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잘 쓰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부단이 펜 글씨, 붓 글씨, 군대서는 챠-드 글씨등 섭렵 했고,
그리고 많이 읽고(多讀), 말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는(多思量), 이른바 글 잘 쓰는 비결을
고귀하게 생각하지만....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 때 지금은 없어진 직업 ‘필경사’(철판 ‘가리방’에 ‘원지’를 대고 철필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프린트 하는) 알바도 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덕분엔 고교시절엔 ‘반성문’이나 ‘러브레터’ 대필을 많이 했는데 그 ‘삯’은 호떡이나 찐빵이었다.
한 번은 두 녀석에게 ‘러브레터’대필 및 발송까지 ‘하청’을 받았는데 실수로 속 편지지를
봉투에 바꿔 넣어 보냈다. 호떡은 커녕 맞아 죽을 뻔 했다..
지금은 그들이 나보다 훨씬 잘 산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다.
그 ‘글씨 잘 쓰는 사람’ 김생(金生/통일신라시대))의 숨결이 살아있는 청량산!
유홍준은 그의 답사기에서 "아까워서 소개하고 싶지 않은 곳" 이라했다...
산 전체가 불교 흔적인 듯하다 12봉 이름들이 그러하고 여러 대(臺),
여러 굴(窟)들이 그러하다 공민왕, 원효, 퇴계, 주세붕등 역사의 선인들이 감탄한 그 곳..
2014년 10월 이었으니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선인들이 사랑한 청량산,
거기를 다시 걷는다.
백두대간 천혜의 자연을 품은 경북 봉화, 거기 청량산을....
▲ 어느덧 뜨거운 여름이 왔고
단합대회겸 청량산을 산행합니다.
▲ 봉우리마다 펼쳐진 수려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 청량산...
▲ 1982년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오늘은 안내소 좌측으로 하여
'금강 대능선' 코스로 오릅니다.
▲ 아직은 앞으로 얼마나 길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할지
모르는 중입니다.
▲ 안내소에서 장인봉(정상)까지 2.8K의 금강대능선,,,
대단한 계단의 연속...
▲ 그럴듯한 해설의 삼부자송...
하여간 아기가 없는 이들은 여기서 쌍둥이 아들 낳는
능력을 받아야 될듯합니다.
▲ 주세붕은 1544년 청량산 최초의 기행문인
「유청량 산록 」에서
▲ "단정하고 엄숙하며 상쾌하고 경개한 산으로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산이 청량산이다" 이라고 극찬했습니다.
▲ 금강굴...수십명이 들어갈수 있는 굴이려니,,,
역사의 굴곡마다 피난이 필요한 이들이
기거했겠지요.
▲ 출발지 주차장,,, 주차장과 야영장이 있고
깨끗한 낙동강의 상류...
이 물이 흘러흘러 안동땜으로, 그리고 부산까지 흐릅니다.
▲ 여여송... 절벽 위 그 험한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불만하지 않고, 남의 자리를 샘하지도 않으니
여여송인가 봅니다.
▲ 할배할매송...
애뜻한 노 부부의 아픈 이야기에 한참을 서서 바라봅니다.
▲ 힘든 계단의 연속,,,
만든 이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힘들단 소리도 못하고.
▲ 거대한 장인봉을 배경하고
전망대가 조성되었습니다.
▲ 저 계곡 상류,
거기는 입석대능선의 출발지이니
거기로 올라 여기로 하산하기도 합니다.
▲ 건너 '축융봉(845m)'
고려 공민왕이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1년동안 숨어 지내던 곳입니다.
좌측으로는 그 때 쌓았다는 16km 길이의 청량산성,
죄수를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밀성대,
그리고 공민왕이 거쳐했던 공민왕당이 서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습니다..
▲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첩첩산중 봉화의 화전민으로 시작하였을
마을들이 그림 같습니다.
▲ 그 전망대에서 백두대간 천혜의 자연을 품은 경북 봉화군의
높은 산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태고의 멋을 간직한 고장을 실감합니다.
▲ 이제 600m 남은 장인봉...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은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 앞선 이를 보면
나는 언제 저기까지 가나..부럽고.
▲ 예쁜 엉덩이를 가진 여성분이
앞에 있으면 덜 힘들겠단 생각도 했지.
▲ 그래도 가끔 골바람이 있어
다시 힘을 얻습니다.
▲ 계단이 한 눈에 안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끝인가 하면 다시 하나가 숨어 있고..
▲ 조지훈 싯귀가 생각납니다.
..'창열고 푸른 산과
마주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이게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 만년초, 장생초라고도 하는 부처손...
주로 산부인과적 효능을 자랑합니다.
▲ 되돌아 본 금강대능선...
▲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장인봉(丈人峯 870m)
비석 뒷면엔 '주세붕'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풍기군수로 있을 때 서원을 세운 선구자인데.
▲ 주세붕의 무덤과 사당이 함안 칠서에 있고
그가 청량산에 올랐고 좋았다는 글..
그 분도 오늘 풍광의 느낌이 같겠지요.
▲ 이 '장인봉'글씨가
김생의 글씨을 채집하여 새긴거랍니다.
후대에 자기 글이 이 정상에 빗돌로 이리 남을줄 알았으랴!
▲ 옛날의 명칭은'대봉(大峰)'이었으나
풍기군수 주세붕이 '장인봉(丈人峯)'으로 이름하였다 하는데
'장인(丈人)'의 '장(丈)'은 대자(大字)의 뜻이려니
중국 태산(泰山)의 장악(丈嶽; 큰산)을 빗대어 본 것이라고...
▲ 내가 그랬지요
' 그 가풀막 계단을 어찌 넘어
살아오셨냐고....
▲ 단합대회로 4시간밖에 시간을 안 주니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 그 시절 여기서 우측으로 두들마을로 하여
청량사로 거슬러 올랐습니다.
▲ 그렇게 몇 고개을 넘나들면
하늘다리를 향하게 되는데.
▲ 하늘다리
하늘과 가까워 하늘 다리일까?
동쪽 자란봉과 서쪽 선학봉을 연결합니다.
▲ 2008년에 설치한 하늘다리는 해발 800m
길이 90m.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라 했었지만
지금은 전국에 더 크고 넓은 다리가 우후죽숙이니..
▲동쪽 자란봉의 풍광이
아슬아슬합니다.
▲ . 다리를 건널 때 골짜기에서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서늘하지만
100명이 동시에 지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설계되었다니..
▲ 그 많던 가을날의 사람들은
오늘은 한산하고.
▲ 되돌아 본 선학봉 .
▲ 하늘다리의 설명판도 보고.
▲ 여기는 자란봉, 저기는 선학봉...
그러나 다리중 최고의 다리는 견우직녀가 만난 다리일거라고
생각도 하지요.
▲ 그 다리가 오작교였던가?
음력 7월 칠석에 까마귀와 까치가 동원된 은하수 다리...
▲ 어떤 이는 은하작교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참 아름다운 전래 민담이란 생각이 듭니다.
▲ 뒷실고개..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기도 하지만
우린 아직 올라야 할 봉들이 많으니...
▲ 가파른 계단을 다시 오르고 넘어
▲ 신라시대 불교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높은 봉우리를 의상봉.보살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처럼 불교식으로 불렸다가.
▲다.
▲조선 중종 39년(1544),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열두 봉우리의 이름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답니다
▲ 무슨 봉일까 한참을 오르니
나타난 연적봉.
▲ 작지만 멋진 소나무와 어루러진 풍경이
놀랍습니다.
▲ 거기서 건너다 보면
앞 작은 봉이 탁필봉, 그 뒤가 자소봉.
그리고 우측능선으로 가면 경일봉이 있고...
▲ 탁필봉 정상석은
길 가에 세워져 있었지.
▲ 앞에 나타난 자소봉.
▲ 자소봉 옆을 지나며
움푹 패인 모습도 봅니다.
▲ 한참을 헐떡 거림의 산 마루에...
엄청난 철 계단을 오르고 나면 '자소봉'을 만납니다.
▲ 확트인 조망은
청량산의 주봉을 여기로 했으면 싶습니다.
▲ 그 가을은 정상석을 독차지한
인증샷이 불가능 했었지요.
▲ 그 해 가을..이렇게 찍었지
어디서 오신분인지 모르지만 뒷 여인이 내겐 청량봉녀로
오랫동안 회상되었지요
▲ 어디를 보든지 청량산은
첨탑 같은 봉들의 연속인듯합니다.
▲ 자소봉 끝은 저기지만
정상석은 여기 있는 겁니다.
▲ 경일봉 방향을 포기하고
서둘러 청량사 방향으로 갑니다.
▲ 저기가 금탑봉일까?
나중 청량사에서 올려다 보면 저 봉입니다.
▲ 시간에 쫓기지만
김생굴을 뻬놓을수 없어 300m 그 곳으로 갑니다.
▲김생굴
통일신라시대 김생이 수학했던 암굴인데
. 김생은 이 굴 앞에 김생암이라는 암자를 짖고
10년동안 글씨 공부를 했습니다.
▲ 퇴계의 김생굴 시도 있고.
▲ 붓을 씻어다는 우물의 흔적과
비가 오면 폭포수가 흩날리며 떨어지는 김생 폭포의 웅장함은
옛모습 그대로입니다.
▲ 여긴엔 '청량봉녀'의 설화가 있는데
그 녀의 덕택으로 대가가 되었지요.
▲ 9년만에 하산하려한 김생에게 청량봉녀가 나타나
그 녀는 길쌈을 하고 김생은 글씨를 쓰고 ...
한석봉 어머니 모양으로 내기를 했으니.
▲ 김생굴에서 본 청량사...
최치원의 이름을 따서 치원봉으로 불리던 금탑봉,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응진전... 퇴계 이황을 기리며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청량정사..
▲ 이 분들을 추모하며 그 후학, 도인들이 성지순례처럼
다녀갔겠지요.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
▲ 문득 옛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원추리...
덕유의 무룡산엔 만발 했겠지요.
▲ 김생과 최치원이 수학했던 곳,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지냈던 곳 ,
▲ 주세붕을 비롯해 퇴계 이황 등 수많은 선비들이 올라
주옥같은 기행문과 시를 남겼던 곳,
▲ 시간에 쫓겨 올라 살피지 못하고
되돌아 나섭니다.
▲ 어느 시절 청량사만 목표로
다시 한번 걷고 싶습니다. 멋진 여인과 동행이면
더 좋을 테고.
▲ 청량사에서 주차장 선학정까지 길은
가파르기 그지없는 시멘트 포장도로.
.
▲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야 합니다.
▲ 선인들의 100여편 기행문과 1,000여수의 시를 탄생시킨
명산 청량산.
▲ 지리산이 남명 조식의 산이라면
청량산은 퇴계의 산이겠지요.
.
▲ 일반인들은 석학정에 주차를 하고
청량사를 오릅니다.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소낙비가 그림처럼 지나가던 시절
맑은 낙동강 발원지 같은 청량의 그 곳에서
▲ 백숙도 먹고
우중 족구도 하고... 그런 시원한 하루가 저뭅니다.
▲ 좌측 안내소에서 올라 우측으로
걸었던 청량산의 하루... 오래오래 다시 추억이 됩니다.
▲ 이렇듯 선인들이 사랑한 청량산,
거기에서의 하루....
어느 계절 다시 여기에 서서 오늘을 회상하겠지요
짙은 그리움으로 .
-----------------
들길에 서서/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삶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山行..그리움따라 > 경상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북문경(문경새재선비길/ 박물관 주차장-제1관-제2과-제3관문(왕복 15K, 4.5H) (0) | 2019.07.21 |
---|---|
우중 족구대회 (0) | 2019.07.17 |
경북포항.‘호미반도(虎尾半島) 해안둘레길3-4코스’(흥환1리-장군바위-구룡소-모아이상-대보항-호미곶해맞이광장. 13k. 5H) (0) | 2019.03.17 |
경북칠곡.유학산(遊鶴山./팥재주차장~도봉사~쉰질바위~팔각정~유학산~신선대~837고지~명품소나무~전망대~674봉~다부동전적기념관주차장(8.5Km/3H) (0) | 2019.01.27 |
경북영주.소백산(小白山)자락길(1코스):배점주차장~초암사~죽계구곡(9~1곡)~달밭재.골~비로사~ 삼가주차장(8.8Km/3시간) (0) | 2018.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