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仁顯王后’
1667태어났으니 우리보다 300살쯤 머저 산 사람이다. 35세의 짧은 생을 살았다.
나는 TV사극을 볼 때마다 왕비, 궁녀등 여인들을 보면 여성으로써 최고의 영화를 누렸다지만
정치적 암투에 죽고 죽이는 일까지 이어 온 저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제19대 임금은 숙종이다. 46년 10개월, 길게 재임했다. 조선역사에 큰 전쟁이 지나간 시대의
숙종은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부인이 아홉이었다. 자녀는 6남 2녀로 많이 두지 못했다. 그것도 3명의 황후들은 소실이 없었고
그 유명한 희빈 장 씨에게서 경종 임금이, 숙빈 최씨에게서 영조임금이 이어졌다.
그러나 숙종이 엄청 사랑한 첫 왕후 인경왕후가 왕비 된지 6년만에 19세로 죽고, 서인들이 집권한 뒤
인형왕후는 15세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인현황후는
불행하게도 왕자를 낳지 못해 왕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데다가 숙원 장씨가 왕자를 낳자
서인과 남인 간의 권력다툼이 이어졌다.
1689년 2월 송시열 등 노론들이 장희빈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하면서 인현왕후는
8년 만에 폐위되었는데 이 사건을 ‘기사환국’이라한다.
쫓겨난 인현왕후는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6년 후 장희빈의 남인들은 서인들의
인현왕후 복위운동 비밀을 알아내 임금에게 고하면서 서인들을 엄청나게 고문 수사를 진행했다.
숙종은 오히려 과잉 수사를 빌미로 남인들을 철저하게 응징 14명을 사형에 처하고, 영의정,
좌, 우의정을 비롯하여 67명을 유배보내고 54명을 파직시켰고 장희빈은 강등된다.
이를 ‘갑술환국’이라한다.
포악한 장희빈에 환멸을 느꼈던 숙종은 인현왕후 몸종이었던 숙빈 최 씨를 사랑했고
그 최씨의 간청등으로 폐위되었던 인현왕후에 여러번 편지를 보내고 거절하는 그녀를 결국
다시 왕비로 복위시켰으니 폐서인 된지 6년만이다.
진심을 다한 숙종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인현왕후는 돌아온 지 7년, 35세로 사망한다.
그 후 밝혀진 사실은 장희빈이 안방에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의 초상화를 붙여 놓고 온갖
저주와 침, 칼등으로 찌르고 고통을 준 모습이 발각되어 결국 장희빈은 자결하라는 명을 어기다가
사약을 받고 사사된다.
온화했고 이해심 많은 인현황후는 철저히 장희빈의 끊임없는 중상모략으로 정신적 고통을
엄청나게 받은 불운한 삶이었다.
역사상 왕비에서 폐위되었다가 복위된 유일무이한 인현왕후는 후대의 많은 백성과
궁인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그의 묘소는 고양시의 서오릉에 있는데 첫 인경황후는 별도로 있고,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는 ‘명릉’으로 함께 조성되었다.
김천에는 인현왕후와의 인연을 살려 조성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과 사랑싸움에 밀려 기사환국 때 서인으로 강등된 인현왕후가 3년간 머물던
곳이 수도산 청암사다. 비구니 사찰이자 승가대학이 있다.
백두대간의 대덕산에서 갈라져 가야산으로 뻗은 산줄기의 중앙부에 있는 수도산 (修道山1317m)!.
동쪽에는 송곡령과 단지봉이, 서로는 우두령이 위치한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겨울이 깊어간다.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기를 다시 걷는다.
인현황후의 한 많은 삶을 기억하면서....

▲수도산은 김천시 증산면과 거창군 가북면의 경계.
따라서 경남,북을 가른다.
성주에서 큰 고개를 넘고 유명한 무흘구곡을 구비구비 돌아 수도리에 도착했다.

▲희망산악회의 엎저버로,
오랜만의 산우님, 맨토와 같이했다.

▲수도리는 해발 930m,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수도산- 단지봉 동북 방향에 위치한다.

▲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태어났으니 우리보다 300살쯤 머저 산 사람이다.
35세의 짧은 생을 살았다. 조선의 제19대 임금으로 46년 10개월을 재임한 숙종의 두 번째 황후다.

▲인현왕후는 15세에 숙종의 계비가 되어 35세로 죽기까지
장희빈 일당의 모진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사환국때 폐위되고, 갑술환국으로 복위되고 안타까운 생을 살았다.

▲그가 폐위된 후 3년간 여기 청암사에서 지내며 자취를 남겼고
이를 인연으로 김천시는 인현 황후 길을 조성했다.

▲다시 황후로 복위되고 7년, 35세로 사망했다. 그의 묘소는 고양시의 서오릉에 있는데
첫 인경황후는 별도로 있고,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는 ‘명릉’으로 함께 조성되었다.

▲그 후 밝혀진 사실은 장희빈이 안방에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의 초상화를 붙여 놓고 온갖 저주와 침, 칼등으로 찌르고
고통을 준 사실이 발각되어

▲ 결국 장희빈은 자결하라는 명을 어기다가
사약을 받고 사사된다.
그러나 그의 몸으로 난 경종이 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수도암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

▲수도암(修道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로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전소된 뒤
최근 들어 크게 중창하였다.

▲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약광전(藥光殿)·
선원(禪院)·관음전(觀音殿)· 나한전(羅漢殿)· 노전(爐殿) 등이 있다.

▲들어와서 보면 '봉황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안에서 보면 가족의 대문체 역할을 하는 전각이다.
종로의 종묘가 생각나는 아름다운 건축미에 놀란다.

▲자세히 살펴야 하는데 하산 할 때 보겠다고 스쳤지만
하산 코스가 변경되어
다시 수도암을 둘러보지 못했다. 진한 아쉬움이다.

▲수도암에는 3점의 보물이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307호)
통일신라 작품으로 높이 251cm,머리70cm,
석굴암 좌불같은 장대함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역시 보물 제 296호,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은 약광전에 모셔진 불상으로
높이1.54m, 머리에 원통형의 관을 쓰고, 얼굴은 단아한 모습이다.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에는
연꽃무늬, 덩쿨모니, 불꽃 무늬가 새겨졌다.

▲수도암 동서 3층 석탑은 보물 297호다.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 서에 서있는 쌍탑으로
단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통일신라 작품이다.

▲ 수도산(修道山·1313m)은 덕유산 향적봉(1614m)과 직선거리로 21㎞,
가야산(1430m)과 13㎞ 떨어져 있다..

▲'한산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산행 길이다.
두 명산의 중간에 자리한 수도산은 빼어난 산세와 조망으로
찾는 발걸음이 많은 산이다.

▲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가는 수도가야 종주는
해발 1,200m 안팎의 고지를 걷는
장쾌한 조망과 짙은 숲, 단조로움을 깨는 바윗 길의 재미가 더해져 지리산 종주에 비길 정도다.

▲수도산은 북쪽 자락에 깊은 계곡을 새기고
무흘구곡의 명승을 품에 안았다.
인현왕후 길은 크게 초반의 숲 길, 후반의 계곡 길로 나뉜다.

▲오늘 만나는 이정표는 각기 다르다.
1.8K 남았다고 한참 오르다 보면 2.3K가 남았다고 안내한다.
여기서 청암사는 4.4K다.

▲생명력 충만한 소나무, 여기서 앉아 한 시간 기를 받으면
아들도 낳고, 딸도 잉태하겠다.
그러나 오늘은 엄청난 바람.

▲능선 길의 세찬 바람은 볼이 얼얼하고
옷을 더 끼어 입고 올 걸 후회했다.
손 끝은 대관령을 걸을 때 처럼 얼얼했다.

▲수도산 북동쪽 자락의 물이 모여
불령동천으로도 불리는 옥동천을 빚어냈다.
옥동천은 역시 수도산과 단지봉 북쪽 자락을 적시는 대가천에 합류해서.

▲ 동쪽으로 흘러 성주를 거쳐 고령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조선 중기 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이 남송 때 주희가
노래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지었다는 무흘구곡의 1~5곡은 성주 땅에,

▲ 6~9곡은 김천 땅에 있다. 인현왕후 길은 무흘구곡의 마지막 명소인
제9곡 용추폭포를 거친다..

▲수도산은 반달곰으로 유명해진 산이다.
지리산에서 종 복원을 위해 방사했던 반달가슴곰 '오삼이'(KM-53)가
80K 떨어진 여기에서 발견되었다.

▲얼마나 추운 바람인지, 멘토도 언 모습.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얼마나 더 산행을 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이상 높은 산을 가 보자고.

▲수도산은 ‘신령이 깃든 산’이란 뜻에서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 신선대(神仙臺)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드디어 조망이 열린다. 좌측 왕관같은 산이 가야산이다.
여기서 13K, 우측은 단지봉1327m.
양각관 흰대미산등은 구분이 안된다.

▲저기 갈매기 모습의 산은
보해산, 금귀산일듯 싶다.

▲거창 휴게소에서 보면 앞 산 미녀봉이 있는 오도산,
뒷산 비계산 그리고 우두산이 선명하지만
구분이 안된다.

▲꽃피는 계절엔 환상적인 꽃길이겠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안나는...
설악의 귀떼기청봉이 왜 그 이름이 붙였는가 실감나는 바람.

▲그러니까 제2의 삼도봉이라 불리는 초점산에서 분기하는 수도지맥은
수도산과 단지봉을 거쳐
경남 합천군의 성산을 지나,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말정마을에서 그 맥을 다한다..

▲이제 저 위, 탑이 보이는 산이 정상인거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 산줄기는
덕산재를 지나며 솟아 다시 대덕산(1291m)과 초점산(1249m)을 빚어 놓았다.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시, 경남 거창군의 경계를 이뤄서...

▲이제 정상은 70m, 수도암에서 2.5K인셈.

▲어느시절 기회가 되면 청암사~수도산~신선봉(서봉)~수도산 자연휴양림 코스와
거창 쪽에서 오르는 흰대미산~양각산~수도산~구곡령~심방,
우두령~시코봉~수도산 코스를 걷고 싶다.

▲눈이 오면 위험하겠단 생각이 드는
칼날 능선.

▲이제 정상이다.
돌답의 정성이 가득하다.

▲수도산에 대한 김천시의 긍지가 대단했다.

▲서쪽으로 백두대간과 덕유산 향적봉이 보이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시코봉 뒤로 양각산, 흰대미산, 보해산, 단지봉, 가야산.

▲ 독용산, 월매산, 초점산, 대덕산이 보인다.
지리산과 팔공산까지.

▲예전 같으면 벌써 산에 누울 세월인데
두 발로 걷는 오늘이 감사했다.

▲걷다보니 걸어지더라.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바람 세찬 거기에 서서 그져 감사한 세월이려니.

▲설악의 시인 이성선이 기억난다.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자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진 골목에서/
바라보며 너 눈물 같은 빛남.....

▲멘토를 만나 같이한 세월,
그 덕분에 명산을 걸었고 오늘도 걷는다.

▲좀 더 일찍 멘토를 만났더라면 백두대간과 정맥,
기맥을 다 동행 할 수 있었겠지만.. 늘 진한 아쉬움이다.

▲올라오는 길이 너무 춥고 힘이들어
사진 한 컷이 그리 귀했다.

▲사방으로 펼쳐진 빛나는 풍광,
골골에 스민 신화와 전설이 세월을 증언했다.

▲남쪽 방향의 긴 산줄기들이 아름답고.

▲단지봉 방향의 능선 길은 예정된 코스를
바꿔 저기로 걸어보자 다짐했다.

▲아! 서쪽으로 선명히 나타난 지리 주능선...
오늘쪽 신선봉 방향을 보다가 발견했다.

▲ 지리 주능선이다. 우측 반야봉이 이고 실제로는 우측에 있겠지만
좌측 옆 삼각봉이 노고단이다. 제일 오른쪽은 바래봉일까?
좌측으로 흐르면 천왕봉이 우둑하다.

▲그리고 서북방향으로 눈 길을 돌리면
또 한번의 감격으로 덕유 종주길이 선명하다.
우측 향적봉아래 스키장이 보이고 향적봉- 중봉- 백암봉- 무룡산-남덕유-서봉이다.

▲혼미한 마음으로 비닐 쉘터를 뒤집어 쓰고
한 상을 차린다.
아늑함 속에 라면 국물맛, 따뜻한 밥이 감격이다.

▲비닐 쉘터속의 아늑함은
느긋함으로 한끼 밥을 먹는다.
세찬 바람 속의 아늑함..

▲따뜻한 밥을 먹고 뜨거운 밋스커피를 마신다.
산행의 기쁨으로 한 잔 하는거야 어떻겠는가.

▲단지봉 방향으로 가다 되돌아 본 수도산 정상,,,
넓은 산군 속의 등대 같은 모습이다.

▲그 산 서북방향으로는
신선봉으로 흘러간다.

▲감격된 마음으로 지리 주 능선을 다시보고 다시 본다.
저 능선 35.5.K를 하루에 뛰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넛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도산을 오른다고 어찌어찌하다가 오르고 보니
저기 단지봉이었다.

▲이제 서둘러 내려가자.
인현황후 길을 조금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왕후들이 그랬지만 조선의 왕후 중,
단종과 짧은 만남 긴 이별로 나중엔 관비까지 내려갔던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 조선 멸망의 오욕을 온 몸으로 받았던 고종의 명성왕후
그리고 이 곳의 인현왕후....
나는 그 셋을 가장 아프게 느낀다.

▲한 시간만 더 주면 단지봉을 다녀오겠지만
겨울 4시간의 산행시간이 아쉽다.
여기서 좌측으로 하산한다.

▲증산면은 면 전체가 김천시에서 가장 고지대이다
면 자체가 해발400m 전후인데다 긴 계곡의 끝, 수도마을은 600- 900m.이다.

▲단지봉에서 내려오던 시절에는
엄청난 낚엽송 숲 길이 감격이었는데
여기는 자작나무가 화려하다.

▲자작나무는 이도백하에서 천지를 오를 때 백두산 마지막 나무로 기억한다.
가을 '소천지' 주변의 자작나무는 환상적이었던 기억.

▲'모티길'은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이며, 그러니 구불구불한 길이란 의미리라.
백두대간이 넘어가고, 경부고속도로와, 경부KTX가 관통하는 김천!
수도산과, 직지사로 유명한 황학산.. 아름다운 도시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나카가와'가 김천에 정착하고
조림사업을 시작하였다
김천과 거창에 5,000여ha를 성공적으로 조림했는데
해방되자 이게 아까워 조선 귀화를 결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로 '낙엽송 보존림'이 남아있단다.

▲ 그 아득한 길로 걷는 포근함, 절로 힐링이 되고
이 '아름다운 숲속 길' 은 1930년대 나무를 나르기 위한
'운재로'로로 나 있던 것을 2007년 민간에 개방하여 모티 길를 우회하는 3.2K 구간이 되었단다.

▲조선 총독부의 '아사카와 다이헤' 운운했지만
우리 민초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나하나 싶었으니
오늘 날 보존림이 되었겠다.

▲강원도 인제가 생각 난 자작나무 숲 길,
거기에 국립 김천 치유의 숲도 조성되었다.

▲그렇게 원시림 같은 숲을 내려오고 '원황점' 마을로 향한다.
2002년 태풍 루사가 마을을 통채로 휩쓸어 집들을 새로 단장했단다
그렇게 하늘만 바라보이는 고지대 마을이었다.

▲두부 맛이 일품이었다.
고향 생각과 어릴적 추억이 생각난 풍경....

▲여름이면 인산인해의
무릉계곡의 시작이다.

▲인현 황후 길을 걷고 싶었지만 역시 다음으로 미룬다.

▲아늑한 마음, 계곡과 숲속 바람 쐬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인현황후의 스토리텔링 길...
오래오래 아름답게 보존 되기를 기대한다.





▲ 그렇게 정겨운 분들과 함께한 하루 !
확트인 풍광에 가슴이 뻥 뚫리는 하늘 길...
민가와 동 떨어진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킥한 하루
칼바람 속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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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