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는 거류산, 벽방산, 구절산, 좌이산,,,
섬 산행을 하는 듯 조망이 좋은 산들이 산재한다.
그 중 전설과 설화로 유명한 무이산(武夷山··545.6m)-수태산(570m)을 다시 찾기로 했다.
문수암은 창건 설화도 유명하다. 의상대사가 남해 금산으로 가던 중 무이산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날이 밝으면 두 걸인을 만나게 될 테니,
그들을 따라 가라...
실제 아침에 깨어보니 한 명의 걸인을 만났고, 그에게 극진히 아침 공양을 한 후
그가 이끄는 대로 산 정상부로 올랐다. 의상대사가 도착한 곳에는 훤칠한 바위벼랑이
동·서·남·북, 그리고 중간 등 5개 있었고 그 곳에서 다른 걸인까지 만났다.
이윽고 그들은 중간 석벽에 난 바위틈이 자신들의 거처라고 말한 후 홀연히 바위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비로소 의상 대사는 그들이 문수 보현 두 보살의 화신임을 깨닫고
이 곳에 기도도량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문수암 법당에 들어서면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가 유리 벽면으로 돼 있고,
그 바깥에 두 걸인이 들어갔다는 바위틈이 보인다.
또 한 분의 현대 유명한 스님이 관련되어 있다.
진주 출신으로 한국 불교 조계종단의 기초를 닦은 청담스님은 1955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1966년 통합종단 2대 종정을 지냈다.
1971년 11월, 70세에 도선사에서 입적했는데 정화를 통한 불교의 정통성 회복과
불교 현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청담대종사전서’
총 9권의 저서가 있다. 2002년 진주 소재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청담사상연구소가 설립됐다.
속가에 부인을 두고 출가한 그는 어느 날 고향에 왔다가 간절히 원하는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부인과 하룻밤을 보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묘엄스님이다.
스님 역시 성철 종정의 권유로 윤필암에서 머리를 깎았다.
문수함-약사전까지 관광버스가 드나드는 도로가 좀 그렇지만
조망이 뛰어나고 봄 얼레지등 야생화가 지천이었던 그 곳,
퇴직자들의 가이드되어 다시 그 길을 걷는다
봄 기운 가득한 그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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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묻는다/나태주
바람에게 묻는다
지금 그곳에는 여전히
꽃이 피었던가 달이 떴던가
바람에게 듣는다
내 그리운 사람 못 잊을 사람
아직도 나를 기다려
그곳에서 서성이고 있던가
내게 불러줬던 노래
아직도 혼자 부르며
울고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