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남.부산.울산

[스크랩] 낙남정맥 2구간 [장고마을-(2K)-길마재 -(3.5K)- 양이터재 -(5.5Km)- 돌고지재 –(천왕봉) (6.1Km)- 백토재].(17Km)

산꾼 미시령 2015. 7. 14. 13:23

<!-BY_DAUM->

 중학 고학시절 첫 차로 직장에 출근하여 막 차로 집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집에서 신작로(新作路)

까지 2키로는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막차를 타고 와 고개 두 개를 홀로 어찌 넘었을

까 대단하다.

 한 번은 그 날도 두려운 맘으로 컴컴한 고갯 마루를 올라서는데 갑자기 고개 꼭대기에서 쎈 불빛이

번쩍! 하는게 아닌가! 순간 온 몸과 머릿결이 하늘로 솟는 놀램...알고 보니 반대쪽에서 넘어오던 어른이

담배를 막 빨아 당긴거다.. 어마나 놀랬던지..

 

고개’! 산악 지형이 많은 우리나라는 고개가 많다 따라서 고개에 딸린 신화도 전설도 많아 동방삭

(東方朔)을 꿈꾸며 여러 번 뒹굴었다던 3년 고개를 비롯, 먼 길을 가려면 넘어야만 하는 고개마다

무서운 전설, 강도 이야기등이 있다.

또 남의 동네에 가려면 꼭 이 고개에서 해코지를 당하기도 했다. 동네 어느 어른은 밤중 넘어오다

두루마기 끝을 당기며 쉬어가라는 처녀귀신과 싸우다 겨우 살아와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는

이도 있고. 어느 뻥 많은 아이는 옛날 돌아가신 지 할아버지가 호랑이와 씨름하여 이겨 가지고 그 등을

타고 집에 왔다는 이야기를 실화라고 지 아버지도 그 호랑이를 봤다고 우겼다.

 

이렇듯 힘들고 고단한 삶의 상징이 고개이다 그래서 이흥렬은 민족의 수난기에 바위고개를 노래했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비 내리는 고모령구름도 쉬어간다는 추풍령 고개노래도

있으며, 양희은의 한계령도나의 닉 미시령도 있다..

이 밖에도 ‘50고개‘60고개니 그러다가 보릿고개도 나왔고 고개숙인 남자란 말도 있게 된다..

 

 지금은 터널이 생기고 고개라 하더라고 쉽게 넘는 경치 좋은 명소들 이지만 참 힘들었던 우리의

민초들과 함께하는 그래서 많은 설화와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오늘 낙남 2구간은 4개의 고개가 나온다 길마재, 양이터재. 돌고지재 그리고 백토재! 그리고 앞으로

전개 될 구간의 고개들이 기대된다.. 어머니 같은 지리산은 점점 멀어져 간다. 산죽의 끝없는 터널도

끝나 아쉼이 크고...힘들지만 종종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며 힘을 얻던 지리산 능선도 점점 조망되지

않는다...

 

낙남정맥!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창원 등지의 높이 300

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신어산(360m)에서 끝나는데 신산경표에서는

봉화산으로 하기도한다.

 

1구간을 제외하면 낙남에서 1000고지 이상은 없다. 지리산에서 점점 멀어지며 구백, 팔백, 칠백으로

낮아지며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그 고도는 그리 크지 않다.

 

 비가 주룩주룩 온다.  비교적 한산한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이윽고 도착한 '장고마을' 악당들에게 뺏앗긴 아내를 찾아 추적하는 분노한 '장고'가 생각난다. ㅎ

하늘만 바라뵈는 마을이지만 엄마 품같은 지리산 자락에 깃들인 것만으로도 참 많이 부럽다. 

 

 

 

 집집마다 감이 주렁주렁하다...정겹다.

 

 마을에서 길마재까지 약 2키로를 헐떡이며 오른다.

 

 가파른 길을 지나면 평이한 길도 있고...

 

  조용한 수양지다 공부하기 좋겠다

한 때 고시를 꿈꾸던 나는 이런곳을 보면 다시 둘러본다.

 

 

 

 이윽고 도착한 '길마재'.. 영신봉에서 외삼신봉으로 고운동재로 흘러온 그리운 지리산, 낙남 길이다.

늘 헌신하시는 우리 총무님과 짝꿍을 하기로 했다

 

간간이 조망되는 지리산 자락이 그립다

 

 

한참을 올라 만난 산불초소..날이 좋으면 여기서 이윽고청학동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태극 모양을 이루며 하동호로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내려다보인단다.. 억새로 이루어진 내리막을 내려선다.

 

 

 

되돌아 보고 되돌아 보고... 그리운 지리산 자락을 그리 본다.

 

 

풀벌레 소리까지 잠든 고요한 숲....

깊은 생각과 천근의 말이 숨어있는듯한 숲이다..

 

 

 

그 시가 생각났다

  '어느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황 인 숙)'

  햇살 아래 졸고 있는/상냥한 눈썹, 한 잎의 풀도/

  그 뿌리를어둡고 차가운 흙에/내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여기가 '칠중대고지'이다.

 빨치산 토벌때인지 6.25때인지 칠중대가 주둔했었나? 설명이없다

 

마지막 산죽지대이다. 그 만큼 지리산이 멀어지는가 보다....엉엉

 

 

그래도 비가 적게오고  바람이 없으며 춥지않아 다행이다 신발은 흠뻑 젖엇어도...

 

 

이윽고 내려선 양이터재. 지리산 둘레길과 만나는 곳이다.

양이터재6.25때 양씨와 이씨가 피난 와서 살다간 곳이 양이터 마을이며, 고개이름도 양이터재로

붙었다고 한다.

 반가웠다 필자가 양()가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삼성혈의 고씨 부씨 양씨의 그 양가이다. 예쁘다는 양귀비도 있고.최초의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정읍사를 해석해 낸 국보급 석학 양주동등 이름난 이들도 없지 않지만 크게 위대한 이는

 없어도 크게 역사에 누를 끼친 양가도 없다

 난 양가라는 사실과 고향이 청주라는 걸 늘 감사한다.

 

 

양이터재는 옥종면 방면은 포장이 되었다..

포장 안 된 이 둘레길을 언제가 걸어보리라...

 

 

지리산 둘레길 안내판이다.

 

 

정겨운 우리 보존회...

오늘 걸어보니 시급히 지자체와 협의하여 봉 이름을 붙이고 이정표를 세워야 하겠다

 

 

조용한 봉들은 이름도 없어 수많은 봉들을 오르내려도 모르겠다 시그널만 펄렁이고...

 

 

침묵..낙엽소리조차 빗물에 잠이들고...

 

 

서서 10분만에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홧팅을 외친다.

 

 

여기쯤이 '방화고지'인듯한데 조망도 안되고 이름도 없다.. 그대로 진행한다.

 

 

첨으로 만난 삼각점 표식..반갑다.

 

 

녹차밭을 발견한다..아 여기가 하동이었지...

 

 

길을 옆으로 만난다 반갑다 돌고이재가 가까웠다.

 

 

 

어느 집안 묘소인가 잘 정돈 되어있다.

 석사학위 논문을 '한국인의 조상제사 의례의 기독교수용에 관한연구'였던 필자는 조상의례가 불교

유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을 안다. 고인된 조상이나 생존한 후손이나 '길흉화복'을 같이

한다는 의미의 의레는 형식은 바뀌어도 그 정통은 이어가길 바래본다.

고인들도 이런 날에 부침과 막걸리가 생각나나 속으로 웃어본다,.

 

 

이윽고 돌고이재를 만난다. 앞에 보이는 능선이 나아갈 길이다.

 

 

'돌고이재'  옥종면과 횡천면 그리고 청학동의 국도와 지방도 3거리이다. 여기서 반갑게 우리 버스를

만난다. 무거운 짐을 버스에 맡기고 한 분외 6명은 다시 6.1키로의 백토재를 향한다.

 

 

다시 천왕봉으로 향한다.

 

 

한참을 임도따라 오르자 끝없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에 이정표를 만난다.

 

 

간간이 보여지는 두고온 지리산 자락...

 

 

구름속의 마루금이 신비롭다

 

 

 

 이 나무가 남부지방에 지천인 '감태나무'이다. 독성이 없고 항암효과등 50여가지 성분이 있단다.

쇠여물모양 줄기와 잎을 잘라 양파망에 넣어두고 연중 내내 보리차 마시듯 마시면좋다. 필자가 해

본 바로는 약간 기름기 같은게 뜨지만 무시하면 된다. 산야초교실 강사는 이 나무 자랑이 대단하다.

 

계절을 잊은 진달래..

 

 

 

안개속 숲이 시비롭다.

 

 

 

 여기가 '우듬지'갈림길이다. '신산경표'는 백두대간을 지리산 천왕봉에 끝내지 말고 영신봉으로

외삼신봉으로 길마재로 하여 여기서 금오산과 노량까지를 백두대단으로 하자고 한다.

난 9정맥을 7정맥으로 하자는 것과 더불어 이 주장에 반대한다. 그러면 낙남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인데 영신봉 없는 낙남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의 입장에서 이름을 변경하고

없애고 하지말고 새로운 해석을 후손에게 맡겨야 한다.

 

여기서 길을 잃고 한참을 알바한다.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우리 대장님은 독도법으로 길을 다시 찾는다 놀랍다. 총무님 찍어진 우의를 보자.

맥 산행은 좋은 옷을 입고오면 안되다던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이윽고 천왕봉...여기서 지리산 천왕봉도 조망된다는데 오늘은 안된다.  

 

 

이 고장이 '양천'인가보다 양천인들의 천왕봉 자부심이 대단하다.

 

 

 

백토재 방향의 풍광도 대단하고..

 

우측이 '옥산'이다.

 

 

 

구름속 지리산 풍경을 마지막 본다..

 

 

이윽고 떨어진 백토재..반갑다.

 

 

이어질 3구간...12월 28일이 기대된다.

 

이제 다시 어어 갈 것이다.

 

 

옥종인들의 고향사랑이 대단하다.

 

 우리  송산대장님...에너지넘치는 그의 모습앞에 난 늘 주눅이 든다...

 

 

 이렇게 공부도 햇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를 달마에게 물을수 없듯, 오늘 산행이 어떻햇는가

 

묻지 않으리..다만 오늘을 통해 내가 어찌 변햇는지를 보여줘야 하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세월이 간다는 것..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나에게 변한게 없어야 하리라 우직한 산처럼...

변하는 것은 오직 세상 몫이니...

 

 

출처 : (사)낙남정맥보존회
글쓴이 : 미시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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