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麗水)’
나에겐 고교시절 아름다운 수학 여행의 추억이 있다.
70년대 초, 우리 앞의 선배들까지는 내 고향 청주에서 고교 수학여행은 늘 제주도였다.
그러나 그 해 가을부터 전국에 수학여행 기차사고, 선박사고가 일어나 박정희 정부는
수학여행의 단순화를 권장했다.
청주에서의 고교 2학년 생들은 제주도로 다녀오는 관례가 변경되어 남해안 여행으로 코스가 바뀌었고
우리학교 60명씩 열 학급, 600명은 청주에서 열차를 타고 조치원에서 내려 경부선으로 갈아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역마다 다 서는 비들기호 열차였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일몰 즈음이었다. 다시 해운대로 향하는 열차로 갈아타고 컴컴한 늦은 저녁 해운대에
도착했다. 당시 ‘국제여관’에서 1박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로 갔다 난생 처음 ‘바다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아침 일찍 다시 열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왔고 자갈치 시장, 용두산 공원등을 둘러보았으며
다시 열차를 타고 삼랑진으로 하여 마산역에 도착했다.
비오는 마산에서 화력발전소를 구경했는데 지금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오후 시간 관광버스를 학급별로 타고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려 통영에 도착했고
해저터널, 남망산 공원, 충렬사등을 둘러보고 2일째 숙박을 했다.
다음 날, 통영에서 배를 타고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한 남해대교 밑으로 하여 처음으로
수평선을 볼 수 있을 즈음 도착한 곳이 여수였다. 여수에서의 여정은 오동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동도를 걸으며 몰래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고 거기 어디선가 ‘바닷물이 정말 짠가?’ 맛을 봤다.
여행에서 돌아 와 기행문을 써서 장원으로 당선 될 때 그 바닷물 맛을 본 이야기를 썼더니 많은 동급생들이
자기들도 그랬다고 했다.
교련복을 입고 저녁마다 엎드려 뻗쳐까지 했던 ‘기압’ 상태는 여수에서는 마지막 밤이라고
자유시간아 주어졌다. 너도나도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여학생을 붙잡고 주소를 물었다.
나도 한 여학생을 만나 주소를 받았다. 몇 번 편지를 주고 받은 기억은 있지만
이름도 모습도 잊어버렸다.
지금도 여수를 산행 할 때면 그 시절 아련한 생각에 잠긴다.
세월은 흘렀다. 어느덧 50년이 흘렀나 보다. 세월은 그런 것이다.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다”고 하여 여수(麗水)라 했다는
거기를 다시 간다.
2019년 1월 이었다. 봉황산을 넘어 길게 걸었다.
그 추억을 안고
다시 거기를 걷는다.
▲이순신대교(李舜臣大橋)
여수와 광양을 잇는 2.26km의 현수교.
▲길이도, 높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고, 높은 다리..
여수국가산단 진입도로로 건설되었다.
▲2007년 10월에 착공,
2013년 2월에 개통하였습니다.
▲여기 '묘도'를 중심에 두고 저 너머는 광양,
묘도에서 여수로 묘도대교로 연결된다.
▲인구 27만의 여수(麗水)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인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동도' 등이 있다.
▲우리나라 섬 중 9번째로 큰 '돌산도'
돌산대교가 개통되어 육지가 되었다.
▲성두 마을에 도착,
답사는 시작된다.
▲오씨 성을 가진이가 첫 입주를 했고, 신안 주씨가 그랬다.
성의 머리라 하여 성두리.
▲4월의 장수산악회.
'타포니' 현상이 세월, 기온, 눈비. 바람이 녹아 들듯
그러자고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현종의 시를 소개했다.
녹아들지 않으면 그럴듯 하지 않다,
즐겁지도 않다고.
▲‘갯가浦邊’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물가를 말한다.
▲여수 사람의 고향사랑은 각별하다. 회원들이 직접 길을 만들었다.
묵은 길을 뚫고 낫질,
톱질, 곡괭이질 등 땀으로 목욕하며 때로는 벌에 쏘이기도 했단다.
▲관官의 힘을 빌리지 않고 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원봉사와 재능기부로 진행하다 보니
▲첫 삽을 뜨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민간이 길을 만든
유일한 사례로 꼽는다.
▲ 토지 소유주를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해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 수거도 회원들의 몫이었다.
▲ 향후 계획도 야심차다.
구불구불한 리아시스식 해안 따라
여수 전체 25개 코스 약 400㎞를 조성한다는 청사진이다.
▲ 바위지대들은 방향은 있지만
정해진 길이 없는 곳도 많다.
아슬아슬한 벼랑 길도 지나간다.
▲ 자연 그대로의 모습처럼 투박하고 거칠다.
그런 것들이 여수 갯가 길의 매력.
▲갯가 길은 손과 땀으로 만든 길이다.
생태계의 모습이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 ‘성두갯가 길’은
향일암向日庵 경내를 거치지 않고
임포마을에서 곧장 가는 방법도 있다.
▲ 용머리 해안인가,
거북 머리 해안이런가.
▲성두리에서 가는 갯가 길은
우람한 신선대를 비롯해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조붓한 오솔길은 금오도 비렁길과 비슷한 분위기.
▲버스에서 타포니 (tafoni) 현상에 대하여 소개했다.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요형(凹型)의 미지형을 풍화혈이라고 하는데,
▲타포니(Tafoni)는 풍화혈 중에서도
특히 암석의 측면(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적으로 파인 구멍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암, 이암, 역암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퇴적암도 소개하고,
여기 바닷가처럼 화강암 지대에서도 이 현상은 일어난다고.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 세월이 녹아들었다는 것, 기온도, 바람도, 눈,비도....
▲다시 생각해도
녹아들지 않으면 그럴듯 하지 않다는 시는
정말 멋진 교훈의 시다.
▲수수만년 선택적 풍화가 녹아들어
오묘을 보여준다. 인생도 그러하리라.
▲이제 갯가 길을 벗어나 산을 오른다.
코팅된 목 장갑이 필수 준비물이었다.
▲제3코스는 현재까지 조성된 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다.
방죽포해수욕장에서 출발해 백포, 기포, 대율, 소율을 거쳐
향일암이 있는 임포에서 끝나는 약 8㎞ 길이의 코스.
▲양지 바른 중턱에 막걸리도 나누고,
쑥도 뜯는다
여유로운 산행 길.
▲옛 적엔 농사를 지었을 듯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그 시절 걷던 길들이 아픈 추억이 되었다.
▲전국에 금오산(金鰲山)이 많다.
구미 금오산(金烏山·976m)은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가
조선건국을 계기로 말년에 낙향해 스스로 자신을
‘금오산인’이라 칭하며 기거한 곳이고.
▲ 하동의 금오산(金鰲山·849m)은 일출을
정면에서 맞을 수 있다 해서
오행의 하나인 ‘금(金)’과 큰 자라 ‘오(鰲)’를 써 금오산으로 불렀다.
▲여기 돌산도의 금오산(金鰲山/323m)은
하동의 금오산과 비슷한 전설과
의미가 전해진다.
▲마음 예쁜 여인들은 다 모였다.
냄새만 풍기는 남정네들은 먼저 가라고 했지.
▲예쁜 여인을 만나 어울려야 하는데
세월은 그런 조화를 포기하게 한지 오래.
▲ 보통 사람들의 보통 언어 속에 즐거움이 있고
마음의 위로가 넘친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개척 산행' 비슷했다.
지독한 가믐엔 죽음듯 말라 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여러 세월, 부처손.
▲넓은 수반에 통째로 옮겨 심으면
좋겠단 생각를 했다.
▲그 풍광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온화한 바람, 적당히 따뜻한 햇살,
▲금오도가 손에 닿을 듯한
그 너럭바위에 즐거움이 쌓인다.
▲이 동네는 샤브샤브까지 준비한다.
역시 브로조아란 생각.
▲도화 화려한 그 곳,
남서쪽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화태도, 월호도, 대횡간도, 소횡간도, 금오도, 개도...
▲한려수도와 올망졸망한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
늘 존경하는 조대호 고문님과
서 보기도 했지.
▲포만감으로 행복한 사람들,
그렇게 즐거웠던 오찬시간이겠다.
▲ 우측 뒤로 금오도가 있는데
거기엔 비렁길도 조성되어 있었다.
▲거기를 떠나 그 곳을 바라보면
우리가 밥먹은 자리가 얼마나 호강이었던 건지.
▲ 현실의 중압이 빠져나간 자유의 공간,
내내 봄 날의 답사 길은 그랬었다.
▲반갑게 만난 별꽃,
솜 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와 미로를 뚫고
봄을 노래한다.
▲율림치 방향에서 오른 친구 전중호님.
'쇠 금(金), 큰 바다거북 오(鰲)' 자를 쓰는
금오산은 금거북이 바다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형상.
▲그리고 그와 같이 했던 양미영 총무님,
짧은 코스다라는 꼬임에 빠졌다 불평이리라.
▲삶이란 애초부터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려니....
▲5년전 '장수'는
죽포마을~봉황산,전망대~갈림길~임도~흔들바위~산불초소~율림치~금오산~
금오봉~향일암~임포마을버스승강장. 11K를 종주 했었다.
▲여수시는 2009년말 돌산도의 8개 산을 잇는
'돌산종주 코스'를 개발했는데.
▲ 돌산대교에서 돌산공원을 지나
소미산(208m)~대미산(355m)~무술목~본산(273m)~수죽산(300m)~
갈미봉(331m)~봉황산(460m)~금오산(320.6m)~향일암을 잇는 32㎞ 코스
▲능선 삼거리에서 반갑게 재회한다.
산행 중 가장 평안한 산행 탓인지 시끄럽웠다.
▲여기서 주차장이 있는 임포마을도 직접 갈 수도 있고,
향일암은 봉을 하나 넘으면 된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갈 길이 맞거든
흔들리지 말고 계속 걷자고.
▲저기가 금오봉, 어느 시절
봉황산으로 하여 그렇게 걸었다.
▲앞의 섬들은 대횡간도,
좌측으로 소횡간도.
▲저 넘어로는 고흥반도가 이어지지만
오늘은 흐릿.
▲젊은 여승이 생각난다 이름하여 '설요'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은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 할거나' 했다.
▲이 시에 대하여 한문학자 손종섭은
'아, 한 젊음을 늙히기에 저리도 힘듦이여!' 했다.
▲망망한 바다, 저기 금오도를 바라보며 '설요'를 생각했다,
절을 결국 떠났고 스물한 살이었다. 속세에 내려와 시쓰는 이의 첩이 되었다가
당나라를 떠돌았고 통천에서 객사 했단다.
▲7세기의봄과 오늘의 바람이 다르지 않고
그 시절 꽃들과 우리의 가슴이 왜 다르겠는가.
▲세월은 가도 봄을 살아가는 우리도
설레는 마음 주체할 수가 없는거니.
▲여기가 거북의 몸 부분에 해당한 탓인가
바위도 거북등 답다.
▲온화한 바람 평화로운 발길.
▲ '경전을 등에 지고 바다 속으로막 잠수해 들어가는'
금거북이의 형상의 머리부분이 아래로 보인다.
머리부분으로 난 길이 영 거슬린다.
▲거북의 왼쪽 발에 해당하는 '임포마을'엔
관광버스 주자창이 조성되었고.
그 앞으로 시퍼런 바다가 일렁인다.
▲대포알로 보이는 있을거고,
기어오르는 거북으로 보이는 이도 있을거니
정답이야 애당초 없는 거겠다.
▲여러번 철계단을 휘돌아 내려왔다.
향일암으로 가는...
▲서기 644년,
신라 선덕여왕13년에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한 암자.
▲ 향일암은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의 보리암
그리고 강화의 보문함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다.
▲ 여기 금오산이경전을 등에 지고
바닷 속으로막 잠수해 들어가는 거북의 형상이라면.
▲ 향일암이 선 곳이 거북의 몸체가
되겠다.
▲향일암은 여러 개의 바위 틈 길을 통과하고
세워졌다.
▲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한 것을
고려 광종9년(958년) 윤필대사가
'금오암'으로 개칭해 불러오다가.
▲ 남해의 수평선에 솟아오르는 광경이 아름다워
조선 숙종41년(1715년), 인묵대사가
향일암(向日庵)이라 명명해 오늘에 이른단다.
▲푸른 바다와 뒤로는 아득한 바위들...
그 바다를 배경삼은 동백나무 숲등...
▲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광은 일출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게도 했다.
▲낭낭한 종교예식,
엄숙함을 느낀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그랬다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꽃은 사람을 보지않고
봄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본다고.
▲동백은 피어서 굽집을 이루지 않는다.
개별자로 피어나는 꽃들은 제가끔 피어서
제가끔 떨어진다.
▲뜨거운 애욕의 정념, 고결한 영혼처럼.
있던 것이 문득 없어진다.
▲아름다운 향일암,
남해의 보리암 풍경를 생각나게도 했다.
▲엄기탁 시인의 '향일암에서'
절 마당은/
무량(無量)의 바다로 이어지고/
무어라고 지껄이는 갈매기 소리/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소리마저 지운다./......
▲이제 마음으로 그 풍경들을 담고
서둘러 하산한다.
▲봄날의 향일암, 인산인해의 현장이었지.
▲나이를 초월한 좋은 분들과 벗되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맘껏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유롭게 움직이고 걸을 수 있다는....
▲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한 세월인지....
▲돌산도는 '갓'의 고장,
생으로도 군침도는 김치로도 여러가게에서 호객한다.
한 단은 25,000원 이란다
▲답사객들은 인산인해..주차장까지는 한참을 걷는다.
거북이가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이어서
장수하는 거북이를 상징하여 마을 이름을 '장성포'라 불렀는데.
▲왜구들이 이 마을에서 거북이처럼 힘센 장사가 태어날 것 같다하여
이를 막기 위해 거북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깨를 의미하는
들깨 ‘임(荏)’자를 붙여서 '임포마을'로 붙였다'...
정말 그랬다면 지명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볼일.
▲아쉽게 거기를 떠나
도착한 돌산읍의 한 식당.
▲순두부 전골에 해산물 위주의 반찬,
즐거움은 배가되고.
▲감추어진 삶과 드러나는 삶,
산행의 즐거움은 참 좋은 것이려니....
▲거기는 아름다운 보호수가 자리하고
돌산읍 사무소와 파출소가 자리한다.
▲관광객 방문수가 1,000만 명을 넘은 여수는 볼거리가 많다.
해상케이블카, 아쿠아플라넷, 오동도.
이순신 장군과 관련 유적지만 돌아보아도 하루를 꼬박 넘길 수 있다.
국보 304호 진남관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 좌수영으로 사용하던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여기는 수군들이 근무한
오늘날 해군 중대쯤 되는가보다.
▲김중식의 '완전무장' 시..
낙타는 전생부터 지 죽음을 알아쳐렸다는듯/
두 개의 무덤을 지고 다닌다/
▲ 고통조차 육신의 일부라는 듯/
육신의 정상에/
고통의 비겟살을 지고 다닌다/....
▲올 봄 날에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다 모두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이제 아름다운 거기를 떠난다
역사의 향기가 서린 그 곳을.
▲좀 시간이 있어 돌고 돌아 용월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북동쪽을 바라보는 깎아 지른듯한
그 곳에 어찌 이런 편안한 터를 이뤘을까.
▲ 안달 복달 그 시절이 지나면
이젠 필요한 것은
필요한 순간에 반드시 주어지는 법이니...
▲그리움이 사무치면
섬이 먼저 떠오른다 설렘 탓일까.
▲저 멀리 남해의 설흘산이 선명하다,
저기서 여기로 해저 터널이
곧 시작 된다잖아.
▲때론 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선물이라
감사하다가도
문득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인것을.
▲푸른 파도를 가르는
흰 돛단배처럼/
그대 그리고 나
낙엽 떨어진 그 길을
정답게 걸었던
그대 그리고 나....
좋은 분들과 동무되어 걸었던 아름다운 답사 길,
다시 그리움이 되고
그렇게 찬란한 봄 날은 저물어 갔지.
내 고교 시절 수학여행지 여수
오래오래 번영 있기를...
......................
향일암(向日庵)에서/ 엄기창 시인
절 마당은
무량(無量)의 바다로 이어지고
무어라고 지껄이는 갈매기 소리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소리마저 지운다.
지워져서 더욱 빛나는
관음상 입가의 미소처럼
나도 눈보라에 녹아서
돌로 나무로 바람으로 지워지면
갈매기 소리 알아듣는 귀가 열릴까.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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