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상북도

경북상주 갑장산(갑장산(甲長山, 805m/용흥사 주차장- 용흥사-삼거리-문바위-나웅바위- 정상-갑장사-상사바위- 문필봉- 상산- 용흥사주차장. 7.3K, 4H)

산꾼 미시령 2026. 6. 22. 09:47

尙州(상주)’

 우리나라를 지칭할 때 흔히 ‘3천리 금수강산’. ‘전국 8로 말한다

태종13(1413)에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거기에 감영을 설치했는데 가장 넓은 지역은 慶尙道였고

낙동강을 경계로 서울에서 볼 때 좌측을 경상 , 우측을 경상 도라 했다.

 

그 경상도는 尙州慶州에서 첫 글짜를 따 왔다라고 알려졌는데 이미 통일신라 신문왕 5년부터

전국를 95소경으로 나눴고 가 들어가는 청주, 충주, 진주, 전주, 광주, 경주, 상주, 의주,

원주등의 도시이름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런 역사의 도시 상주를 간다 1, 17, 6동에 인구 약 94천의 상주는 동서간 거리와

남북간 거리가 50에 이를 만큼 넓다. 북으로는 문경, 동으로는 예천과 의성, 남으로는

구미와 김천에 접해 있으며, 서쪽은 충북괴산과 보은, 옥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서산-영덕 고속도로가 지난다.

 

부산의 금정산을 비롯해 마산 무학산, 의령 자굴산, 함안 여항산, 구미 금오산, 김천 황악산,

의성 금성산처럼 대개 그 지역의 북쪽에 떡하니 자리잡아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는 진산(鎭山)

또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앞쪽의 안산(案山)이라고 하는데 상주의 그 안산이 갑장산甲長山이다.

 

예부터 상주에는 '상산(商山) 삼악(三岳)'이라 하여 연악(淵岳) 갑장산(806m), 노악(露岳) 노음산(726m),

그리고 석악(石岳) 천봉산(435m)이 있는데 으뜸은 최고봉인 갑장산이라 전한다.

 

 어느덧 호국의 달 6월이 중반을 넘겼다.

상주, 거기를 간다. 비목의 가사를 생각하면서....

갑장산(甲長山)은 경상도의 큰 고을 '상주'의 안산.

상주에는 '상산(商山) 삼악(三岳)'이라 하여

연악(淵岳) 갑장산(806m),

노악(露岳) 노음산(726m),

석악(石岳) 천봉산(435m)이 있.

▲역전의 노장님들...

어느덧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세월을 더 가까이 생각한다.

▲어제까지 비가 온 후 날씨는 시원했고

기분은 상쾌했지.

▲용흥사는 내려올 때 보자고 우측으로 돌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기로 했.

▲ '상주'는  옛 이름,  '상산',  상낙(上洛)이라했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의 낙동은 상낙의 동쪽이라는 의미이니

옛 상주의 역사의 의미가 얼마나 지대한지.

▲주차장에서 갑장산 정상까지는 3.6K,

이정표 세운 기관이 다른가 보다.  300m 남았다 했고

한참 오르면 거기도 300m남았다 한다.

▲ 갑장산의 이름은 '연악산'이었다. 갑장사로 변한 데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오는데

 하나는 고려 충렬왕이 상주 승장사에서 쉬다가 바라본 연악산이 너무 아름다워

'영남의 으뜸산'이라 하여 갑장산이라 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갑장사라는 절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걷기에 좋다 원점회귀 8K의 아기 자기한 산은

정상의 우람한 바위산으로 상주 평야를 조망하는 으뜸산이라 생각했다.

▲부산 국제신문의 근교산 대장님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갑장산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충북 영동의 천태산과 흡사하다'. 했다.

▲ 그러면서 '기껏 걸어봐야 3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는 독립 봉우리인 단산(單山)인데다

암릉이나 암봉에서의 환상적인 조망이 무척 빼어나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산행이라는 점도 그렇다'.

 이 평가가 실감났다.

▲'낙동 용포' 사람의 눈이란 모름지기 생각하는대로 보는가

여러번 '용포'마을을 그리로 가면 '폭포'가 있나보다 했다.

땀깨나 흘려야 되는 된비알의 연속.

이후론 산허리를 돌거나 부담없이 오르내리는 오솔길이.

갑장산에는 세 개의 샘이 있다고 한다. 갑장사 경내의 석천(石泉)

용지터 샘터, 그리고 구룡연이다

옛날 갑장산에는 이무기 9마리가 용이 될 날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정작 이 세 개의 샘 밖에 없어 결국 세 마리만 이 샘을 통해 승천했다고 전해온다. 

해서 이 세 개의 샘은 용천(龍泉)이라 불린.

경상도는 尙州慶州에서 첫 글짜를 따 왔다라고 알려졌는데

이미 통일신라 신문왕 5년부터 전국를 95소경으로 나눴고.

 가 들어가는 청주, 충주, 진주, 전주, 광주, 경주, 상주, 

의주, 원주등의 도시이름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거대한 석문을 둘 만난다. 제1, 제2 석문이라고도 하고

남석문이라고도 한다.

역사의 도시 상주는 1, 17, 6동에

인구 약 94천이다.  동서간 거리와 남북간 거리가 50에 이를 만큼 넓다.

▲ 북으로는 문경, 동으로는 예천과 의성, 남으로는 구미와 김천에 접해 있으며, 

서쪽은 충북괴산과 보은, 옥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서산-영덕 고속도로가 지난.

▲드넓은 산야가 시원하다. 가운데 뱀의 꼬리같은 고속도로는 서산- 영덕 고속도로.

영덕방향으로 내달린다.

너무 높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백길바위'. 아래를 내려다보면

용감한 사람이다.

▲바위 이름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국제신문 근교산의 소개는

''갑장산 5119구조요청' 팻말이 보이는 지점의 정면이 백길바위.

너무 높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 바위는...

 ....' 광주리를 만들어 팔던 백정이 수도하여 득도했다고 '백정암'으로도 불린다. 

바로 아래에는 떡을 포개놓은 듯한 모양을 한 '시루봉',....

 백길바위 왼쪽에는 나옹 화상이 수도했다는, 얇은 슬랩이 층층이 쌓여있는

나옹바위가 갑장산의 위엄을 더해준다'.라고 소개한.

▲ ' 나옹 화상' 은  고려 공민왕 때의 왕사이자 선종의 대가다.

 스님은 그 유명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

라는 명시를 남긴 인물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聊無怒而無惜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

나옹 선사는 고려뿐 아니라 중국에도 이름을 드날렸던 인물이다. 

중국 황제가 그에게 절을 맡기기도 했다.

나옹 선사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었다.
또 무학 대사의 스승이기도 했는데.
무학 대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왕사(王師)였
.

▲백길바위, 시루봉, 나옹바위.. 구분은 어렵지만

이름은 어떻든 갑상산의 백미요 하이라이트라는 생각.

▲ 가수 김용임은 나옹선사의 시를 정의송 작곡가로 하여 

훨훨훨 이란 노래를 불렀다.

 

사랑도 부질없어 미움도 부질없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 버려라 훨훨~

사랑도 미움도 버려라 벗어라 훨훨훨~

 

아 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 버려라 훨훨~

탐욕도 성냄도 버려라 벗어라 훨훨훨~

아 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 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 하네.

▲구름낀 날 조망은 깨끗하다. 저 멀리 백두대간은 이어지고 저기 고속도로는

내 고향 청주로 하여 서산으로 내 달린다.

▲놀라운 풍경에 정신이 혼미했다.

바람 시원했고 상쾌한 산새 소리가 지나간다.

하늘은 고요하고 바위는 아찔하다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지금은 광합성이 필요한 시절...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듯.

▲밥을 먹고 영양분이 흡수되고 나면

남은 것들을 뱉어내듯.

한 해씩 나이를 먹고 난 뒤에는  필요없는 것들을 뱉어 내야지.

▲저기 어딘가 어릴적 추억 속리산 산 줄기, 그립게 흘러 갈텐데...

아득한 풍경.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푸르른 계절

풍요한 산야였다.

갑장산(甲長山, 805m),

'상주의 영봉'이라했다.

소박한 정상석에 정성을 다한 상주 사람들의 혼이 깃들여있다.

▲파노라마, 저 멀리 영덕으로 달려가는 고속도로...

평화로운 들녘이다.

상주의 삼악(三嶽)'을 형성하는 갑장산,

삼악중 으뜸으로 꼽힌.

▲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몰래 부정한 매장을 하면 가믐이 드는 영산,

그리고 상주사람들의 문학의 요람이겠다.

▲저 넓은 상주 평야에 상주 시내가 빛난다.

오랜 역사의 고장이다. 뒤로 백두대간 속리산 능선이 흐른다.

조금은 좁다는 생각이 든 긴 데크 길...

그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다.

▲거기에 진수성찬을 차렸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마음도 편안했다.

▲산행을 한다는 것, 건강의 축복이 으뜸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각자의 삶의 현장도 감사한 거지.

▲거기를 떠나며 내려왔던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담아 보았다.

어느 시절 언제 다시 오겠는가..

어느 산을 가든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제 다시야 오겠는가'...라고

▲헬기장에서 100여m를 내려오면 만나는 삼거리..

그래도 천년 고찰 갑장사를 다녀 와야지....

▲갑장사 가는 짧은 200m는 조용한 오솔길...

환영하듯 파릇한 산죽이 반긴다.

▲갑장사 가기 직전 아름다운 송림... 수백명이 앉아도 될듯하다.

여기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

 상사(相思)바위,

  스님을 사모한 한 처자가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는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실제로 발아래를 보면 현기증이 일 정도로 어지럽다

상사바위는 갑장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아 최승암(最勝巖)이라고도 불린다.

▲ 상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얼안계곡... 저 아래까지 차량 도로가 있고

갑장사까지는 물품등을 올리는 간이 케이블카가 연결되었다.

▲상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남서방향....

아득한 그리움이 달려오는듯.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한과

애달픈 전설이 깃들어 있는 우리나라 여러 산들에 상사바위가 있다.

▲남해. 의령, 경주... 전국의 유명산 바위에

이 이름이 불린다. 한결 같이 애닯은 사연을 안은 전설과 함께.

▲보통으로 산 사람이라도

가슴에 한으로 남은 애닯은 사연이 왜 없으랴....

모두들 행복 하시기를 빈다.

▲같은 가슴일까 거기를 떠날 줄을 몰라 서성인다.

가슴의 그리움 탓 이겠다.

▲거기의 노송들이 멋찌다.

세월은 그런 아름다움 되어 서 있다.

▲생각보다 아담한 갑장사. 천년 고찰이다.

"갑장산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형상"이라며 "상사바위를 포함한 절터가 여의주,

정면의 주능선이 등줄, 산행 날머리인 용흥사가 꼬리에 해당된다" 해설한다.

해발 약 700m에 고려 공민왕 시절 창건된 갑장사

고즈넉한 사찰 특유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

갑장사는 고승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말 나옹 화상, 조선 중기의 진묵 대사, 연파 섭정 대사가 수도했고

근세에는 해인사 폭포에서 좌탈한 금봉 스님이 있다

▲다시 3거리를 행하여 오른다.

천년고찰과 상사바위를 뒤에 두고.

▲ 산죽의 격한 환영은 얼굴을 때리고....

그 시절 영취산의 산죽 길을 회상케 했으니.

▲문필봉... 이 이름도 전국에 산재한다.

산청의 왕산과 이어진 문필봉을 비롯, 붓 끝 모양 생긴 봉우리들이다.

뾰족한 바위 세 개가 붓처럼 한데 모여 암봉을 이루고 있다.

 문운(文運)을 응축한 영봉(靈峰).

이 봉우리의 정기로 상주에 큰 선비가 많이 배출돼 예부터 이 산 일대를 장원향(壯元鄕)이라 불렀다 

▲조금 더 서쪽으로 걷노라니 능선 옆에

상산 표시판이 있다.

▲상산...상산은 상주의 옛이름이다. 상주에는 '상산(商山) 삼악(三岳)'이라는 산을 일컷는다. 

상주의 안산임에 틀림없겠다.

▲진짜 상산 봉우리를 올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득히 올랐.

▲푸른 하늘이면 더 좋았겠지만

거기에 서 보시라 했고.

▲ 늘 자애로운 조석규 선배님도

상사바위부터 함께 였으니...

▲나는 다른 길로 올라보자

 앞으로 기어 올랐다. 여인이었다면

복숭아를 상상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건강이, 오모리고,

비틀고 그리 기어 올라 가는 오늘이 행복했.

▲그리고 마침내 선다. 상산이라했다.

카메라를 밑에 맡겼으니 거기서 바라보는 조망을 찍을 수 없다

정면으로 상주 시내가, 채석장 뒤로 속리산이, 그리고 그 옆으로

'한 일()' 자로 펼쳐지는 마루금이 백두대간길이 이어졌.

▲다시 정상 등로로 내려왔고

주차장까지 2.9K를 내려가야 한다.

▲행복이라는 것, 그냥 우리 곁의 공기처럼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것.

▲아득한 아름다움...팔공산 우측으로 구미 금오산,

삼도봉과 민주지산, 김천 황악산이 확인된다.

발아래엔 용흥사..

▲풍요로운 상주 들녘..

이미 심겨진 벼들이 완전히 땅내를 맡았다.

▲거기서 다시 일행을 만난다. 각기 사연을 안고 살아온 삶...

오늘이 있으니 괜찮은 거야 우리 생은...

▲내가 머무는 곳에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이 어디든 무슨 의미가 있으랴.

▲너와 내가 있고, 나와 타인이 있고,

너와 타인이 있는 곳..

그 곳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 그 관계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한바탕 웃고

다시 미끌어지듯 길을 나선다.

그런 관계 언어가 없다면 그 곳은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누군가 길을 만들어 놓은 덕에 길을 내려간다

관계라는 소중함을 다시 기억하며...

▲그렇게 내려오면 주차장에 닿는다. 오르는데 3.6K, 내려 온 길은 3.8K,

그렇게 8K를 걷는 것이다.

▲용흥사를 가봐야 하지만 땀내나는 몸으로

부처님도 싫어하시겠다는 핑게...더구나 비구니 스님들만 계신 사찰이니....

그냥 알탕을 가기로 했.

▲그러니까 아래 상주남부초등학교에서 여기 갑장사까지 '연악구곡'을 말한다.

어디든 9곡을 만들어 놓은 곳은 송나라 주자가 무이산에서 구곡을 설정한 그 때 부터다.

빼어난 전국의 바위, 대, 담등의 곳곳에 구곡이 붙었다.

▲ 조용한 계곡에 '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되기로 했다.

하기는 국립공원도 7- 8월은 계곡 출입을 허락하고

몸 씻는것도 묵인한다잖아.

▲ 땀으로 얼룩진 몸을 씻는다. 머리를 감는다.

날아갈듯 상쾌해지는 마음....

▲ 금원산의 미폭이 생각났다. 쌀이 떨어지듯 시원한 물 줄기....

거기에 서고 '당겨서 찍어 보시오' 라 했다.

▲ 감히 예수님 같았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가슴을 좀 더 내밀고 배는 들여 밀었써야 했다.

▲그렇게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고

오늘 산행의 행복했던 길들을 더듦는다.

▲역사의 고장 상주,  효자 정재수 기념관( 1974년 겨울 많은 눈이 내렸을 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애쓰다 사망한 정재수 어린이를 기리는 박물관) 도 있고

 

 후백제의 견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650m 길이의 산성 '견훤산성'도 있다.

 성주봉 자연휴양림 ,  상주의 가을 진객, 곶감등이 유명한 고장....

오래오래 번영 이어지기를....

▲ 오후 4시. 상주의 한 부폐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부폐는 늘 과식을 초래한다. 식탐이 많은 탓이려니...

▲그렇게 거기서 친교를 나누고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노래하는 이는 노래를 하면서.

▲그렇게 암릉의 미와 빼어난 조망으로  발은 피곤해도 눈이 호강한 하루..

상주 '상산 삼악' 중 최고 봉우리 거기에 서서

백두대간 마루금· 낙동강 구비를 한눈에 감탄했던 하루....

그렇게 하루는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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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碑木) /작사: 한명희, 작곡: 장일남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