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내 이름은 ‘일석’(日錫)이였다. 52세 ‘아부지’에게 ‘신의 선물’로 태어난 이 이름은
온 동네가 ‘일식아’, ‘일식이네’, ‘일식이 아부지’, ‘일식이네 소’, 그리고 ‘일식이는
이번에도 1등 했댜!...(충청도는 ’석‘을 ’식‘으로 발음한다)
그런데 학교 들어 갈 즈음 내 이름이 호적에 ‘천석’(天錫)이라는 걸 첨 안다.
연유를 들으니 동네 ‘이장’이 ‘面(면)’에 간다기에 출생신고를 부탁했고 이장이
‘이름이 뭐냐?’니 ‘일석’이라고 하니까 옆에서 사촌형이 장난삼아 ‘一錫’보다는
‘千錫’이가 많고 좋지 않느냐? ‘천석꾼’ ‘만석꾼’.. 농담했고, ‘면’에 도착하니
‘천석’이만 기억되어 그렇게 되었단다.
그래서 난 ‘천석이’가 되었는데 문제는 학교에서 가끔 동네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일석’
이라고 이름이 튀어나오는 거다. 그렇게도 엄명을 하고, 고구마등 뇌물로 줬건만...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겠지만 간혹 의도적인 녀석도 있었으리라. 이럴 때는 난
‘너 ’아부지‘이름 000이지?’ 역공한다. 그 시절은 왜 그리 ‘아부지’이름들이 촌스러웠는지...
그러던 3학년 봄, ‘어머니 날’, 엄마들을 초청하여 강당에서 학예발표가 있었고,
내가 연극 주인공 “곰 차장‘과 웅변 ’어머니 은혜‘를 한다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가 학교에 오셨다.
행사가 마치고 쉬는 시간, 화단 쪽 창문이 열리면서 ‘일석아 일석아!’ 낯익은 엄마의
부르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아! 일은 벌어졌고 눈앞이 캄캄했다. 나중 들으니 학교행사에 ‘아이스케키’ 장사가 왔고,
같이 참석한 사촌 형수가 ‘작은어머니 잡수시라’고 ‘아이스케키’를 사 드리니 엄마는 그걸
가지고 내게 달려 온 거다. 줄줄 녹으니 얼마나 급 했겠는가?
그 날 집에 가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학교에선 여러 날 놀림감이 되고 싸움이 되었다.
그 후, 엄마는 2년이 채 못 되어 50초반 연세로 내가 5학년 진급을 앞둔, 2월 추운 날,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머니’ 같이 비녀 꽂은 엄마!, 지금 사진 한 장 없는 그 모습이
그래도 가몰 가몰 기억 되는 것은 ‘아이스케키’를 볼 적마다 늘 그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아이스케키’가 아니였으면 벌써 그 흐릿한 엄마얼굴도 잊혀졌으리라..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지금도 난 그 ‘아이스케키’비슷하게 생긴 ‘비비빅’과 ‘석빙고’만을 고집한다.
가끔 힘든 산을 올라보면 어떻게 지고 올라 왔는지 꽁꽁 얼려 잘못하면 혀가 붙어 버리는
‘아이스케키 장사’를 만난다. 영락없이 그 산에서 엄마를 만난다...
사천 와룡산 (臥龍山, 801.4m)
지난 5월, '노랑 연두'빛 신록과 철쭉의 향연에 취했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아홉개로
형성되어 '구구 연화봉'라고도 하고,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산(臥龍山)이라 불리는 그 곳을 간다.
‘사천’ 인들에게 엄마 같은 그 산을...
처음 계획은 '남양저수지'였으나 산불 감시원이 출근전 올라야 했다.
급히 역순으로 '용강정수장'에서 올라 원점회귀 산행으로 바뀐다.
산불감시원의 출근전 급히, 조용히 올라야 하는데
모두들 즐거움으로
시끄럽게 '용두봉'으로 오른다.
춥던 날씨는 포근함으로 바뀌고 누워 있는 용의 머리 '용두봉'에
오르니 삼천포 시내가 조망되기 시작한다.
좌측으로는 '민재봉' 아래로 '와룡저수지', '와룡마을'이 정겹다
지난 5월 저리로 시작하여 '도암재'부터 올랐다.
그 날 삼천포 사는 친구가 '갑오징어회'를 한 박스나 가져와 포식했는데
오늘은 몰래 다녀간다. 다 빚으로 남으니..
오늘 산행은 우측으로 돌아 좌측으로 내려온다
중앙에 '새섬봉', 좌측은 '상사바위'(천왕봉)이고
우측 봉우리가 '민재봉'이다
'삼천포 화력'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고성군에 속한다.
그 너머로 길게 앉은 '사량도'가 조망되고..
새로운 연륙교가 생겼다는데...내게 가자는 사람이 없다.
용두봉을 지나 행글라이더 활공장이다.
지난 봄에는 수없이 올랐는데 오늘은 종일 조용하다
바람도 없는데...
진주 정씨라던가? 후손들의 정성이 아름답고
한려해상을 바라보는 조망좋은 터전이 부럽단 생각을 한다.
고압선 아래서 올려다 본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00년 사람인데 어찌 기하학을 그리 알았을까?
'피타고라스 정리'도 가몰 거리고...
지난 5월 평안히 내려오던 6.5K 길은
그렇게 계속 오름이다.
'미녀3 총사 모이시오' 그래 놓고 보니
'통영'의 시인 '김춘수'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 안연한 안부에서 곶감을 나눠먹고..
곶감 있은 곳에 호랑이가 나오는데?
아닌가? 메주 쑤던 날이던가? ..
다시 오르내린다.
계속 김춘수의 시를 음미하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측으로 우리가 올라야 할
'사자바위' '기차바위' '민재봉'을 본다 좌측은 '새섬봉'이다.
그렇게 5.1K를 올랐다.
여기서 와룡마을로도 내려갈 수 있다.
'사자바위'를 오른다. 오늘 우리 대장님은
계단으로 가거나, 줄 잡고 가면 안된다고 엄명한다.
계속 따른다.
'사자바위'에 올라 '와룡마을'도 조망하고...
좌측봉이 우리가 올랐던 '용의 머리 용두봉'이다.
우리는 오늘 용의 머리부터 몸으로 기어 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제 기차바위 이다.
삼천포 사람들은 일찍 기차를 봤다.
그러니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제주도나 울릉도 사람들은
기차바위라고 안 했을거다.
어릴적 우리도 '기차를 타 봤냐?'가 큰 자랑이었다
하기야 독일의 '괴테'도 영국의 기차를 흠모했는데 자기 조국에서는
그의 사후 2년후에나 기차가 생겨 타보지 못했다.
어렵게 '노랑 샤쓰'를 모셨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내말이 아니다 ..김춘수가 그랬다.
약간 당겨서 찍으니 이런 풍경이고...
언제나 정겨운 분들이다.
한려해상 풍경이 놀라워서 와룡에서는 용도 눕고, 사자도 눕고,
백천사 부처님도 눕더니..
오늘 우리 회장님과 부회장님도 눕는다.
기차 바위를 떠나 저 멀리 '민재봉'을 향한다.
여러번 '황소 숨소리'를 내야한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저렇게 민재봉이 앞에 있으니..
이윽고 '민재봉'에 올라
사방에 펼쳐진 풍광을 본다.
우리가 올라온 길 6.5K 다. 민재봉을 중심으로 좌청룡인 셈이다.
그 너머 섬들이 조망되고...
여기서 '새섬바위'는 1.6K,
'백천재'로도 간다.
최근까지 민재봉은 와룡의 주봉이었는데 높이를 보자 799미터..
우리나라는 '25,000분의 1'지도에 등재되는건 800미터 이상 이란다.
얼마나 아쉬운가!
일제강점기시절 봉을 깎았단 설도 있고...그랬는데
아!! 2001년, 현대과학의 위성측량결과 새섬봉이 801.4m 로 측량되었으니
'사천'사람들의 환호는 얼마나 대단 했겠는가!
그 후 주봉을 '새섬봉'에 내 주었지만 위치상 좌청룡(기차바위,사자바위,거북바위,용두봉),
우백호(새섬봉.상사바위) 거느린 기품은 여전히 주봉 못지 않다.
이제 가자 지난 봄 날, 여기서 새섬봉까지의 1.6K 길은
철쭉과 '노랑연두'에 황홀했다.
안연한 헬기장에서 정겹게 식사를 하며 나아 갈
새섬봉과 천왕봉을 본다
다시금 '좌청룡' 지나온 길도 보고...
그리움으로..
다시 새섬봉을 향하자..
반대쪽 산꾼들 중 70여세가 훨씬 넘었을 남녀 노인분들을 만난다.
우린 저 나이되면 오를 수 있을까?
그리 부러워들 하며...
여전히 계단이나 줄을 잡고 가서는
날렵한 대장님을 따르는 '예의'가 아니다 오늘은..
벌써 저렇게 올라있다 우리 대장님은...
좌측아래로 '백천사'도 '덕곡저수지'도 보인다.
어느여름 백천사를 갔는데 누워있는 부처님이 인상적이었다
사방 조망이 아름다운 새섬봉,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새 한마리가 겨우 앉은 그 곳이란다.
1.4미터..그 소중함이 더욱 간절하다...
아! 사진을 보니 역시 김추수의 '꽃'이 맞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김춘수의 노래를 끝내야 하지..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 새섬봉은 여러 암릉길을 걸어야 한다.
옆 우회길이 있지만 오늘은 안된다
오직 암릉 길로만 가야한다.
아득히 내려온 길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기차바위에서 내게 모델이 되어 주셨으니
줌을 당겨서도 찍어드린다.
줄을 잡아서는 안된다니!
그리고는 다시 오른다
바람이 없어 천만 다행이다.
그리곤 다시 내려서고
여름 장갑을 안 가져 왔더니 맨손으로 ..
고역이다.
이제 새섬봉이 그리움으로 아득해 졌다.
세월도 그리 하리니..
사람의 두 발은 참 위대하다
그렇게 오르고 내리고 그렇게 잘들 간다
가다가 다시 '와룡마을'쪽의 풍광을
감탄하며 보고
지나온 '민재봉' 방향을 돌아보기도 하며
사진찍으려 대기중이다.
사진사도 모델도 훤칠해야 사진이 잘 나오나 보다..
역시 '좀 더 뒤로!' 이래선 안된다.
어느사이 없어진 '김대영'부회장님은
저 아래 왕관바위에 좌정한다
종일 '다람쥐'이다.
지난 5월, 그리 숨가팠던 너널 길...
내려간다 오늘은..
완전히 도암재로 내려가 다시 올라야 할
상사바위(천왕봉)..
큰 암벽 허리를 휘돌아 구름 띠처럼
데크 시설이 되어있다.
그렇게 왕관바위에 선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인데..
종일 우리 동료들이다 고마운..
다시 내려가다 탑들 앞에 서서 우리 대장님은 무엇가 허리 숙여 기도한다.
내가 그랬다 '기도하고 가시면 아들 낳을실건데...'
다들 낳으셨단다. 이미..
그렇게 '도암재'에 닿아 방금 내려온 봉을 올려다 본다.
대부분 좌측 와룡마을로 내려가고
우린 500미터 상사바위(천왕봉)에 오른다.
다시 그 500미터는 깊은 숨소리를 내야한다.
'와룡'의 비늘인가?
여러곳에 이런 바위들이 산재한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훈련하는 상사바위 암벽이다.
자일 고리들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이제 그 500미터도
저 만치 끝이 보인다.
그 천왕봉에 올라 우리 대장님과 포즈를 취하지만..
나도 빨간 모자를 사 봐?
우리 '3총사 꽃님'들께 송구했다 다들 올랐는데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아래 비석에 취해서...
그리고 종일 돌아온 左청룡, 右백호 길들을
파노라마로 보며..
2000년 9월, 36세의 나이로 네팔 히말리야 등반 때 눈사태로 사망했다는
설명이다. 비문을 천천히 본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전설로,,,'
동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좌측 길, 암벽 길도 있고 많이 이용하지 않아
없어진 길, 낚엽으로 미끄러운 길을 힘들게 내려간다.
그리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내려온 길을 올려다 보며
지난 5월, 등반대회 잔치했던
'용두공원'에 닿는다.
그렇게 정겨운 님들과 멋진 하루가 저물고
11월의 마지막 산행을 추억으로 묻는다.
차가운 날 동태찌개의 감동과
그리움도 같이...
사모곡 (김태준)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오늘 모든 우리들 '엄마'들께 오늘 졸작 산행기를 바칩니다..)
'山行..그리움따라 > 경남.부산.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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