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그 탓일까? 수년 동안에 한번 가보기가 어려운 먼 서해남부 해안, 고창, 부안, 진도를
석달 만에 네 번을 가는가 보다.
11월 고창 선운사를 가더니, 3월 들어 진도의 동석산, 변산반도 내변산,
그리고 오늘 고창들녘에 우뚝 선 호남의 조망대, 방장산(方丈山, 734m)까지.
백두대간 호남정맥이 내장산 소죽엄재에서 서쪽으로 틀어 그 줄기 영산기맥이
축령산, 영광 불갑산을 지나 목포 유달산으로 뻗쳐 서해바다에 잠기는데 그 능선 중
가장 우뚝하게 솟아난 산이 방장산이다.
전북의 고창,정읍과 전남 장성의 경계에 있는 방장산,
조선 시대에는 고창에 진산으로 불리며 방등산(方等山)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인조 때 청나라에게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불렀다한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능선을 따라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이 장쾌하고 시원하다.
산행은 장성갈재에서 양고살재까지 그렇게 산행 길에 나선다.
쉼없이 달려오는 봄날의 그 길,,
그리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 고창의 들판은 참 시원합니다.
들판 너머 곰소만, 그 뒤로 두 주전 올랐던 변산반도의 내변산.
(빌려온 사진입니다.)
▲ 들머리 '장성갈재'입니다.
전북과 전남을 가르는 고개요, 잇는 고개이기도 하지요.
▲ 고개란 민초들의 한과 전설이 서린 아픈 곳이지요
'갈재'는 갈대가 많아 그리 되었다는 설과
▲ 노아낭자(蘆雅娘子) 아픈 전설과 그의 이름을 따서
갈대 노(蘆), 재 령(領)을 써서 '노령'이라는 지명이
붙어졌다고고도 하지요.
▲일제가 갈대 '노(蘆)', 재 '령(嶺)'을 써서 ‘노령’으로 한자식으로 변경 되었다가
다시 갈재로 변경되었습니다.
'노령산맥'이라는 이름도 이 곳 갈재(노령)에서 나왔답니다.
▲ 초입부터 가파르게 오르면 515봉(전위봉)
거기서 보면 앞에 큰 '쓰리봉'이 나타나고
▲ 방장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 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의
반등산(半登山)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 거기서 쓰리봉까지...
'이 힘든 산행을 매주 왜 하는걸까?'
생각이 사무칠 많큼 힘든 길.
▲ 이정표를 저렇게도 해도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 그렇게 헐떡이면 드디어
능선에 다다르고.
▲ 꽃샘 추위의 찬 날씨지만
멀리의 조망은 조금 아쉽습니다.
▲ 너머로 장성호가 빛나고
우측으론 무등산이 희미합니다.
▲ 아마도 이 지방의 산우님이 만든 사진인듯
도움을 위하여.
(빌려온 사진입니다.)
▲ 멀리 무등산이 희미하지만
그 위용은 우람합니다.
▲ 오늘 조망으로는 어림없지만 겨울날 그리운 지리능선이
저리 보이기도 한답니다.
(빌려온 사진입니다.)
▲ 무등산도 말없이 저렇게 보이고.
(빌려온 사진입니다.)
▲'쓰리봉'(734m)
'쓰리봉'이란 6.25당시 폭격 대상지였던 '서래봉'을
'써레봉' 또는 ‘쓰리봉’으로 발음하다가 그렇게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 경남 함안의 여항산도
6·25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갓 뎀 마운틴(God damn mountain)’이라는 별칭으로
'갓데미산'이라고 하는 것처럼....
▲ 쓰리봉을 보자마자
'쓰리고!'의 환희를 떠 올리는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 방장산 정상은
3.4km를 더 가야하고.
▲ 장성 백암리의 백암저수지...
산행 내내 같이합니다.
▲ 이제부터 곳 곳에
남쪽 방향의 조망바위들이 많습니다.
▲ 월출산도 오늘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저리 본인다면 ....
(빌려온 사진입니다.)
▲ 좋은 조망터에서 폼을 잡기도 하지요.
▲ 가야 할 정상은 멀리 보입니다.
▲ 방금 내려온 쓰리봉.
▲왜 방장산을 호남정맥의 조망대라
하는지 알듯 합니다.
▲ 가야 할 정상은 저리 이어집니다
가운대 삼각뿔 모양이 봉수대.
▲ 오늘 산행은 여러번
오르내려야 합니다.
▲ 우측부터 675봉- 695봉, 그리고
봉수대. 좌측이 방장상 정상입니다.
▲ 참고하기 위하여 옮겨왔지만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빌려온 사진입니다.)
▲ 아직은 봄의 빛깔을
찾을 수 없습니다.
▲ 가파른 응달은 얼음은
햇살에 빛나고.
▲용추폭포에서 오르는 3거리를 만납니다.
산기슭 세 개의 계곡 중에 서쪽 기슭의 용추폭포,
용추골은 수심이 깊어
용이 승천하였다고 전합니다.
▲ 봉수대는 이제
저리 가파르게 올라야 합니다.
▲ 알아주는 이 없어도,
봐주는 사람 없어도
망설임 없이 활짝 피었다가 질줄 하는 초목들...
▲봉수대.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봉수대는 최고의 조망터.
▲ 내장산, 무등산, 지리산이 멀리 눈에 들어오고
선운산과 변산반도와 고창 들녘을 시원하게 조망합니다.
▲ 우측 쓰리봉부터 이어져 온 지나온 길.
▲ 쓰리봉 너머 내장산, 좌측 너머로 덕유능선,
우측너머로 지리 능선..
▲ 좌측으로는 전주의 모악산, 그 너머로 운장산,
칠보산도 보입니다.
▲ 오늘 정상은 저렇게 나가가야합니다.
▲ 봉수대 너른 광장엔
점심 인파들이 행복한 봄 햇살 아래 즐겁습니다.
▲ 무등산 방향은
변함없이 반깁니다.
▲ 돌아보면 좌측 봉수대에서
여러번 오르내리며...
▲ 쓰리봉은 이제 멀리..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 광활한 고창의 들판...
좌측으로 변산반도와 그 앞으로 조용한 곰소만,
그 앞으로는 선운산이 아련하게 이어집니다.
▲ 좌측으로 선운산 도립공원,
지난해 11월, 최고의 단풍시즌에 거기를 갔었지요.
(빌려온 사진입니다.)
▲ 선운산 수리봉, 개이빨산,
(빌려온 사진입니다.)
▲ 정상에 올라 지나온 길도 돌아봅니다.
▲ 방장산方丈山,734m
표식을 빌려 포즈를 취했지요.
▲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받아 왔습니다.
.
▲고창들녘에 우뚝 선 호남의 조망대임에
틀림없습니다.
▲ 정상에서 바라본 억새봉(활강장), 벽오봉(방문산)
오늘 거기를 못 가는 것이 아쉽습니다.
▲ 거기 벽오동에는 방등산가비(方等山歌碑)가 있는데
정읍사, 지리산가, 선운산가, 무등산가 와 함께
백제5대가요, '방등산곡(方登山曲)'이 전합니다.
도적떼에게 잡힌 여인이, 남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아
애통해 하는 아픈 내용이죠.
▲ 고창고개..
그 벽오동을 가지 못하고, 오늘 산악회는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합니다.
▲ 극립 방장산 자연휴양림.
▲ 아늑한 휴양림과 적당한 방갈로등 시설이
좋은 곳입니다.
▲날머리 양고살재를 가지않고 여기 주차장에서 마감합니다.
고창 출신의 조선후기 무신 '박의'가 병자호란때에 전라병사 김준용을 도와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청태종의 사위 양고리를 죽여
그 뜻을 기리고자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과
큰 재[峙]와 작은 재[峙] 두 개가 있다 하여 양고령이라 불리다
발음이 변해 ‘양고살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 고창 들판에 우뚝 솟은 방장산.
산림청과 블랙야크 100대 명산에 속한....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조망은 내장산, 백암산, 월출산, 무등산,
그리고 덕유산 능선과 지리산 능선이 진한 그리움.
서쪽으로 고창 들녁을 넘어 선운산 도립공원과 변산반도 국립공원...
그 시원한 조망은 오래오래 잊지못할 추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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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게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유리창을 맑게 닭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