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6학년 국어에 ‘개나리와 진달래’라는
한 과를 공부했다. 두 꽃이 얼마나 우리민족과 닮은 꽃인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나는 꽃이다 등등의 내용으로 기억한다.
화사한 봄꽃은 참 많다. 하지만 우리 산천의 봄을 상징하는 것을 떠올리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달래를 떠올릴 것이고, 동양 문화권에서 그냥 단순한 꽃이 아니라,
우리 피에 흐르는 오래된 슬픔과 정한의 정서인 것 같다.
대부분의 50대 이상은 진달래를 보면 무던히도 많이 따먹은 기억을 추억한다.
그와 더불어 고향 산천도, 엄마, 아부지도, 그리운 친구들도...
두견화(杜:막을 두. 鵑:두견새 견. 花;꽃 화)라고 하는 이 꽃은 여러
전설이 많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형을 그리워 하는 동생의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중국의
촉(蜀)나라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자
계모가 들어 왔고, 계모의 학대로 형은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나중에는 동생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고 어느 따뜻한 봄날
동생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 새가 되었는데
그 새가 두견새다.
형를 찾아 헤매던 두견새는 매년 진달래꽃이 필 때면 고향을 찾아와 언제나 형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슬피 울었다. 촉나라로 돌아 갈꺼나!
촉나라로 돌아갈거나! 귀촉도(歸蜀道)! 귀촉도(歸蜀道)!
목이 찢어져라 슬피 울다가 마지막에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래서 진달래와 철쭉에는
지금도 붉은 피가 점점이 묻어 있다.
杜鵑(두견)은 일명 '자규(子規)', '접동새'라고도 하고 구성진 울음 소리는
恨(한) 많은 우리네 민족 정서와도 잘 맞아 여러 시와 시조에 등장한다.
정서(鄭敍)는 '내님을 그리사와 우니다니 산접동새는
이슷하요이다'(『鄭瓜亭曲』)라고 했으며,
이조년(李兆年)은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아랴마는
多情(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드러 하노라'고 노래했다.
어느덧 코로나19로 신음 중에 있는 이 강산에 다시 봄이 오고 진달래의
계절이 되었다.
낙남정맥이 지나가는 창원의 천주산,
거기를 다시 걷는다. 흐드러진 진달래에 취하며
소월의 접동새 시를 음미하며 걸어보려 한다.
접동새/김소월 (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