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충청도

충북영동.민주지산(岷周之山/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쪽새골-물한계곡-주차장.10K, 5시간)

산꾼 미시령 2018. 2. 11. 20:22

조선역사상 이 용어는 3가지를 떠오르게 한다

하나는 이른바 송도 3(松都 3)’, 개성을 말하는 송도의 3절로 황진이서경덕 그리고

박연폭포를 말할 때 박연이다.

 

  두 번째는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를 말한다.

 그는 일본으로 행하던 배가 난파되어 세 사람과 함께 1627년 제주도에 도착하였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화포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병자호란에도 참전하여 둘은 전사하고 그는 살아남아

조선에 귀의하여 박연(朴淵)이라 이름지었고 조선여인과 혼인하여 가정도 이루고,

조선에서 일생을 마쳤다.

 

 20년 후, 하멜이 그렇게 표류하여 조선에 왔을 때 통역을 하였고, 그 하멜은 오랜 세월후

일본으로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썼고 그 때 이 박연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박연이 있는데 난계(蘭溪) 박연(朴堧)이다.

 그는 고려 우왕 때 태어나 세조 때 죽었으니 고려와 조선에 거쳐 10명의 왕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충청북도 영동(永同)에서 태어나 81세로 고향의 고당리(高塘里)에서 죽었다.

아버지 천석(天錫)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박연은 어릴 적부터 악기등에 조예가 깊었고, 15살 때 고려가 망했고,

1405(태종5) 생원이 되었다. 1411년 문과 장원으로 등과했고, 세종이

대군이던 시절 세자 시강원 문학으로 세종을 가르쳤고, 그후 대제학을 역임했다.

 

 세종이 즉위 한 후 악학별좌(樂學別坐)에 임명되어 음악에 관한 일을 보게 되었다.

악기의 조율, 악보 찬집(撰集)의 필요성을 허락받고 편경을 제작하고 궁중 음약과

예법을 개혁하였다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특히 율관제작을 통해 편경을

제작하여 조선시대 초기의 음악을 완비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박연의 음악적 공헌은 시대 상황과도 적지 않게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악성(樂聖)이라고 일컸는 유명한 음악인이 있다.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신라의 우륵(于勒) 그리고 조선의 박연(朴堧)이다


 그는 자녀를 34녀를 두었는데 막내아들 계우(季愚)가 박팽년등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했고 그 막내의 행적으로 박연도 화를 입을 뻔

하였으나 세 임금에 걸쳐서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했다.

 난계 박연!

 그가 나고 자란 우리고향 충북의 최남단, 인구5만의 영동(忠北 永同郡)’ 갈기산, 백화산,

천태산등과 옥계폭포등 산자수려한 고장이다

 

 그의 중심의 민주지산 [岷周之山, 1,242m]를 거기를 간다

설산의 바램을 간절히 담고.....

 

도마령(刀馬嶺/800m)

영동 황간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고개

'말을 키우던 마을',  '칼 찬 장수들이 넘나든 고개'에서 그 이름이 왔다는 설...

하긴 나제(羅濟) 국경전선 이었으리니...

.

▲ 어제의 포근함은 어디가고

날려 갈듯한 칼바람.

아무리 추워도 박총무님!(앞 좌측),  사진사 광산선생님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 추워 자동으로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상용정(上龍亭)'

올라 보기는 커녕, 바람을 피해 아래에 숨었으니.

 

▲ 1.6K를 여러번 쉬며 힘겹게 넘나듭니다.

상고대는 점점 짙어지고 

 

▲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풉는 나무처럼...

세월을 먹었으니

질투, 미움, 짜증. 분노.

비워냈으면 좋겠습니다.

 

▲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무엇하나 그대로인 게 없는데

비도덕적 인간성은 그대로인 필자.

 

▲ 하얀 상고대 앞에

냄새나는 인간 본성이 부끄럽습니다.

 

▲ 이 바람이 춥겠다

어서 봄을 불러보렴.

 

▲ 선미와 순옥...

평생 신나고 즐거운 일만 하실 자격이 충분한

인간성을 가졌습니다.

 

▲ 아! 호쾌한 산 줄기....

아래 사진을 참고 합니다.

 

▲ 삼도봉은 전라도(전북 무주), 충청도(충북 영동)

경상도(경북 김천) 가만나고 ....백두대간이 그렇게 흐릅니다.

거기엔 대 화합의 탑이 있습니다.

 

▲ 산,  모나지 않은 둥글 둥글한 산.

그리고 거기를 넘나드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보자고.

 

▲두 볼을 두드리는 세찬 바람,

그래도 싫지 않은 환희의 빛에

눈물이 뚝 떨어집니다.

 

▲ 왜 제 사진만 자꾸 넣느냐구요,

제 블로그이니....제 맘 인것은 어쩔수 없는 일

 

▲ 진정한 자유함은

낯선 길로 들어서는 나의 발끝에서 시작된다는데

 

▲ 이제 각호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 가야 할 1185봉, 그리고 민주지산

숨이 멎도록 장엄합니다.

▲뿔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의

'각호산'(1176m).

 

▲ 힘겹게 올라온 고단함은

훨훨 날아가고.

 

▲ 이제 후들거리는 밧줄이 기다립니다.

 

▲ 저렇게 대롱대롱, 부들부들...

다른 사람이 나를 봐도 그럴테지.

 

▲ 무사히 내려온 자의

여유로운 올려다 봄. 

겁먹고 서 있는자들이 '꼬소'합니다 

 

▲ 그렇게 다시 올라, 방금 내려온 각호산

그 봉을 봅니다.

 

▲ 여기서 황룡사로 내려 보내기도 하고

우린 민주지산을 향합니다.

 

▲ 우측 삼각봉이 민주지산입니다.

 

▲ 치열한 겨울!

 

▲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는 '십자로 갈림길'

눈 속의 그 길은 다닌 이들이 많지 않아 힘이 들겠습니다.

 

▲ 점점 멀어지는 각호산..

 

▲ 산등성 매서운 바람은

점점 쎄지고...

 

바람을 질투하는 햇살은

눈 부십니다

 .

▲ 커다란 산맥에 휘몰아 치는 눈보라를 이기며

오라 삶이여!

 

▲ 볼테기 얼얼한 바람을 막아준 쉘터

정으로 둘러 앉은 남녀....

젊은 청춘은 아니니 '사고'야 나랴마는....

 

▲ 피할 수 없다면 즐겨랴

감정까지도.

 

▲ 쉘터 속에

들기전의 얼굴관 딴판들 이었으니...

 

▲ 그게 어디 몇가지

먹고 마신 것 때문 뿐이랴?

 

▲ 어느덧 50- 60을 바라보는 청춘들

그래도 '썸씽'은 생각보다 멋지진 않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도 않을 것입니다.

 

▲ 그저 필자 혼자 생각입니다.

 

▲ '가장 비겁한 사람은

자기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 그러니 감정은 솔직하게

외로움은 치열하게 ....

그러나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 뭘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고

제대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갰고..

 

▲그래도 지금 우리는

잘 가고 있듯, 잘 살고 있는 겁니다.

 

▲ 반짝반짝 등대 빛은 못 비추더라도

선한 사람 휘돌려 배반한 삶은 아니었으니까.

 

▲ 너도, 나도

그리고 우리도....

 

▲ 민주지산 300m을 남겨두고

무인대피소를 만납니다.

 

▲ 1998년 4월 2일

민주지산 정상 부근에서 야영하던 특전사 대원들이...

 

▲ 갑자기 내린 폭설과 추위에 탈진하여

19세부터 28세까지 6명의 청춘들이 숨졌습니다.

 

▲ 고인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 산도, 자연도

그렇게 무서운 것.... 경외감으로만 대해야 합니다.

 

▲ 바람은 골에서 부터 눈을 밀어올려

저리 쌓아두고.

 

▲ 산은 스스로 차별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눈오면 눈에 덮히고, 비오면 비 맞으며

스스로의 본 분을 지키며....

 

▲ 전라도서 왔든, 경상도서 왔든

충청도서 왔든지....공평하게 안아 줍니다 산은....

 

▲ 아! 이제 민주지산...

 

▲ 우측은 석기봉(石奇峰·1,200m),

좌측은삼도봉(三道峰·1178m) 입니다..

 

민주지산(岷周之山·1,242m)

'민두름산'이라 불리던 산이 일제감정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렇게 되었답니다.

 

▲ 좌측 황악산.그 기슭엔 직지사가 있고.

좌, 우측으로는 장엄한 백두대간이 흘러갑니다.

 

▲ 그 여름 날 걸었던 석기봉, 삼도봉길은

다음으로 미루고....내려갑니다.

 

▲ 석기봉에서 되돌아 보면

오늘의 산은 이러겠지요.(옮겨온 사진입니다)

 

▲ 민주지산에서 석기봉은 2.3K

각호산까지는 2.8K.....

 

▲ 되돌아 보고, 또 되돌아보며....

아쉽게 ..

 

▲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 우리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회가 있었던가

.

▲ 인생의 길에서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건 얼마나 다행인지...

 

▲ 만약 먼 미래에

지금을 돌아 본다면

그렇게 좋았었어!  그 눈 길이...

 

▲ 바람. 시간. 햇살까지를 포함하여

그 때 참 좋았나 봐...

 

▲ '불륜'같이 누워보자고 했지만

깨닫게 된 사실...

배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을.

 

▲ 4월 제주 산행에 '4인 1실'은 그대로 둬야겠습니다.

'2인 1실'은 역시 아무나 하는게 아닙니다.

 

▲ 그래도 쉩터에서 밥을 먹고

'동거'로 누워봤으니....

난 괜찮지만, 집에서들 쫓겨나지 않을런지.

 

▲ 구술붕이, 자란초, 산꿩의다리

박새, 고광나무, 함박의 꽃나무...

 

▲ 여기 '쪽새골 골짜기'는

곰배령을 생각나게 합니다.

 

▲ 동자꽃, 원추리꽃, 투구꽃,

개쑥부쟁이.....

 

▲ 뭐하러 서보라 했는지 후회했습니다

하필 '짝'을 맞춰서....

 

▲ 구술붕이, 자란초, 산꿩의 다리, 고광나무

함박의 꽃나무.....

이름을 불러 주었으니 건강하게 잘 자라겠지요

김춘수의 꽃'처럼.

 

▲ 긴 눈 길도 점점 끝이 납니다.

 

▲ 그러니까 민주지산 정상에서 4.6K입니다

주차장까지는.

 

▲ 좋아하기와 사랑하기

무엇이 다를까?

좋아하기는 머리로, 사랑하기는 가슴으로?

 

▲ 삼도봉에서 내려오는 계곡 길과

만납니다.

 

▲ '그를 생각하면 머릿 속이 텅빈듯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거고

 

그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뚫린 것처럼 휑하다면

분명 그를 사랑하는거다.'

 

▲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뭘하고 놀까 계획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무것도 할 수없다.'

'이애경' 작가의 책에서 읽었습니다.

 

▲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세월의 주름은 얼굴에만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 물한리 주차장에서 물한계곡을 거쳐

삼도봉을 도는 길은  둘만 와야 짜릿 하겠습니다.

2인용 쉘터도 짊어지고...

 

▲ 그러다가 아는 사람을 만난다면

'여보 인사 해' 

부부처럼 그리 둘러대면 될 것입니다.

 

▲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 상류에서부터

 20를 흐르는 깊은 계곡, 물한계곡(勿閑溪谷)입니다.

 

▲ 청룡사로 향하는 출렁다리.

마음까지는 울렁이지 않겠지요

 

▲물(勿閑)은 한자로는 '한가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물이 많다'고 물한으로 부른답니다.

 

▲ 황룡사...

지은지 10여년 밖에 안되었답니다.

 

▲ 이제 주차장으로

아쉽게 걷습니.

 

▲ '수수', 수수떡,,,그러다가 빗자루를 만들고...

문득, 아련한 고향도, 엄마도 생각납니다.

 

▲ 그렇게 물한계곡도 끝이나면

오늘 산행도 마감되는 것인데.....

 

▲ 순직한 장병 추모비를 물어물어 찾았더니

두 달전 이렇게 바뀌었더군요.

 

▲ 삼도봉 '대화합 기원탑'을 축소해 놓은듯...

 

▲ 충북 영동군이 자랑하는 난계 박연.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역사는

기념관에 전시되어있습니다.

▲ 우리고향 충북의

최남단 영동군에서 함께한 행복한 산행...

평평 눈이 쏟아지는 날에

 

'새뱅이 찌개'(충청도는 민물새우를 새뱅이'라 함) 는 어릴적 추억이 생각났으니....

행복한 하루 감사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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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당(松雪堂) / 박연

 

우뚝한 임금 글씨 법궁에 빛나니, / 倬彼天章映法宮

그 광채 아롱져 화산처럼 높구나. / 昭回影接華山崇

몸소 주고받아 정이 들던 날, / 身扶授受相傳日

큰 경륜 드디어 협찬하였네. / 道大經綸贊化工

 

천길 샘을 파든 그 의지, / 掘井千尋曾有志

삼태미 흙을 쌓아 산을 이뤘네. / 爲山一箕不虧功

공중에 소리 없이 오른 임, / 雲衢若許乘槎客

하늘나라 무사히 갔는가. / 直欲尋源上碧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