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상북도

[스크랩] 신풍령휴게소(빼재)-부부바위-삼봉산-챙이바위-소사고개 (7.5K) 4시간.

산꾼 미시령 2015. 7. 14. 13:26

근에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지만 한 번도 보지못했던 기황후(奇皇后)!”

이번에 국사공부하면서 아주 흥미롭게 그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행주 () !

그는 고난의 고려여인으로 태어나 원나라의 황후까지 된 여인이다.

나라는 징스스칸이 세운, 동서고금 전세계 역사를 통털어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나라다.

따라서 고려도 30년간 7차례나 원과 전쟁을 하였고 결국 고종46년 무릎을 꿇었으며 이 때부터 엄청난

원의 내정간섭과 야만적 요구에 시달렸는데 그 중 정점은 반반한 남녀를 환관과 공녀로 보내라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고려는 어린나이에 결혼을 시키는 조혼이 성행하였고 나중엔 숫자가 모자라자 16세 이하의 '결혼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귀족의 자녀들까지 끌려가게 된다.

 

 한편 원의 세자 하나가 지금의 대청도에 유배를 와서 1년쯤 있다 돌아가 뒷날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순제. 이즈음 공녀로 끌려갔던 씨는 순제의 차 끓이는 궁녀가 되었고 결국 순제의 총애를 받자

그를 미워한 황후로부터 혹독한 매를 맞기도하고, 인두로 지짐을 당하는 고난 시절도 있었지만 그 황후가 친정의 모반사건에 연류되어 사약을 받자 고려인 씨는 놀랍게도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339년 황후가 된다.

 

 이 '기황후'로 하여 고려의 환관들이 큰 벼슬에 오르기도 하고, 고려에 대한 원의 학정이 줄어들기도

했으며, 원나라에서도 그의 업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고 또 그로 인하여 고려의 복식, 음식, 문화

등이 원에 스며들었고 지금도 몽골에 우리와 많은 문화, 언어적 유사점을 갖게 한 계기가 된다.

 

 아! 그러나 기황후에 대한 평가 대부분이 원을 멸망시킨 나라의 사관에서 씌여진, 그리고 고려입장에서도 공민왕 시절 기황후의 오빠 기철의 모반사건등으로 기황후까지 부정적으로 기록하여 객관적인 평가가 전해지지를 못한다.

 아픈 시대에 때어나 치열하게 살다간 이 여인을 보면서 우리네 여인들을 생각했다. 한 개인도, 집안도, 그리고 나라까지도 그 흥망성쇠 중심에는 여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거다.

 

 오늘도 우리 산악회의 말없이 헌신하는 여성분들의 수고가 녹아 든든히 서 가는거고, 우리 남정네들이 오늘도 편히 산행을 할 수 있는 복도 집안 마마님들 덕분이리라. 그래서 오늘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든 우리의 마마님들게 바칩니다. 정중히...

 

 삼봉산!

전국에 이 이름이 많다.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가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지리산 천왕봉까지

남으로 1,600km를 뻗어간다.

전북지역의 백두대간 산줄기는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을 거쳐 삼봉산을 솟구쳐 놓고,

덕유산 백암봉, 삿갓봉, 남덕유 서봉, 육십령을 지나 지리산으로 뻗어간다. 삼봉산의 물줄기는 서쪽은

남대천을 통하여 금강에 합수되고, 동쪽은 낙동강으로 흘러든단다.

행정구역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 경계해 있다.

 

 삼봉산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대부분 백두대간의 종주시에 들리는 코스이다. 정상에서 조망은

으로 대덕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西로는 거칠봉, 백운산, 동으로 덕유산 향적봉, 남덕유산 등이 조망된다.

 지난해 우리 산악회가 밟은 대덕산 초점산을 바라보며 오늘도 걷는다.. 산은 자애롭고 깊고, 그러면서 포악하다 소설 은교에서 말한 카일라스트레킹의 ..를 떠올리며..

이유 모를 그리움을 안고...

 

그 '기황후'..해주 '기'씨들 사당에 이 영정이 있다.

내가 볼 때 큰 미인은 아닌데 ..ㅎ

신풍령의 삼봉산 등로 진입 계단

여기서 삼봉산 정상까지는 약4.1km. 엄청 추운 날이다. 생수가 얼고 볼이 얼얼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손가락이 쓰리다. '대관령-선자령' 갔을 때 같다.

신풍령 도착

신풍령은 뼈재 혹은 빼재(秀嶺)라고도 한다.

이 곳이 전략요충지라 삼국시대와 임진왜란때사람이 많이 뭍혀 뼈재라 하였는데 이후 비슷한 발음인 빼재(수령秀嶺)로 바뀌었단다. 빼어날 秀이니 '빼어난 고개'이리라..

죄측으론 덕유산을, 우측으론 삼봉산을 향한다. 

  오래전 쌍방울이 관리하던 눈 세상 무주의 리조트에서 온 가족이 묵은 적이 있다 마이클 잭슨이 다녀간 호텔이라면서.. 무주구천동! 그 곳을 가는 고개였으니.. 지금은 터널도 생겼다 일부러 구 도로로 넘어간다. 바람이 엄청나다..

 

  신풍령의 이 고개의 이쪽 거창과 넘어 무주는 언제 가봐도 기후와 계절의 변화가 딴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지난 가을에 '성주'에서'무주'로 넘어가 거창으로 넘어오는 계곡과 풍광은 황홀했다.

혼자가 아니고, 그 동행자는 역시 남자가 아니였다...ㅎ

 

 오늘도 정겨운 오솔길은 이렇게 선다.. 사진찍기전 다 올라가 버린다.

 준비운동도 없다.  준비운동도 하고' 홧팅도 하고 그랬으면...ㅎ

이윽고 눈을 만난다 아이젠을 착용하자.

겨울 산행은 조심이 최선이다.

 엄청 추웠다. 그러나 햇살은 황홀하다.

'오솔길'의  '대들보'님 들이다..

언제나 든든하다.

추위를 잊고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다. 추위는 그렇잖아도 밀리는 외모에 '독립군 복장'으로 만든다.

이 걸 보고 '만주서 " 0 장사'를 했느냐' 하는 이는 이름을 적어 놓으려한다.ㅎ

 엄청난 추위는 고요한 사색의 산 길을 더욱 고요하게 한다.

말이 없다. 입김 서리에 고드름이 언다.

사진을 찍다보니 우리 가족들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떻랴.. 다 '산우'들인데...

 이제 많이 올라온듯 하다..

춥기는 하지만 걷기에 참 좋다..

그래도 이 길이 '백두대간'의 길이 아니런가?

가슴 뜨거워진다.

춥다.. 바람이 세다. 그래도 서로 격려한다.

이쯤 어딘가 '부부바위'가 있었다는데 놓치고 만다...진한 아쉼..

새로운 산대장님 그리고 총무님이다. 늘 열정적인 헌신에 감사한다.

이렇게 좀 '아부'하면 다음 산행 때 아침 밥이 더 뜨거우리라 ㅎ

저기가 수도지맥인가?

그렇다면  '수도산'도 '양길산'도 '흰대미산'도 저 마루금 어딘가 있으리라...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삼봉산'은 안연한 엄마품 같다.

 여기서

'비료부대'가 생각 난 것은 나뿐이 아닐거다....  

지나온 길을 본다

저기 어디에 출발점 신풍령이리...

'호젓골재' 금봉암 갈림길이다.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오늘 동행한 늘 존경하는 님들..

삼봉산 남쪽이다. 우측 칼바위 아래에 '금봉암'이 있다.

저긴 어디런가?  어디면 어떻랴  그리운 지리산 자락쯤 되는가..

왜 마루금을 보면 원인 모를 그리움이 먼저 와 있는지...

'가야산'도 '매화산'도 저기 어디쯤 일거고...

그 너머엔 '민주지산' '삼도봉'이 이어지겠지..

 드디어 정상이다.

 인물 사진이 있으나 세월의 주름이 너무 내렸고

그렇잖아도 보기싫은 얼굴을 춥다고 성의없이 찍어줬으니...  사진을 교체한다..

정상을 뒤로하고 '소사' 갈림길로 내려가는 길은 험산, 눈 세상이다..

 

저렇게도 살아간다 산천 초목은...그래도 말이 없잖은가?

  소사 갈림길 직전에 지나온 암봉의 동쪽 사면

.. 아슬아슬하다. 그 너머로 거창 고제면이 보인다.

 

  무주 무풍면.. 저기쯤 지도상의 상오정일거다.

  어느 고을도 다 그러겠지만 누군가에겐 추억어린 고향으로 지금도 그 분들은 어디에선가 고향!

 짠한 추억으로 회상 할 거다. 아픈 세월엔 더욱..

 고향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며 오늘도 고향은 그렇게 있다 .. 우리 충청도 고향처럼...

 

  정상에서 건너다 본 무주 덕유산의 파노라마..

 백암봉, 갈미봉... 백두대간 마루금이 우뚝 서있다.

 가파른 눈길은 후미분들의 안전을 염려하게 한다...

자꾸 돌아본다.

 저 구름 ...

 초등  '아기염소' 노래의 교과서에는 꼭 이런 구름이 있었다.

 소사 갈림길에서 소사까지..

 거대한 가파름이었다...

겨울 산은 곳곳이 위험 천만이다.

 겁난다. 아랫사람은 나더러 자꾸 '가까이 오지 말아여' 그런다..같이 뒹굴까봐..

내가 치한인가? ㅎ, 아니면 좋아서 가는 줄 아는지..

 굉장이 가파르고 길다..

무지무지 미끄럽고 위험했다. 줄이 아니였으면, 그 중에 중간중간 매듭이 없었다면

못 내려 올 뻔했다.

 

 '비료부대'가 없으면 어떻랴.. 엉덩이가 있었다..

 필자가 엉덩이 자국을 남기며 가는데 그 걸 찍은 분이 있다

그 분은 좀 애로가 있을거다 왜? 무겁다 ㅋ 李 대장님말이다.

그래도 이 사진에 존경 안할 수 있으랴..ㅎ 

 

추운 날이라 옷이 젖지 않는다. 즐겁다..

옛 고향 뒷동산이 이랬다.

'선 바위'란다...

하늘을 향해 뭘 바라보라 하는거 같다. 

' 쉿! 떠들지 말고 겸손해라  위에서 다 보고 계신다'. 그런 메세지로 들린다. 

 

 작년에 우리 산악회가 갔던 초점산(우) 대덕산(좌)이 건너다 보인다.

 초점산 삼도봉은 경북김천, 전북무주,경남거창의 3 도 경계 꼭지점이다.

 민주지산의 삼도봉은 기념탑이 거대했다. 우리고향 충북과 전북 그리고 경북 삼도봉이었고

 지리산 종주 시 만났던 삼도봉은 경남 전남북의 3도 경계였다.

올려다 본다 .. 추억이 될 것이다.

또 다른..그 다음은 그리움 이겠지..

이제 소사마을로 향한다.

넓은 밭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강원도 같기도 하고...

거창군 백두대간 안내판

거창은 사방으로 고산준령에 둘러싸여 있는 형상이다.

종점 '소사마을'  바람도 머물고 싶은곳... 멋진 표현이다. 

여기가 작년 초점산,대덕산은 출발지였다.

오랜만에 본다... 고향생각이 난다.

겨울을 잘 견디고 봄이오고 그렇게 잘 자라기를 기원해 본다. 잡혀가지 말고..

출처 : 마창 오솔길 산악회
글쓴이 : 미시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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