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제주도

아! 제주, 둘째 날 (다랑쉬오름- 절물자연휴양림-4.3평화공원)

산꾼 미시령 2020. 2. 3. 10:08

아! 어제의 한라산 감격이 흥분되어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지나고


오늘은  마지막 날 일정을 진행한다.

모두들 감격의 마음으로... 


▲ 다음 날 아침

서둘러 호텔을 나섭니다 

 

 '다랑쉬오름(382.4m)'

유홍준교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다랑쉬오름을 '오름의여왕'이라 극찬했습니다

.

 ▲ 제주도 도민들에게 386개 오름 중

하나를 추천해 달라하면 

대부분 여기를 꼽는 답니다.

 

 ▲ 바람 가득한 풀밭 능선,

백록담을 닮은 거대한 분화구.

 

 ▲ 능선 위에 오르면 만나게 되는

수려한 전망등 오름의 특성을

모두 갖춘 곳 이지요.

 

▲ 건너 납작하게 누운 모양의 

 '아끈다랑쉬오름'

이 이름을 소개하는 기사님의 발음이 여러번 입니다.


 ▲ 어제 같은 청명한 날씨가

아쉽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울창한 삼나무가

둘러싼 계단을 시작으로 227m

정상까지 끝없는 오르막입니다.


 

계단과 야자 매트가

번갈아 나타납니다.


 

▲ 역사의 고비마다

한이 서린 너른 들판...


 

 ▲ 거기 가장 높은 곳에

산불 감시 초소도 있고


.

 ▲ 여기서 일출, 일몰 광경도 

장관이겠습니다.


 

 ▲ 즐거움은 한 가득..

오름이 주는 넉넉한 평화 덕이겠지요.


 

정상 부근에 망곡의 자리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름난 효자 홍달한이

1720년 숙종 임금이 승하하자....


 

다랑쉬오름 꼭대기에 올라와

수평선 너머 북녘 하늘을 보며

슬퍼했다고 ...

.

이 후에도 삭망(초하루, 보름)에도 이 곳에 올라와 분향하며

산상에서 밤을 지새웠으니..

 결국 그는 충효의 이름으로 정려 되었습니다.


 

 표고 382.4m, 비고 227m에의 분화구는 높고 웅장하고

 . 분화구의 모양이 달처럼 생겨서


달랑쉬, 월랑봉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다랑쉬로 통용 됩니다.

 

▲ 제주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며

한 줌씩 놓은 것이 386개의 오름....

  

 ▲ 너무 높은 곳은 손으로 탁 쳐서 패이게 한 것이

지금의 분화구랍니다.

 

 ▲ 이 아름다운 다랑쉬는

슬픈 역사도 있습니다.

4.3사건에 오름 옆의 마을이 초토화 되었는데 ..

.

 ▲ 1992년 다랑쉬 굴에서 마을 사람들 유골 11구가

발견되었으니...

4.3사건은 그렇게 아픈 역사입니다.

 

 ▲ 비행장 같기도 하고

선사시대 그림 같기도 하단 생각도 했지요.

 

 분화구 내부를 들여다 보면

엄청난 깊이에 소름이 돋고...


 발을 헛디디면  빠져서 못 빠져나올 것만 같은데...

몇마리 노루들은 뛰어 다닙니다.


 ▲ 거기서 바라보는

오름들이 여러 곳...


 ▲  깊은 굼부리 분하구는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공중 폭발하면서


 분출된 화성쇄설물(화산재)

주변에 쌓여 만들어졌습니.


 ▲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

그리고 자연과학적, 신화적 이야기가 배여 있습니다.

  

▲ 다시 보는 아끈 다랑쉬,

'아끈'은 '버금간다'는 의미이니

다랑쉬의 둘째라는 의미겠지요.


 

 ▲ 그렇게 내려서면

봄은 벌써 난초, 유채와 함께 와 있고.


 

 ▲ 그렇게 우리는

그 곳을 떠납니다.


 

 ▲ 두 번째 찾아간

'절물 자연휴양림'

.

 

  ▲  휴양림은 넓고

여름에 걸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 어렵게 제주를 오면

기를 쓰고 올라야하는 산꾼들,

 

  ▲ 오늘의 길은

쉼의 길입니다.

 

  

  ▲  '답없음' 판정을 받지 않으려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


  ▲  배는 그렇다 치고

가슴은 어찌 들여 미는지...

 

  ▲  여러 조형물들도

즐비합니다.

 

  ▲ 부부가 같이 맷돌질을 하면

19금급 마음이 동할까?,  부부 싸움을 할까?


 

  ▲  '절물'은

절 옆의 약수물이란 의미랍니다.

 

 

  ▲ 그렇게 거기를 나섭니다.


  ▲ 아! 그렇게도 오고 싶던 '4.3 평화공원',

예정에 없던 그 곳을 간절한 간청으로

기사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  버스에서 즉석으로 5분 강의를 했습니다.

제주의 아픈 역사와 4.3사건에 대하여..

 

 ▲ 현기영의 '순이삼촌'에 대하여...

 

 ▲  가슴이 쿵쿵 거리는 것을

억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


  ▲  공원은 넓고

잘 정돈 되어 있었습니다.

 

 ▲ 기념관 안에는 4.3사건에 이르는

근대 역동적인 역사가 잘 전시되어 있고

  

  ▲ 아직도 발견되지 못하는

 죽엄을 위하여 빈 비석이

처연했으니...

 

  ▲ 처절했던 역사의 소용돌이에

역사는 제대로 조사, 평가되지 못하고 묻혀...

 

  ▲ 가해자와 피해자가 거꾸로된 삶을

오래 그렇게 살았습니다.


  ▲ 그렇게 역사는 흘러갔고

순이삼촌 문학이 발표되지 전까지.

 

  ▲ 아무도 아프단 소리도 못하고

가해자는 이렇다 할 참회도 없이..


  ▲ 아프게 아프게

흘러갔습니다.


  ▲ 누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상이 밝혀지고 참 위로를

가는 해야 할 것입니다.

 

  ▲ 소설 '순이삼촌'.

그 작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 주워진 시간은 다 되어가고

홀로 뛰어 한 바퀴 돌아야 합니다.


  ▲ 저기 위령제단 까지도

달려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아쉬운 마음.

 

  ▲ 거기서 바라본 기념관

 

  ▲ 위령탑..

그렇게 내려섭니다


  ▲  각명비가 있고, 4.3 당시 희생된

모녀상도 있고


  ▲ 저절로 숙연 해 졌지요.

 

  ▲ 마을 별로 새겨진 이름들...

남녀노소가 구별없이 희생 되었습니다.


  ▲ 이렇게 이름으로 남은 이들은 그래도 다행...

절반 이상이 행불자로 남았습니다.


  ▲  전 도민의 11%인 3만명이 넘는

이름들이 희생 되었지요.

 

  ▲ 위령탑

화해와 상생정신으로

인간의 어울림을 표현합니다.

 

  ▲  4.3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서

 

  ▲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노력들이 감사했으니..

 

  ▲ 그렇게 돌아 점심을 나누고..

 

  ▲  쇼핑센터도

갔었지요


  ▲ 아쉬운 마음으로

항구에 도착하고

 

  ▲  그렇게 우리는

제주를 떠납니다.

 

  ▲ 감사했던 날,

그리움을 남기고..

 어쩌다가 나를 두고 떠난다 해도

못 잊어 그리우면 혼저 돌아옵서예..

감수광 감수광 난 어떡헐렘 감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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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광 /(길옥윤 작사.작곡 혜은이 노래)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감수광 감수광 난 어떡헐렘 감수광

설른 사람 보냄시엔

가거들랑 혼저 옵소예

 

겨울 오는 한라산에 눈이 덮여도

당신하고 나 사이에는 봄이 한창이라오

감수광 감수광 난 어떡헐렘 감수광

설른 사람 보냄시엔

가거들랑 혼저 옵소예

 

어쩌다가 나를 두고 떠난다 해도

못 잊어 그리우면 혼저 돌아옵서예

감수광 감수광 난 어떡헐렘 감수광

설른 사람 보냄시엔

가거들랑 혼저 옵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