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국공주/ 魯國公主’
원나라 출신으로 고려의 왕비가 된 여인들은 제25대 충렬왕부터 제31대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동안 7명에 이른다. 그녀들은 원나라 황실을 배경으로 고려의 국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렸지만 대부분 정략결혼의 희생자로서 만리 타향 고려에서 남편에게 외면당한 채 외롭게
생을 마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노국공주는 생전은 물론 사후까지도 남편 공민왕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았고 백성들에게도
추앙을 받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안동 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는 ‘놋다리밟기’라는
민속놀이는 홍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가 공민왕과 함께 안동에 피신했을 때 만들어진 놀이다.
당시 정월대보름을 맞아 공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주민들이 공연을 펼친 것이
이 놀이의 유래라고 한다. 그녀가 민심까지도 얻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황족이었지만 남편 공민왕이 행했던 개혁정치와 반원 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정치적 동반자였다. 그녀의 공민왕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열정은 당대에도
화제 거리였고, 조선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추앙받고 있다.
부부는 지극한 금슬을 과시했다 그러나 노국공주는 공민왕과 결혼한 지 10여 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가 드디어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왕의 온갖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30대 중반의 산모는 해산하면서 죽어갔다
평생의 연인이자 동반자를 잃어버린 공민왕은 오랫동안 비탄에 잠겼다. 심지어 자기도 죽어
같이 묻힐 때 무덤속에서 서로 왕래하도록 무덤을 미리 설계까지 했다.
그 후 온갖 방탕한 세월을 보냈다. 상사병에 폭음까지 이어졌고 공민왕 사후 고려의 역사는
겨우 18년 동안 명맥을 유지했다.
어쩌면 조선(朝鮮)의 탄생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지독한 순애보로 인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공민왕 부부가 홍건족의 난을 피해 피난 와 지냈던 산, 경북 봉화의 청량산이다.
지금도 청량산 응진전에는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거기에 노국공주 상이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공주님을 기리기 위해 상을 만들어 나한상과 함께 모셔 오늘에 이른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淸凉山·869.7m), 최치원이 독서와 바둑을 두었다는 풍혈대를 비롯,
원효, 이황, 김생, 주세붕등이 100여편의 기행문과 1,000여수의 시를 남겨 사랑한
12봉, 8굴, 4샘을 자랑하는 산이다.
김생은 9년간의 수행으로 명필이 되었고, 정상 장인봉(丈人峰)의 글자는 김생의
글씨를 채집하였다. 그 정상적 뒤편엔 주세붕의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외에도 곳곳에 이 분들과 관련된 전설, 문헌이 전해진다.
1982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이 되었고, 2007년에는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경북 봉화는 1읍 9면의 경북 최북단으로 東으로 울진, 南으로 안동, 西로는 영주,
北으로는 강원의 태백과 영월과 접한 2만 8천 인구의 아름다운 고을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계절, 거기를 다시 간다.
유홍준이 ‘너무 아까워 소개하고 싶지 않다’던 거기!
거기를 고향으로 둔 사람, 거기에서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번영을 빌며 다시 거기를 걷는다.

▲ 1982년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청량산.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고 청량사 입구 仙學亭(선학정),
정겨운 님들이 출발했지.

▲ 좌측으로 청량사, 위쪽으로 더 올라
'입석'에서 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겨울 산행은 너무 짧은 시간.

▲오늘 산행은 청량서- 뒷실고개로 안내되었지만 아쉬움에
청량사로 하여 자소봉 방향으로 가려한다.
청량사로 오르는 입구 양쪽에는 청량사 표지석과 퇴계 이황의 시비가 서있다.

▲그래도 입석에서 출발하면 스치게 되는
노국공주 마한상을 모신 웅진전, 최고의 전망대 어풍대,
최치원이 독서와 바둑을 두었다는 풍혈대를 못 보는 아쉼.

▲청량사 일주문,"淸梁山 淸凉寺(청량산 청량사)"
청량사까지의 1K여는 차량이 어찌 오르내릴까 걱정되는 가파름.

▲봉우리마다 펼쳐진 수려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 청량산...거기를 간다.

▲드디어 청량사에 도착하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사찰내 전통 다원,
安心堂(안심당)이 가장 먼저 인사하고..

▲ 청량사는 "663년(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청량산 도립공원 내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암봉에는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가 울창하며,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 범종각(梵鐘閣), 2층 누각으로 1998년 완공되었고
범종, 법고, 윤판과 목어가 모셔져 있다.

▲ 유리보전 아래쪽에 세워져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오층석탑,
건너 충융봉을 바라본다.
청량산 열두 봉우리와 어우러져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 오늘 가 보진 못하지만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

▲ 본시 매우 큰 절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절은
유리보전(경북유형문화재 47)과 응진전만 남은 채 세월이 흘렀다.

▲ 법당에는 약사여래불을 모셨다는 뜻으로 공민왕이
친필로 쓴 유리보전(琉璃寶殿)이란 현판이 걸렸다.

▲약사기도 도량 琉璃寶殿(유리보전, 경북 지방문화재 제 47호), 청량사의 본전으로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이 곳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란다.

▲ 유리보전 앞에는 세 개의 굵은 가지가 뻗어 있는 소나무가 서있는데
"삼각우충(三角牛塚)"이라 부른다 원효와 의상대사가 청량사를 지을 때
뿔 셋 달린 황소가 재목을 운반했고 준공 하루 전에 생을 다해 그 곳에 묻혔다.

▲청량사 좌측으로 하늘다리 방향으로 가지만
우린 우측 설선당(說禪堂) 방향으로 간다.

▲웅진전을 가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산꾼들에게 약차를 대접하는
산꾼을 집 방향으로 다녀왔다.

▲청량산은 최치원·원효·이황, 김생이 사랑한 12봉…
그 아래 요새같은 청량사...

▲ 벌써 십년전 주차장-입석-김생굴-금탑봉-경일봉-연적봉-
자소봉-하늘다리-장인봉-두들마을-청량사-
주차장 그렇게 15K를 걸었었다.

▲저기는 청량사 서쪽 연화봉- 자란봉이다
우측으로 뒷실고개가 보인다.

▲‘글씨 잘 쓰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삶을 모토로 한 나는
통일 신라시대의 그 ‘글씨 잘 쓰는 사람’ 김생(金生/통일신라시대))의
숨결이 살아있는 여기를 좋아한다.

▲산 전체가 불교 흔적인 듯, 12봉 이름들이 그러하고 여러 대(臺),
여러 굴(窟)들이 그러하다
공민왕, 원효, 퇴계, 주세붕등 역사의 선인들이 감탄한 그 곳..

▲청량산 하면 퇴계 이황이 떠 오른다.
퇴계는 ‘청량산가’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라 할 만큼
청량산을 속속들이 헤집고 다녔나 보다.

▲시간 관계상 자소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한다.
크게 아쉬움이다.

▲육육봉은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향로봉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의 12봉인데,
이들 봉우리가 활짝 핀 연꽃이라면 그 가운데 청량사는 꽃술에 비유한다.

▲어느해 가을 자소봉을 올라 줄 설 자신이 없어 앉았다.
우측 여인은 어디서 온 분인줄 모른다. 물어 볼거를...

▲탁필봉을 지난다. 오를 수 없는
바위는 길 옆으로 정상석이 서 있다.

▲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등 12대와 김생굴
치원굴 금강굴 원효굴 등 8굴, 총명수 감로수 원효샘 등 4곳의 샘이 있어
예로부터 산자수려한 경관에 ‘소금강’이라 불렀다.

▲탁필봉, 전국의 산들마다 문필봉,
진안의 마이산도 붓 끝 처럼 보였었다.

▲이 때만 해도 철계단이 얼마나 많을지 몰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연적봉을 오르는 것, 계단은 후들거렸고
손 잡이는 차가웠다.

▲조지훈 싯귀가 생각났다.
..'창열고 푸른 산과
마주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이게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거기 세월의 흔적이 서린 얼굴을 본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해가 흘렀다.

▲작지만 멋진 소나무와 어루러진 풍경이
놀랍다. 그러나 여인 한 분이 없었다면 말짱 쾅일거야

▲ 거기서 건너다 보면
앞 작은 봉이 탁필봉, 그 뒤가 자소봉.
그리고 우측능선으로 가면 경일봉이 있고....

▲김생과 더불어 '청량봉녀'의 설화가 있는데 그 녀의 덕택으로 대가가 되었다
9년만에 하산하려한 김생에게 청량봉녀가 나타나
그 녀는 길쌈을 하고 김생은 글씨를 쓰고 ...
한석봉 어머니 모양으로 내기를 했으니....

▲ 보기좋게 실패하고
더 수행하여 대가가 되었단다.
지금도 퇴계의 김생굴 시도 있다.

▲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과
비가 오면 폭포수가 흩날리며 떨어지는 김생 폭포의 웅장함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거길 못 간 아쉼.

▲뒷실고개. 청량사에서 여기로 오르는 길은 엄청난 가파름,
금강대 능선을 오른 이들은 여기로 하여 청량사로도 간다.

▲최치원의 이름을 따서 치원봉으로 불리던 금탑봉,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응진전...
퇴계 이황을 기리며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청량정사..

▲ 이 분들을 추모하며 그 후학, 도인들이 성지순례처럼
다녀갔겠다. 나처럼.

▲그러니까 자소봉에서 하늘다리는 1K,
하늘다리에서 장인봉은 600m.

▲ 하늘다리
하늘과 가까워 하늘 다리일까?
동쪽 자란봉과 서쪽 선학봉을 연결한다.

▲2008년에 설치한 하늘다리는 해발 800m길이 90m.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라 했었지만
지금은 전국에 더 크고 넓은 다리가 우후죽숙이니..

▲저 건너편이 선학봉인 것.
장안봉은 거기서 깊히 내려가 한 없는 계단을 올라야한다.

▲다리를 건널 때 골짜기에서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서늘하지만
100명이 동시에 지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설계되었다니...

▲여기는 자란봉, 저기는 선학봉...
그러나 다리중 최고의 다리는 견우직녀가 만난 다리일거라고
생각도 하지.

▲그 다리가 오작교였던가?
음력 7월 칠석에 까마귀와 까치가 동원된 은하수 다리....

▲ 어떤 이는 은하작교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참 아름다운 전래 민담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앞질러 한 상 차린 회장님들...
존경하는 산우님들.
오래오래 건강 하시기를...

▲우리 5명 일행은 거기에 쉴터를 쳤다 아늑하게..
비닐 쉘터는 추위도 막아 주지만 지나가는 사람 몰래
맛있는거 먹을 수 있어 좋더라구.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무엇이라도 맛있던...

▲여름이면 시원한 골바람이 기대되던 곳..
거기를 지난다.

▲가을이 혼미했던 풍광이 지나간 자리
쓸쓸함이 외로움 되어 거기 있었다.

▲ 주세붕은 1544년 청량산 최초의 기행문인
「유청량 산록 」에서.

▲ "단정하고 엄숙하며 상쾌하고 경개한 산으로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산이 청량산이다"
이라고 극찬했다.

▲장인봉 갈림길, 금강대능선으로 왔던 시절,
여기서 청량폭포로 내려가 두들마을로 하여
청량사까지 걸었었다.

▲300m 남았단 이정표는
그 길이 이런 코스라는 걸 숨겨 다행이었고.

▲내가 그랬다
' 그 가풀막 계단을 어찌 넘어
살아오셨냐고.....

▲어쩌면 사랑은 화병의 꽃처럼
끝이 정해진 아름다움 일까?
영원을 갈망하지만...

▲사랑이 찬란할 때 마음껏 기뻐하자
정해진 끝은 생각하지 말고
시작부터 애도하기엔 지독히 아름다운 거니까

▲장인봉(丈人峯 870m)
청량 66봉중 최고봉
수 많은 선인들이 동경했던 그곳에 선다.

▲ 이 '장인봉' 글씨는
김생의 글씨을 채집하여 새긴 것.
후대에 자기 글이 이 정상에 빗돌로 이리 남을줄 알았으랴!.

▲ 옛날의 명칭은 '대봉(大峰)' 이었으나
풍기군수 주세붕이 '장인봉(丈人峯)'으로
이름하였다 하는데

▲'장인(丈人)'의 '장(丈)'은 대자(大字)의 뜻이려니
중국 태산(泰山)의 장악(丈嶽; 큰산)을
빗대어 본 것이라고....

▲ 비석 뒷면엔 '주세붕'의 글 '등청량 산정'이 새겨져 있다.
그는 풍기군수로 있을 때 서원을 세운 선구자인데
주세붕의 무덤과 사당이 함안 칠서에 있고
그가 청량산에 올랐고 좋았다는 글..
그 분도 오늘 풍광의 느낌이 같겠다.

▲서쪽으론 어느 시절 화전민이었을
너른 고냉지 밭들이 풍경되어 흐르고.

▲S자로 굽어도는 낙동강과 겹겹이 포개진 능선이
저녁 노을을 받아
단풍색 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건너 '축융봉(861m)'
고려 공민왕이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1년동안 숨어 지내던 곳..

▲좌측으로는 그 때 쌓았다는 16km 길이의 청량산성,
죄수를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밀성대,
그리고 공민왕이 거쳐했던 공민왕당이 서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다.

▲장수의 박기봉 대장님 내외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사모하여였을까
출발지 선학정에서 건너 여기로 올랐다.
뒤로는 우리가 있는 장인봉과 하늘다리가 그리움으로 보인다.

▲오늘도 맨토는 인자한 얼굴이지만
예쁜 총무님과 필자가 같이 걷는 걸 시기하여
저리 선 것.

▲아래는 저렇게 가까운데
이제 2.4K, 스무개도 넘는 곧은 철 계단의 연속.

▲저 계곡 ,
저기는 금강대능선의 출발지
저기서 올라 여기로 오를 때 그 2.4K 얼마나 힘든 철 계단 이었던지...

▲ 백두대간 천혜의 자연을 품은 경북 봉화군의
높은 산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태고의 멋을 간직한 고장을 실감했다.

▲ 계단이 한 눈에 안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끝인가 하면 다시 하나가 숨어 있고...

▲똑 같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다른 장소이다.
곧은 사다리 같은 각도의 계단은
수 없이 이어졌다.

▲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앞선 이를 보면나는 언제 저기까지 가나..부럽고.
산뜻한 총무님의 동행이 반가웠던 날...

▲전망대에 오른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놓고..
내려오던 분들이 '장가계'라 했다. 좌측이 장인봉
그 우측으로 선학봉.. 그렇게 놀라운 풍경은 이어진다.

▲여기에 관련 된 선인들을 다시 보자.
원효와 김생은 통일신라시대 이니 더 오랜 할아버지들이고
주세붕은 1495년 생 60생을 살았다.
퇴계는 그보다 6년 늦은 1501년 생이고 69년을 살았다.

▲예쁜 총무님과 같이 서 봤는데... 살포시 손을 얹는다.
찌릿한 전기야 올까마는
가슴 포근함 정감이란거야 어쩔 수 없을 것.

▲ 청량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 지층이다. 지질학에서는
'경상 누층군 청량산층' 이라 분류하기까지한다.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풍화·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나타났다..

▲ 봉우리들은 모두 청량산층의 역암으로 이루어져
저각도 수평층리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V자곡이 발달된 계곡 주변엔 소규모의 수직·수평절리에 의한.

▲ 풍화혈과 타모니 등이 발달하여
특별한 경관을 보여주니 학술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하여간 저 놓은 봉들이 수수만년 바닷속 이었다는 ,
그리고 모래 ,자갈이 쌓여 굳은 퇴적암 이라는것...
세월의 현기증이 난다.

▲건너 일행이 갔던 축융봉,
공민왕의 한이 서린 청량산성.. 아득하다.

▲'우연히 마주친 그대'를 흥얼 거렸다.
우연히 마주친 그대
내 마음 깊이 들어와
환하게 나를 비춰주는
밤하늘 별처럼/

▲힘겹던 나의 삶 속에
꿈처럼 다가온 그대
그저 그댈 바라만 봐도
더는 외롭지 않아
그대에게 커다란 시련이 와도
내가 그댈 지켜줄 텐데
한없이 더 행복할 많은 시간들
우리 함께 할 수 있을까?.

▲금강대능선을 출발지로 여기로 오른 이들은
이제 600m 남은 장인봉을 쉽게 생각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은 계단들을 올라야 함을 모른 채.

▲이제 다시 내려가자 힘든 계단의 연속,,,
만든 이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힘들단 소리도 못하고.

▲흥얼 거림은 계속되고.
소중한 나의 사람아
소리 내어 불러보지만
이런 내 마음 모르는지
그댄 먼 곳만 보네요

▲그대에게 커다란 시련이 와도
내가 그댈 지켜줄 텐데
한없이 더 행복할 많은 시간들
우리 함께 할 수 있을까? 다.

▲아래로 낙동강이 세월따라 흐르고
광활한 산정의 밭들은 봄을 기다리는가.

▲어느 시절은 통행 불가의 계곡 이었을 금강대 능선...
수 많은 철 계단등 시설이 완비되고
이런 환상적인 풍경 속을 걷는다.

▲언제나 가을이 지나간 자리는 쓸쓸한 것,
가난했던 시절 위험한 길을 나뭇군은 미끄러져 오르내렸겠다.

▲나무가 위대한 건 싹을 틔울 때부터
흙으로 돌아갈때까지
불가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

▲그 가파른 바위 틈에 뿌리를 내려 부부가 되어 보낸 세월,
그래서 할배 할매송이 된다.

▲한참을 서서 금슬 좋은 노 부부의 안타까운 전설을 읽는다.
그 부부를 닮은 소나무가 시작되었단다.

▲여여송... 절벽 위 그 험한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불만하지 않고, 남의 자리를 샘하지도 않으니
여여송인가.

▲시멘트 자갈 버무려 쌓은듯 ..
수수만년의 퇴적암은 그렇게 역사가 된다.

▲저기는 도착지 주차장..
깨끗한 낙동강의 상류...
이 물이 흘러흘러 안동땜으로, 그리고 부산까지 흐른다.

▲겨울은 깊은 산속으로 숨어 장관을 이룬다.
조용한 그 곳에.

▲금강굴...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려니,,,
역사의 굴곡마다 피난이 필요한 시대의
우리 백성들이 아프다.

▲피난민 뿐 아니라 추위와 비바람을 나뭇꾼은 피했을 듯하고
가파른 계곡에 수 많은 도인들이 마음을 추스렸겠다.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는지 이야기해 주기위해서라도
다시 돌아올까.

▲경북 봉화는 1읍 9면의 경북 최북단으로
東으로 울진, 南으로 안동, 西로는 영주,

▲ 北으로는 강원의 태백과 영월과 접한
2만 8천 인구의 아름다운 고을...

▲ 선인들의 100여편 기행문과 1,000여수의 시를 탄생시킨
명산 청량산.
지리산이 남명 조식의 산이라면
청량산은 퇴계의 산이겠다.

▲삼부자송...
하여간 아기가 없는 이들은 여기서
쌍둥이 아들 낳는능력을 받아야 될듯.

▲한 몸인듯 형제인듯
삼부자 송은 그렇게 거기를 지킨다.

▲이제 광란의 소나타가 지나간 것처럼
왈츠의 클래식 길이 이어지다가.

▲ 김생 글씨로 현판을 단 "淸凉之門(청량지문)"을 통과하여
청량한 세계에서 빠져 나온다
하룻밤 꿈 같은 그 풍경 속을...

▲낙동강은 그렇게 쉬없이 흐렀고
수많은 신화 설화를 남겼다.

▲다리를 건너면
청량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고.

▲떡 시루같은 층층의 퇴적암은
이 강가의 지질학적 가치를 증언했다.

▲청량산박물관이다
들어가 봐야하지만 길게 타는 코스로
시간이 부족했지.

▲남으로 남으로 내려
의성 봉향의 자주갔던 그 쇠고기전골집
오랜세월 추억을 쌓은 님들과 함께 앉았으니.

▲행복했던 날, 그 뜨거움 처럼
오래오래 건강하여 동행이자고
다짐도 했던 밤.

▲ 이렇듯 선인들이 사랑한 청량산,
거기에서의 하루....
어느 계절 다시 여기에 서서 오늘을 회상하겠다
짙은 그리움으로 .
거기를 고향으로 둔 온 봉화인, 거기에 깃들어 사는
온 봉화사람들과 영원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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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삶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