을 드러내고자 토론 형식을 빌렸을 뿐, 우열을 가리려는 목적이 아님을 밝히면서
재밌게 이어 나갔다.
‘지리: ‘설악은 까칠해’, 설악: ‘지리는 지루해’
〔지리산〕: 모두가 내 품에 안겨 살아. 내 치맛자락에 있는 행정구역만 5개야.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지.
화개장터 알지? 거기도 내 품에 있어. 이게 뭘 의미하냐면, 나는 단지 어느 한 지역의 산이 아니라는 거야.
내 품에 들어오면 그 어떤 경계도 산산이 무너지고 흩어져.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지.
한반도 아랫목에서 만물을 굽어보고 살피거든. 그에 반해 너는 북동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잖아.
위치 선정부터 이미 나와 상대가 안 돼.
〔설악산〕: 치우쳐 있다고? 덕분에 나는 눈 시린 푸른 바다를 지녔지. 육지에 갇혀 있는 너는 답답하지 않니?
산에서 보는 동해바다가 얼마나 멋진데. 옛말에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 했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지. 나는 그 둘을 다 가졌으니 완성형인 셈이야.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데, 물 구경하기 힘든 너와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이네?
〔지리산〕: 천만에 말씀! 내 이름 ‘지리智異’가 무슨 뜻인지 알아?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뜻이야. 삶에 지친 많은 이들이 내 능선을 하염없이 걸으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기도 해.
이건 오직 나만이 가진 길고 부드러운 능선의 힘이야. 능선을 걷는다는 건 평지를 걷는 것과 의미도,
느낌도 전혀 다르지. ‘종주’라는 단어 앞에 가장 어울리는 산,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설악산〕: 종주? 좋지. 그런데 산에 수평만 있니? 나에겐 수직의 세계도 있어. 네게는 가끔 보이는
귀한 바위가 내겐 지천으로 널렸거든. 히말라야와 알프스로 떠나는 이 땅의 숱한 산악인들은
내 안에서 꿈을 키웠어. 실내암장에서 힘을 기르던 클라이머들이 결국에 찾는 곳도 나지.
공룡능선과 울산바위의 위용을 봐. 괜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암절벽이 아니라고.
북한에 금강산이 있다면 남한에는 나, 설악산이 있어.
〔지리산〕: 바꿔 말하면 너는 그만큼 척박하고 까칠하다는 거야. 등산객들이야 찾아오겠지.
그런데 네가 거느린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중요한 건 내품에 코 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나는 골짜기마다 마을이 들어서 있고, 굽이굽이 사람 사는 냄새와 전설이 서려 있어.
섬진강·남강·황강 모두 나로부터 시작돼. 사람들은 나의 젖줄에 기대어 살아.
내가 괜히 여러 대하소설의 무대가 된 게 아니라고.
〔설악산〕: 대신 나는 예술가들의 영원한 뮤즈지. 산꾼들 사이에 낭송되는 진교준 시인의
‘설악시 얘기’ 들어는 봤어?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이 황홀한 바위 풍경 앞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자신을 성찰하게 돼.
네가 역사와 이념을 아우르는 묵직한 서사시라면, 나는 한 인간의 오감을 깨우는
서정시라고 할 수 있지.
〔지리산〕 : 솔직히 너는 남북분단 전까지 금강산의 아류 취급 받았잖아. 반면에 나를 봐.
1967년 지정된 대한민국 국립공원 1호라고. 명실상부 국민 모두의 산이 된 거야.
예로부터 백두산·한라산과 함께 한반도의 삼신산三神山 또는 민족의 영산으로 불린 역사가 있어.
정상석에 새겨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야.
천왕봉에 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껴.
〔설악산〕: 네가 국립공원 1호라면, 나는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국내 1호야.
그리고 이름값보다 중요한 건 결국 콘텐츠지. 해발 1,500m가 넘는 산 중에 이런 화강암 비경을 가진
산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다들 너처럼 심심한 흙산들뿐이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토왕성폭포와 대승폭포는 어디에 있게? 백문이 불여일견이야, 일단 천불동계곡 한번 들어와 보면
거울에 비친 네 모습이 영 싱거울 거야.
〔지리산〕: 그 화려함도 자꾸 보면 물리는 법이야. 나는 평양냉면처럼 첫맛은 슴슴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지.
젊을 땐 화려함에 끌리다가도, 결국 나이 들면 다들 담백함을 찾아. 네가 전시된 예술품 같다면,
나는 오래된 고향 집 같지. 해발 1,500m에 펼쳐진 넉넉한 벌판, ‘늙은 할머니’ 같은 노고단,
이름부터 신비로운 뱀사골과 피아골은 오직 나만이 품을 수 있는 것들이야.
〔설악산〕: 고향 집도 일단 가기가 편해야지. 나는 이제 서울에서 2시간이면 닿는 반나절 생활권이야.
한계령과 미시령 옛길을 넘던 고생은 옛날 이야기라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등산객도 나를 더 찾잖아.
그건 곧 내가 세계 기준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K-마운틴’이라는 뜻 아니겠어?..
(이상 월간 산26년 10월호 전재)
그렇다. 지리와 설악은 영원한 우리 민족의 선물이고 축복이다. 우열을 가릴수 없는..
서울에서야 설악이 편하겠지만 남녘의 우리는 전혀 계획이 없다가도 새벽 눈이 떴고
갑자기 마음이 동하면 간단한 짐을 꾸려 달려 가기도 하는게 ‘지리’다.
그러나 설악은 참 멀다. 이러다 저러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힘들게 달려가 대청봉을 못 오름이 아쉼이지만 어느덧 수십년 지난 울산바위코스를 다시 간다니
설레는 맘으로 거기를 간다.....

▲ 붉고 푸르던 단풍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산은 색을 내려놓고,
오직 흰 눈과 검은 바위, 푸른 하늘만으로 풍경을 만들어낸다.

▲아직은 더위가 남은 가을 어느 날, 설악산을 찾는다.
설악은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먼저 설레는...

▲'曺溪禪風始原道場雪嶽山門'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
“조계의 선풍이 처음 시작된 수행의 도량, 설악산의 산문”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온 기암괴석과 깊은 계곡,
그리고 가을이면 온 산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단풍은
언제 찾아도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을 맞는다.

▲신라의 도의국사가 중국에서 선종을 배우고 돌아와
설악산 진전사를 중심으로 선의 가르침을 펼친 것을 기념하는 의미
그래서 이 산문을 지나 설악산에 들어서는 것은 단순히 산에 들어가는 것을 넘어 선의 정신이 깃든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선다는 의미겠다.

▲통일대불, 높이: 약 14.6m, 1987년 착공하여 1997년 완공한 청동불상이다.
70% 이상이 실향민이었던 속초시민들을 중심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성되었다.

▲ 흔들바위까지는 1.9K, 거기서 부터 울산바위는
다시 가파른 1K를 걸어야 한다.

▲다복했던 아이들 어린 시절 들었던 설악의 골골들,
대학 졸업여행 때 감격으로 올랐던 대청의 여운과, 다음날 올라 울산바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안고
거기서 내려다본 아련한 미시령 옛길을 보고 그 날부터 내 닉네임은 '미시령'이 된다.

▲아스라이 먼 듯한 기억들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손가락처럼 설악의
어느 자락 언저리에 닿기만 하면 전율처럼 솟아나 골골마다 새겨진 추억들이 영화처럼 흘러간다.
먹먹함으로..

▲설악은 마등령- 공룡능선-대청봉-한계령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을 깃점으로
동쪽, 그러니까 설악동 방향을 ‘외설악’이라 하고, 서쪽 ‘백담사’방향 인제군 쪽을 내설악’이라하며,
남쪽 ‘오색’방향을 ‘남설악’이라 한다.

▲또 설악은 대청봉에서 분기한 거대한 4개의 능선이 있는데 제일 오른쪽
'화채봉-칠성봉- 집선봉- 케블카 타고 오르는 권금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화채능선’이라 하는데 비법정 탐방 구간이다.

▲그리고 ‘공룡능선’의 백두대간이 있고
그 공룡의 좌편에 설악의 심장부 ‘용아장성’이 있는데 언젠가는 안전시설이 보완되고
갈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중청봉에서 끝청-설악의 바람의 성지 ‘귀때기청’- 대승령- 안산,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12선녀탕’, 가슴 아픈 조난사고의 아픔을 지닌 그 계곡 길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있다.

▲설악의 핵심 ‘공룡능선’....
한 마디로 압축 한다면, 군대 유격장에서 적어도 7개의 긴 내리막과 오르막..

▲ 그러니까 긴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그 만큼의 내리막이 있다는 걸 반복 체험 해 보는 5K 길,
그리고 설악동 방향이든, 백담사 방향이든 마등령에서
다시 3시간 더 되는 긴 하산 길이 기다리는 힘든 길 이었다.

▲그러나 '힘들다'와 함께 그 곳에서 느낀 희열감은 그 모든 힘듦을
상쇠하고도 남을 만큼 멋진 곳, 국내 산행지중 최고의 꿈 같은 답사 길로 추억된다.

▲아직 여름의 날씨는 설악이라 두꺼운 옷들을 입은 남녘의 사람들에겐
둔한 느낌.

▲ 마지막 화장실이 요긴하다. 인산인해의 바윗길은
몰래 노상방뇨는 할 수 없는 여건이니까.

▲어느덧 세월은 여러 해가 지났다.
꿈의 22K 공룡능선 종주도, 23K의 서북능선 그 길도....
이제는 진한 그리움의 추억이 되었다.

▲설악(雪嶽)!
그 가슴 설램의 거기, 가슴 한 구석에 고향의 아련함처럼
그렇게 서 있다.

▲‘대청’이 그렇고, ‘중청, 소청’이 그렇고, 최고의 아름다운 답사 길
‘공룡’이 그립다
연인 또는 친구의 조난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이들이 지은 ‘설악의 노래...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을~~
저 멀리 능선위에 철쭉꽃 필적에
그녀의 손을 잡고 걷던 계곡 길~~♪~~.

▲ 흔들바위에 닿는다.
계조암(繼祖庵)이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높은 경지의 스님을 조사(祖師)라 하는데
‘조사의 법맥을 이어가는 암자’라는 뜻.
신라시대부터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한 것으로 전해지며, 자장율사를 비롯해 원효·의상 등의 이름과
관련된 전승이 내려온다.

▲계조암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암굴을 그대로 법당으로 삼았다는 점
석굴 안에는 아미타불과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고 암자 앞에는 쌍용바위와 식당암이,
그 앞에 흔들바위가 놓여 있다.

▲위쪽에는 거대한 울산바위가 솟아 있어
설악산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고 흔들어 보았을 그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쉽게 움직일 듯하면서도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모습이 묘한 감동을 준다..

▲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
문득 그것이 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바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울산바위를 향해 걷는다.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계단도 이어졌지만,
눈앞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힘을 북돋워 주었다.

▲대학 수학여행시 그 추억을 잊지못해 아이들 초등학교시절 비오는 이곳을 올랐다.
징징 울어대는 아이들을 달래며 끝까지 같으나 조망은 꽝이었다.
거기서 라면을 팔고있는 움막이 아니였으면 지금까지 원망 들을뻔.

▲그 아이들은 어느덧 40대가 넘었고
그 날처럼 또 아이들을 손잡고 여기를 오르겠다.
세월은 그런것...

▲전국 어디가나 발견되는 상처...
일제 강점기 송진을 채취한 아픈 역사흔적이다.

▲설악산 끝자락의 속초와 고성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울산바위는
수많은 전설과 함께 고성지역에서 바라본 그 경관은 자연의 위용과
예술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암절벽의 극치다.

▲해발 873m인 울산바위는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가 4㎞이며 6개의 봉우리로 어우러져 있다.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면 높이 솟은
기암절벽과 절벽의 아래를 둘러싼
푸른빛이 참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아! 저기는 백두대간 황철봉,
그 좌측 오목한 곳이 공룡능선 끝 마등령이다.
거기서 오색-백담사로 가거나, 비선대로 하여 설악동 방향으로 내려선다.

▲울산바위의 최고의 조방은 고성의 화암사 가는 길로 올라 봐야한다.
대명콘도 골프장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옛 미시령 길을 드라이브할 때에도 울산바위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다.

▲울산바위는 그 웅장함 때문인지 명칭에 대한 3가지 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울타리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또 하나는 우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그리고 듣는 이마다 가장 재미있게 여겨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되는 설이 하나 있으니 ....

▲전설에 따르면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잘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에 모이도록 불렀다.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의 1만2천봉에 함께하고자 길을 떠났으나...

▲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금강산을 코앞에 둔 미시령에서 잠시 쉬어가고자 앉았다가
설악산에 이르러보니 이미 금강산은 모두 빚어지고 말았다.
울산바위는 그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고향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도 없어
설악산 미시령에 그대로 눌러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 후일담 격인 설화도 재미있다.
먼 훗날, 설악산 울산바위 근처에 있는 신흥사의 주지에게 울산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가
"우리 바위가 거기 있으니, 너희들이 바위세를 내라." 라고 강요했다.

▲ 그리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몇 년 동안 바위세를 바쳤는데,
조금만 늦어져도 닥달을 하고 계속 못살게 구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진 신흥사의 동자승이.

▲ "우리도 울산바위가 자리를 차지해서 그 자리에 농사도 못 짓고 손해가 크던 상황이니,
울산 사또가 우리에게 피해를 보상해주던가 아니면 바위를 도로 가져가시오! ....

▲이에 할 말이 없어진 울산 사또는 다시 꾀를 내서
"태운 새끼줄로 바위를 묶는다면 바위를 가져가겠다." 라고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똑똑한 동자승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청초호'와 '영랑호'에서 자라는 해초로
새끼줄을 꼬아서 소금물에 푹 절인 뒤 울산바위를 묶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물기가 마르자 새끼줄 겉에 기름을 바르고
거기에 불을 붙였는데, 소금기 때문에 안은 멀쩡하고 겉만 새까맣게 타버렸다...

▲ 이후 울산 사또에게 "자! 우리가 사또의 요구대로 했으니
어서 바위를 가져가시오!" 라고 재촉하자,
울산 사또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간 뒤 더 이상 바위세를 요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건 이후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지역을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 자를 써서
"풀을 엮다" 라는 뜻의 '속초(束草)'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 원래 울산바위라는 이름은 이 바위에 번개가 칠 때
천둥소리가 메아리쳐서 울리는 현상 때문에
산이 운다, 또는 산이 울린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 전설은 우연히 발음이 같게 된 사실에 착안하여 추후 끼워맞췄다는 것,
이런 식으로 동음이의어를 연결시켜는 민간어원은 원래 상당히 흔해서, '
울산에서 달려온 바위'라는 해석보단 '울음+산'이 원형일 가능성이 훨씬 높겠다.

▲고성군 속초시가 허락할 일도 없겠지만 울산에서 반환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가졀 갈수 있으랴....

▲또 여기 있어서 대청봉, 공룡능선도 볼수 있어 그 가치가 있는거지
울산으로 간다면 울산시민들이야 먹여 살릴수 있겠지만
그 또한 헛된 상상이겠다.

▲수없는 뺐고 빼앗기는 전투였지만 6.25전까지는
30도 선 이북에 설악이 있었으니
이 설악만 생각하면 빼앗길뻔한 아찔한 산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암봉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펼쳐졌다.

▲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을 견뎌온 바위 앞에서
인간의 시간은 참으로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걱정하고 애태우던 많은 일들도 이 산 앞에서는 잠시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가을 햇살은 울산바위의 능선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단풍은 붉게 물들고,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갔다.
한참 동안 말없이 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해졌다.
어쩌면 여행이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잊고
지냈던 자신의 마음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겠다.

▲화강암, 현무암의 차별 침식으로 크게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고 작은 봉우리까지 고려하면 30여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설악산은 1970년 5번째로 국립공원이 되었다.
1965년 전체가 천연자원보호구역이 되었으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 되었다.

▲석문, 몰래 비탐지역으로 서봉을 다녀오는 이들은
이 문으로 아무 일 없다는듯 시치미를 떼고 여기로 온다.

▲아칠한 808계단이었던 시설은 철제계단으로 바뀌어 수훨해졌으나
이를 기획한 이도, 한장 한장 시설한 분들도 대단하단 생각.

▲척박한 자리에서 자리를 잡아 늠름한 자태를 뽑내는 적송들..
묵묵히 자리를 지킨 그 위엄에 박수를 보내지만
고단한 삶이 애처로웠다.

▲쾐찮다고 괜찮다고 도리어 위로한다.
양희은의 한계령 노래를 불렀다.
산은 나에게 울지 말라고 하고, 잊으라고 하고, 마침내는 내려가라고 한다.

▲ 힘들고 지친 마음을 억지로 붙잡기보다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듯....

▲ 바람이 인상적이다.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산과 산 사이를 떠도는 바람처럼,
지나간 아픔과 욕심을 내려놓고 조금은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겠다.

▲〈한계령〉은 단순히 쓸쓸한 산 노래라기보다,
“힘들었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노래”
이겠다.

▲ 뒤로는 화채봉이다. 대청봉에서 몰래 그 능선을 타기도 하는데
그 끝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권금성이다.

▲ 멀리 대청봉에서 중청- 소청을 거쳐
공룡능선이 화려하다. 공룡능선은 희운각 대치소옆
무너미 재에서 천불동과 헤어진뒤 시작된다

▲신선대봉에서 마등령쪽의 공룡능선을 보면 숨이 막힌다.
그 시절이 그립다.

▲신선대- 1275봉- 큰새봉- 나한봉- 마등령으로 오르내리는
그 길은 힘들기도 하지만
꼭 일생에 한번은 가보고 죽어야 한다.

▲앞으로는 권금성, 아래로는 신흥사가 보인다.
우측 계곡이 그 유명한 천불동계곡이다. 그 오르내림도 힘들지만 좌우의 암릉들은
수학여행시절 거기를 다녀온 밤 친구 기도가 잊혀지질 않는다.
'하나님, 이제부터 조용하게 살겠습니다.' 그랬다.

▲ 좌측 봉이 달마봉이다.
그 너머로 속초 시내와 푸른바다가 아름답다.

▲서봉과 동봉으로 이뤄진 울산바위는
전망대가 있는 동봉에서 서봉을 보는거다.

▲울산바위는 단위바위로 아시아에서 제일 큰 바위란다.
우측으로 미시령, 금강산으로 이어진다.

▲모두 서양사람들이다. 여유있게 여기에 앉아 멍하니
서봉을 바라보면 온갖 시름이 치유되겠다.

▲그렇게 여유있게 앉아 여기를 본다. 하얀 눈이 쌓이면,
하얀 구름이 덮힌다면, 그 풍경은 숨이 막히리라.

▲우측으로 너른 동해바다와 고성- 간성을 거쳐 오르면
금강강 끝자락이 조망된다.

▲금강산을 가볼 기회를 놓쳤고 길은 막혔다.
죽기전 다시 남북이 화해하고 금강산 여행을 기대해 본다.

▲속초에는 두 개의 석호호수가 있다.
영랑호(永郎湖) 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진 자연 석호이고
호수 둘레를 걸으며 설악산과 울산바위를 바라볼 수 있어 산책하기 좋다.

▲ 청초호(靑草湖)는 시내에 자리한 큰 석호로,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데
청초호수공원과 엑스포타워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고,
특히 해 질 무렵 풍경이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어느시절 설악산 여행과 함께
영랑호 → 청초호 → 속초항 순으로 돌아봐도 좋겠다.

▲아! 미시령 옛 길,
아래로 터널로 이어지는 길이 새로 생겼지만 그 위의 미시령 옛길
여기서 거기를 바라본 대학수학 여행때 나는 그 후로 '미시령'이 닉네임이 되었다.

▲건너로 대명콘도, 여러번 아이들과 거기를 이용했었다.
그 우측 아래로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시 출발지였던 한화콘도다.

▲즉흥적으로 시를 한번 써 본다
「울산바위 앞에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울산바위도 수없이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눈이 오고
비가 내리고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을까..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주저앉고 싶었지만
돌아보면 나 역시
내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왔다..

▲울산바위여,
말없이 서 있는 너를 바라보며
오늘은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종일 동행한 총무님....여기 앉으시라 하면 앉고
오르시라하번 오른다.

▲속으로 욕해도 내 알바 아니다.
이 좋은 풍경속에서 불만이야 있겠냐마는...

▲가을 설악은 그렇게 내게 말없이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산처럼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거대한 바위.
가을 햇살을 받고, 저녁노을에 물들고,.

▲겨울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울산바위는 그 자리에 서 있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산과 닮았다.

▲젊은 날에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바쁘게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남는 것은 거창한 성공보다.

▲ 함께 걸어온 사람, 지나온 길,
그리고 오늘의 평온함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내 삶은 한없이 작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해진다.
“저 산도 저렇게 긴 세월을 견뎌왔는데, 나라고 어찌 몇 번의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가을 햇살이 바위 능선에 내려앉는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울산바위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고맙다.
말없이 서 있어 주어서.”.

▲거기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아 진수성찬을 차린다.
따뜻한 햇살, 아름다운 풍경, 넉넉한 바람은 덤으로...

▲건너 토왕성 폭포 전망대를 다녀온 님을 여기서 만나
함께 섰다. 늘 감사한 분들이려니...

▲가을 햇살처럼 아름다운 부부,
빛나는 그 삶이 오래오래 이시기를 ....

▲우측 건너로는 하늘의 정원 천화대(天花臺),
설악산에서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 일대의 암릉을 이루는 이름..
그 뒤로 세존봉 ...

▲이제 길을 내려선다 아쉬움두고....

▲이름 석자를 남기기 위해 무진 애들을 썼다 옛인들은...
하기야 그 시절 여기를 온다는 건 지금보다 수십배는 시간,
물질이 있었어야 하겠다.

▲다시 만나는 계조암.... 많은 조사님들이 이어지기를...
역사는 흐르고 섬기는 사람들이야 바뀌겠지만 수천년 다시 이어가기를...

▲흔들바위는
흔들리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두 손으로 밀어보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돌아갔지만.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저 바위와 닮았다고.
살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고
때로는 세상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흔들바위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오늘 그 앞에 서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나도 많이 흔들렸지만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내원암에 앉은 동료들...
마음의 편안함은 내려놓았기 때문이리라.

▲ 가을의 신흥사는 화려하면서도 조용하다.
바람이 불면 단풍잎 하나가 처마 끝에 내려앉고,
햇살은 오래된 기와와 마당 위에 가만히 머문다.

▲ 천년의 세월을 품은 절집의 고요함 속에서는
바쁜 일상의 소리도 어느새 멀어진다.

▲세월은 참 빠르게 흘러가는데,
산과 절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사람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 세월에 따라 모습은 조금씩 달라져도,
마음속에 지켜야 할 것은 잃지 않는 것.
가을 햇살 아래 신흥사의 단풍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계절의 끝이 보이고,
그 끝에서 다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가을은 쓸쓸하지만 아름답다.

▲우측으로 오르면 천불동 계곡, 오색에서 출발해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걷고
여기를 내려오기도 했고
무너미 재에서 천불동으로 오기도 했었다.

▲설악(雪嶽)!
그 가슴 설램의 거기, 가슴 한 구석에 고향의 아련함처럼
그렇게 서 있다. 골골에 새겨진 아픈 추억들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소공원에서 토왕성 폭포 전망대는 남동방향이다.
비룡폭포로하여 거기를 오르면
멀리 토왕성 폭포가 장관이었다.

▲단풍의 계절은 아직인데
소공원과 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소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산을 바라본다.
아까 보았던 울산바위가 저녁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나고 있다.
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서 있다.

▲오늘 하루 나에게 보여준 것들도 말없이 품은 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산행은 산을 정복하는 일이 아니라,.

▲산을 만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 아닐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물 한 모금 마신다.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하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이면 또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오늘 설악에서 보았던 가을 햇살과 바람,
그리고 울산바위의 모습은 한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소공원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산을 바라본다.
“설악아, 잘 쉬었다 간다.
다음 계절에 다시 만나자.”.

▲척산온천을 지나 순두부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석양에 빛나는 울산바위를 두고... 거기를 떠난다.

▲김홍도의 계조굴 그림, 그의 금강사군첩에 나온다
세월은 흘러 풍경은 달라졌지만,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옛 그림 속 계조굴을 바라보며
설악의 깊은 침묵을 잠시 생각해 본다.

▲겨울 울산바위.


▲미시령 옛길 전망대나, 대명콘도에서 바라보면 이 모습이다.
경탄경탄....
그렇게 5시간을 달려간 그 곳,
다시 5시간을 내려오면서...
다음에는 또 다른 계절에 오리라.
눈 덮인 겨울이든,
연둣빛 봄이든,
붉게 물든 가을이든.
그때도 변함없이
그 넓은 품으로 나를 맞아주렴.
잘 있거라, 설악아.
오늘 하루 참 고마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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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악 가/ -이정훈 작사, 작곡-
1.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2. 저 멀리 능선길에 철쭉꽃 필적에
너와 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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