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충청도

충북보은.속리산(俗離山·1,058m/화북탐방지원센터→문장대→신선대→세심정→세조길→법주사→오리숲→주차장(11K. 5시간)

산꾼 미시령 2017. 11. 12. 21:51

 금계필담(錦溪筆談)

 고종10(1873), 서유영이 쓴 조선 단종부터 순조 때까지의 왕으로부터 하층민까지

이들에 얽힌 이야기나 풍속등의 141편 이야기의 설화집이다.

 

 역사적인 사실일 수도 있고 그냥 전해오는 구전을 정리한 것도 있는데 얼마전 KBS-TV

'공주의 남자'의 기본 스토리에 나오는 '세희공주' 설화를 소개하고자한다

 

 세조! 조선의 7대임금으로 13년 왕으로 재위하고 51세에 죽었다

 왕되기 위해 단종사건만도 268명을 죽였고, 그외 황보인 김종서등을 죽인

계유정란등을 합치면 헤아릴 수 없다.

 

 그에게 사랑하는 딸 세희공주가 있었다 아버지를 비판하고 갈등을 겪다

자결 하려하기까지 이르고 가까스로 어머니 정희왕후가 몸종하나를 붙여서

멀리 가서 인연 끊고 살라한다.

 

 여러 날을 헤멘 끝에 사경을 헤멜 지경에 이르러 충청도 보은의 어느 산골로 가던 중

한 총각의 도움을 받게되고 결국 세희와 이 총각은 사랑을 나누며 결혼까지 하게 되고

딸 아이 하나를 얻는다.

 

 어느 날 세조는 늙고 피부병까지 들어 보은 속리산에 가던중 한 꼬마 아이를 만나

그 아이를 따라 아이의 집에 가보니 죽은줄 알았던 딸 세희공주가 거기있었고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모르고 밖에 나갔다 돌어오던 남편은 세조인 것을 알고 들고 있던 낫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다가 부인이 세조의 딸인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남편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이 직접 김종서를 죽이는 걸 숨어서 눈물로 지켜봤던

김종서의 손자 김승유였던 것....

 

 세조는 며칠후 사람을 보낼테니 온 가족이 궁궐로 올 것을 약속하고 떠났고

그 사이 가족 셋은 또 다시 숨어사는 먼 길을 떠나는 가슴아픈 설화....

 

 물론 이 이야기는 정사에는 기록된 바 없다.

 그 세조는 딸의 저주였던가 심한 피부병등을 앓은듯하다.

 충북 청주의 초정약수에 다녀갔고, 보은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는 그의 행차시

일어난 사건으로 장관급인 정2품 소나무가 있다.

 

  그가 스승인 신미대사가 있던 복천암을 오가며 목욕했던 목욕소등을 엮어

최근엔 '세조길'로 명명하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련한 추억과 아픔이 있는 그리운 속리산. 법주사

깊어가는 가을에 정겨운 님들이 거기를 간다.

속세 넘어 왕이 거닐던 길을 따라서,

 

▲ 만추의 계절...

만차되어 달려 온 정겨운 님들이 

경북 상주의 화북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섰습니다.

 

천황봉(1,058)까지 다녀오겠다는 여섯분!.

듬직함에 응원하며 서 보지라 했지요.

 

▲ 새로 신설된 주자장에서 200m를 더 올라오면

화북탐방지원센터가 있고.

 

▲ 백두대간은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되어

여기 경북상주와 너머 충북 보은방향에서 본

안내도가 정겹습니다.

 

속리산은 고운 최치원의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라는

시가 전해오는 명산입니다.

 

▲최고봉 천왕봉은

백두대간이 지나며 우리 땅의 큰 산줄기

13개 정맥 가운데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뻗어

 

충북내륙으로 북으로,  안성으로 이어지고,

한강과 금강, 낙동강 물 길로 나뉘는 분수령이 되기도 하지요.

 

▲단풍은 아쉽지만

서늘한 공기에 상쾌함 그지없고...

 

▲ 오르며 성불사와 오송폭포를 다녀오지 않는다면

문장대는 3.3K입니다.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 오르며 정겨운 님들이 잠시 쉽니다

인생의 황금가는 아직 많이 남은

'청년'들이지요.

앉을 때 '아이고, 아아구구' 소리만 안 낸다면...

 

▲ 4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지리의 뱀사골에서 실족으로 생을 마친

우리 대학 선배 고정희 시인의 싯귀

 

'5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 세우며

 

신록사이로 길게 내려 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 이 늦 가을에 왜 신록의 뱀사골 노래가 생각 났을까?

선배가 그립습니다.

 

▲낙엽은 지고나면 그 뿐

또 다시 우리의 한 해가 그렇게 가겠지요...

 

인생은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것

세월이 흐르듯,  삶이 그렇게 흘러가듯...

 

▲ 조금은 시끄러운 정겨운 님들이랑 같이이니

힘든 줄 모르고 오릅니다.

 

▲ 늘 푸르른 봄 날 일수만은 없는 거지요

처음부터

나도 우리도..

 

▲ 이제 칠형제 바위가 나타납니다.

문장대 정상에서 보면 영락없는 7형제들이지요

 

▲ 조운 시인의 시였던가?

 

'산에가면 나는 좋더라

바다에 가면

나는 좋더라

 

님하고 가면

더 좋을네라만!

 

▲ 어느 해였던가

눈 쌓인 산죽이 소담 스러웠었는데...

 

▲ 문장대를 오르던 중  만난 '천왕봉 팀'

오늘따라 더욱 멋진 님들은 벌써 내려오고..

 

여기에 김경환 부대장님이 함께 아닌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사진이 좋던지요.

 

▲ 그래도 오늘은 한적한 편인 인파....

문장대는  천왕봉보다 4m 낮은 1054m입니다.

 

▲내 젊은 시절에는

"항상 구름이 가득 서려있다"고 하여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했는데

이 곳에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조(世祖)

이 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하여 문장대(文藏臺)라 했으니..

필자는 한 스무번 올랐다 했더니

며칠전 신문보도에 3000번 오른 이가 나타났습니다.

 

▲ 문장대 정상에서 바라 본 칠형제 바위

 

▲ 북쪽으론 관음봉(982m)과

그 너머로는 지난 여름 올랐던 묘봉,상학봉이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 저 멀리  하산지점 법주사와 오리숲,

상가, 주차장도  보입니다.

 

 

.

▲ 백두대간 길을 따라 그렇게

천왕봉으로 이어집니다.

 

▲ 백두대간 주능선으로 최고봉인 천왕봉(1,058)과 함께

문수봉(1037m),  청법대(1018m), 신선대(1025), 입석대(970m), 비로봉(1,032),...

  해발1,000m내외의 암봉이 우뚝솟아 있습니다.

 

▲ 그 우측으로 그림같은  운해가 그리움으로 아득하고

저 너머,그  너머에 우리 고향 땅도, 부모님 산소도

그리운 초등학교 추억의 뒷 산도 이어지겠지요

 

 

2의 금강산' 또는 '소금강'이라 불리었고,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속리산....

 

▲ 거기서 이제 오르시는 광산 선생님을 뵙니다

언제나 열정과 헌신이 넘치는 발걸음이 존경스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히 제가 그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랜 세월 시장 바닥같던 휴게소는 철거되어

생태 복원이 이뤄지고

 

▲ 거기 따뜻한 햇살 바위에 앉아

같이 밥을 먹고나니

한결 친해진듯 합니다.

 

▲여기서 천왕봉은 3.1K

법주사로 내려 가는 길은 5.1K

우린 1.3K 신선대에서 내려 갈 예정입니다.

 

▲ 오랜 세월 그렇게 자라준 멋진 소나무.

그 힘든 정상 바람 속에도 곧게 자랐습니다.

 

▲ 문수봉을 지나며 ...

신선대까지는 30여분이 걸립니다.

 

▲청법대(1018m) 입석대, 비로봉(1032m)으로

이어져

 천왕봉은 신기루처럼 아련합니다.

 

▲오르다가 되돌아보면

여유로운 자에게만 보여지는 풍광이 펼쳐집니다.

 

▲ 그 시절, 그 친구들도 저 봉을 같이 봤겠지

저 바위들도 나를 봤을까?

어느 하늘아래, 나처럼 세월의 나이를 먹어가겠지요..

 

▲ 사람의 정이 그립고

서러운 옛 추억이 밀려옵니다.

 

▲ 신선대는 커피, 빈대떡등을 파는

 작은 휴게소가 있어 쉬어갑니다.

 

 

▲ 문수봉, 청법대를 배경으로

거기 서 보기도 하였지.

가을이라 그런가

삶이 참 쓸쓸하단 생각이 듭니다

 

▲ 저마다 그리움을 안고 길을 갑니다.

그 오랜 세월에서

의기 투합하여 우정으로 이겨보려고도 하고,

 

사랑의 화살을 쏘아보기도 했고.

사랑에 빠져 이성을 잃어 버렸던 적도 있었답니다.

 

▲ 그러다가 그러다가

 소월은 그 사랑의 격정을 이기지 못해

33세란 젊은 나이에 스스로의 의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이젠 천왕봉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우린 내려갑니다.

 

▲ 산은 항상 그렇게 있지만

그 산을 오르는 인생의 마음은 세월 따라,

계절 따라,

삶의 애환 따라 다르게 다가옵니다.

 

▲ 그렇게 흘러가다

가을볕 따뜻한 계절에 이 길을 갑니다

오늘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전하며

'입석대'를 올려다 보고 오라고

버스에서 힌트를 드렸습니다. 세희공주 이야기와 함께.

 

 

▲ 버스에서 임경업 장군를 신립장군으로 혼동하여 임진왜란 충주성 싸움으로

잘못 전했습니다. 임경업장군이 심신을 단련했다는 경업대에 앉아

그렇게 건너 비로봉도 올려다 보고

 

▲그 경업대에 앉아

임경업 장군이 세웠다는 '입석대(1016m)'도 올려다 봅니다.

 

▲ 방금 내려온 신선대는 나무에 가렸고

 

▲ 임경업 장군이 심신을 단련했던

입석대, 경업대..

 

▲ 경업대부터는 아득한 철계단을

 내려갑니다

 

▲ 그 시절 찬란했던 만산홍엽 단풍 길은

아쉽게 절정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 그렇게 내려서면 금강골 휴게소를 만납니다.

문은 닫혔고.

 

▲ 산장지기의 조카 혼사라도 있던 날인가

혹 병환이 아니기를 빌어봅니다.

 

▲ 금강골의 그 포근한 길은 돌고 돌아

서러운 세월처럼 흐르고..

 

▲ 정채봉이 그랬습니다

'소녀가 나무에게 물었다

사랑에 대하여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들려다오..

 

▲....'나무가 말했다

꽃피는 봄을 보았겠지?

그럼...

 

잎 무성한 여름도 보았겠지?

그럼...

 

▲'''일 지는 가을도 보았겠지?

그럼..

나목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겠지?

그럼..

 

▲ 나무가 먼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도 끝났다.

 

정재봉의 '사랑은' 시는 그렇게 맺습니다.

 

▲ 비단길 같은 낙엽의 길,

세월도 흐르고 사람도 그렇게

물 길처럼 흘러갑니다.

 

▲ 이 좋은 길을 걷고나면

몸도 마음도 절로 치유되고..

 

속리산의 숨은 명소 '비로산장'

 계곡을 낀 산장은 주변으로 큰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분위기가 그만입니다.

 

고 김태환 씨가 지은 개인 산장으로, 50여년 역사를 이어오고

 지금은 대를 이어 가족이 운영하는데. 산장 마당에 녹차, 커피, 쵸코렛을  건네며

미안한 마음은 나무둥치  한 개 옮겨주는 것으로 풀고 가도록 배려합니다,

 

  . 계곡 물소리 벗 삼아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 이 계곡의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지요.

 

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

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사람들이 때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

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시를 남겼습니다.

 

 

 

▲속세를 떠나는 속리산 이름처럼

어느 날 삶의 시간을 잠시 로그아웃하고 

어디론가 따나고 싶은 계절...

 

▲ 오늘 날 BC카드처럼

여행을 위해서는 곡식을 짊어져야 했던 시절...

 

이 골짝에는 곡식 찧는 이런 절구가 400여개가 있었다니

자칭도사, 묵객, 수양하는 이..

가득 했을 겁니다.

 

▲ 문장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신선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세심정(洗心停).

이름과는 달리 막걸리,파전이 유혹합니다.

 

▲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복천암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하산 시간이 가까워 오고.

 

▲ 재미없던 도로길 옆으로

세조길이 법주사까지 조성되고 있습니다.

 

 

▲ 세조가 목욕하다가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나았다는

목욕소는 한창 데크 공사중이고...

 

▲ 저수지 안에 가을도,  하늘도

수려한 산도 잠겼고,  물고기가 살랑거립니다.

 

▲ 가을이 내려앉은 저수지

세조길 덕분에 호젓한 숲길을 갑니다.

 

▲ 13년 재위를 하려고

300여명을 희생시켰던 조선 7대임금 세조...

그가 그 시절 여기까지 왔으니

그도 참회의 세월은 있었겠지요.

51세 생애 말미에..

 

▲ 단풍은 조금 지났어도

적당한 인파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 그렇게 법주사에 도착합니다

어릴적 추억과 그리움이 서린 곳...

 

▲ 최고의 명당 법주사

  553(진흥왕 14)에 의신이 창건했고,

776(혜공왕 12)에 진표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미륵 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바뀌었습니다.

 

 '호서 제일 가람' 별칭처럼 국보 3, 보물 12,

시도유형문화재 22점 등 문화재가 많다.

 

▲ 쌀 40가마로 밥 했다던 쇠솥

지름2.7m, 둘레10.8m로

보물 제141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대웅보전

여러 보물로 지정된 불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 작년 겨울 교직원 나들이 때

나이드신 스님이 포토 포인트가 여기라

알려주셨던 곳에 서 봅니다.

 

▲팔상전, 국보 55호인 5층 목조탑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건축물로 중,개축을 거듭했지요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그린 8장면의 팔상도가 있습니다.

 

▲ 사천왕석등(보물15호)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 양식입니다.

뒤로 대웅보전과 좌측으로 원통보전(보물916호)이 보입니다.

 

▲ 쌍사자석등. 보물 제5호입니다.

신라석등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2층 대웅보전, 보물915호입니다

그 앞 뜰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석연지(국보 제64호)

8각의 바침대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목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 무늬로 장식한 간석을 놓고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모습의 걸작품입니다.

 

▲ 추래암,

제 어릴적에는 저 위에 500년 된 작은 소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시절 고사하고 지금은 탑을 놓았습니다.

 

▲ 그 옆에 고려시대의 마애여래 좌상이 미소짓고 있습니다.

보물 216호랍니다.

 

법주사 경내에는 원통보전,

석연지, 철당간, 무쇠 솥, 마애여래의좌상 등

유물이 많으나.

시간이 급해 더 세밀히 추억하지 못하고

....

속리산버스터미널부터 법주사까지

 이 길은 10(4km)가 안 되고 5(2km)만 이어진다고 해서

오리숲길입니다.

 

밑동 굵은 소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 곡선을 그리는 소나무가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호서제일가람'

우리 속리산 법주사는  그런 곳입니다.

 

모처럼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산행의 맛을 더해준 날이었습니다.

 

요즘 하늘을 바라만 보아도 참으로 행복합니다

 애국가 가사처럼

가을 하늘이 공활합니다. 올가을은 유난히..

 

▲ 마지막 남은 단풍에 햇살이 빛나고

할머니급 소녀들도 추억으로 낙엽놀이를 합니다.

 

▲ 인공 폭포옆도 지나고

산행은 끝이 납니다.

▲ 내 고향 충북....

바다가 없는 유일한 내륙이지요.

통행금지가 엄격했던 시절에도 충북은 통행금지가 없던 고장입니다.

 

▲ 충청도 인심으로 듬뿍 넣은 참기름에 비빔밥을 한 그릇 뚝딱하고

숯한 추억이 서린 속리산 입구 주차장,상가 길...

짧은 햇살은 어둠이 벌써 서러움으로 내려앉고

 

정이품송 [正二品松]

 천연기념물 103호입니다,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조의 이야기와 함께

 수령 600여년 지났지만 세월엔 장사가 없는듯 우람한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속리산의 상징입니다.

 

 

속리산을 가려면 비포장 12구비 '말티재'

차에서 내려 차를 밀면서 넘어야 했습니다.

 

포장되면서 많이 길이 넓어지고 구부러진 길이 바로 서더니

최근엔 터널이 생겨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 그렇게 며칠전부턴 설램속에 기다렸던

내고향 충북의

속리산,법주사 산행길...

 

다시금 아픈 추억을 남기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온 하루.

 

정겨운 님들이 아니였으면

많이 그립고 아팠을 길입니다.

 

 

▲ 그렇게 산행가이드 되어 안내한

속리산...

영원히 거기 그렇게  있을 것입니다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을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