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계룡산의 동학사(東鶴寺) 경내에는 숙모전(肅慕殿)이라는 건물이 있다.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죽음으로 항거한 충신열사들인 사육신· 생육신등을 모신 곳이다.
세조 2년(1456) 6월, 사육신이 상왕인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거사가 발각되어 죽었고,
매월당 김시습은 노량진에 버려졌던 사육신의 시신등을 수습하여 암장하고는 동학사 삼은각 옆에
제단을 만들어 사육신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숙모전의 시작이다.
세조 3년(1457) 10월 24일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승하했지만 시신을 거두는 자가 없었다.
그때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암장하고 임금의 옷을 모시고 망명길에서
김시습을 만나 공주 동학사에 이르러 단을 만들어 어포를 올려놓고 김시습이 찬한 제문으로 제사지냈다.
‘왕과사는 남자’영화로 유명해진 숭모전이 있는 동학사의 뒷산, 계룡산! 어느덧 9년 세월이 흘렀다.
다시 거기를 간다.
우리 외가는 ‘충남 공주군 유구면 녹천리’였다.
내 고향 청주에서 외가를 가려면 새벽 일찍 나서서 차를 다섯번이나 갈아 타고 외가 동네에 들어서면
밤중 이었다. 그렇게 외가에 가면 쌀을 불려 절구로 떡가루를 만들어 시루떡을 해 주셨고, 90이 넘던
외조부는 노자 돈을 쥐어 주곤 하셨다
외가로 가는 동학사(東鶴寺) 옆 도로는 비포장 이었다 얼굴도, 팔도, 다리도 뽀얗던 안내양 누나는
‘아저씨 잠깐만요’ 차를 세웠고 차를 내려 한참을 언덕을 올라 진달래를 한 움쿰 꺾어 내려 와 ‘오라이’ 하면
버스가 출발했다 그리하여도 승객 누구하나도 툴툴거리거나 불만이 없었다.
그 시절 그리 멀리 시집왔던 우리 엄마는 그 먼 친정을 채 다섯 번을 가 보지 못하고 내 나이
11살 때 작고하셨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지금은 우리고향도, 외가도, 고속도로가 생기고
‘천지개벽’ 동네가 되었다.
벌써 40여년이 흐른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보’의 ‘갑사로 가는 길’ 수필이 있었다 거기에 보면
남매탑(男妹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1400여 년 전, 신라 선덕 여왕때에, 당나라 승려,
상원 대사(上原大師)가 이 곳에 와서 움막을 짓고 수도했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요동하는 어느 날 밤, 큰 범 한 마리가
움집 앞에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염불에만 전심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더 신음한다.
대사가 눈을 뜨고 목 안을 보니 인골(人骨)이 목에 걸려 있었고, 뽑아 주자, 범은 어디론지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후 백설이 쏟아져 사방을 분간 할 수조차 없는데, 그 범이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버린다
대사는 정성을 다하여,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바로 경상도 상주읍에 사는 김 화공의 따님이었다.
바로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 겨울이라 눈을 헤치고 나갈 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녀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전후사를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 처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를 받은 바요, 한없이 청정한 도덕과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정까지 골수에 박혀, 그대로 떠나 보낼 수 없다 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자고 애원한다.
처녀 아버지 역시 딸을 구원해 준 생명의 은인이므로, 자꾸 만류한다. 여러 날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義男妹)을 맺어, 함께 계룡산(鷄龍山)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돈으로
청량사(淸凉寺)를 새로 짓고, 암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토록 남매(男妹)의 정으로 지낸다
두 사람이 입적한 뒤에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이 남매탑(男妹塔)이요, 상주(尙州)에도
또한 이와 똑 같은 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렇게 넘나들던 계룡산, 거기를 간다.
누가 아는가! 남매탑 탑신에 손을 대면 허물 많은 내게도 천년의 뜨거운 열기가 스며들른지..
정겨운 님들과 함께이니 더 기대해 보려한다...

▲세 시간여를 달려 와
동학사(東鶴寺) 주차장에 도착한다.(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포리)
여기서 우리 고향 청주는 한 시간 거리...

▲여러 길이 있지만 우리는 '동학사'를 들어가지 않고
무풍교에서 우측, 천정골로 하여 '큰배재' 방향으로.

▲'천정골 탐방지원센터'에서 '큰배재'까지는 2.3K .
문화재 관람료가 있던 그 시절
관람료를 피해 이 코스를 갔었지.

▲계룡산을 대표하는 3개의 사찰,
동학사, 갑사, 신원사....
동학사는 비구니들의 불교전문 강원인 승가대학이 있다.

▲여기 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11시가 넘어 내려놓은 버스로 인하여
뜨거운 여름처럼.

▲'무학대사'가“금계포란(錦鷄抱卵)과
비룡승천(飛龍昇天)의 명당이 합쳐진 형국이니
계룡 鷄龍 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해서 계룡산이 되었다.

▲크기는 65㎢로 24개 국립공원 중 그 규모가 작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지리산 다음으로 두 번째.

▲눈, 얼음 덮혔던 계곡은
어느덧 노랑섞인 연두로 생명력 넘치는 신록의 풍경이 경이롭고.

▲봄 날의 신록과, 가을의 단풍이
참 아름다울 듯한 천정골.

▲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보의 '갑사로 가는 길' 에 나오는
남매탑(男妹塔) 이야기 .
그 지고지순한 이야기에 마음이 찡했다.

▲오르면서 후회한 것은 다녀 본 이 코스 말고
동학사로 하여 남매탑 코스로 오를 것을....

▲그래야 동학사(東鶴寺) 경내의 숙모전(肅慕殿)을 봤어야 했다.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죽음으로 항거한
충신열사들인 사육신· 생육신등을 모신 곳.

▲세조 2년(1456) 6월, 사육신이 상왕인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거사가 발각되어 죽었고,
매월당 김시습은 노량진에 버려졌던 사육신의 시신등을 수습하여 암장하고는
동학사 삼은각 옆에 제단을 만들어 사육신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숙모전의 시작.

▲그렇게 2.7K를 힘들게 오르면 '장군봉, 갓바위' 방향에서
넘어오는 길과 만나는 '큰배재'.

▲옛날 이 일대에 큰 홍수가 나서 주변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사람들은 높은 산으로 피신했고.

▲ 이 고개는 마치 큰 배(舟)처럼 생긴 지형이라
물이 차올라도 가라앉지 않고 사람들을 지켜주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배처럼 생긴 고개” 라하여 큰배재가 된다.

▲남매탑(男妹塔)에 대한 이야기.
‘1400여 년 전, 신라 선덕 여왕때에,
당나라 승려, 상원 대사(上原大師)가 이 곳에 와서 움막을 짓고 수도했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요동하는 어느 날 밤, 큰 범 한 마리가
움집 앞에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염불에만 전심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더 신음한다.

▲대사가 눈을 뜨고 목 안을 보니 인골(人骨)이 목에 걸려 있었고,
뽑아 주자, 범은 어디론지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후 백설이 쏟아져 사방을 분간 할 수조차 없는데,
그 범이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버린다.

▲대사는 정성을 다하여,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바로 경상도 상주읍에 사는 김 화공의 따님이었다.
바로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 겨울이라 눈을 헤치고 나갈 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녀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전후사를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오려 하였다.

▲인산인해였던 9년전 시절...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

▲그러나, 이미 그 처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를 받은 바요,
한없이 청정한 도덕과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정까지 골수에 박혀,
그대로 떠나 보낼 수 없다 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자고 애원한다.

▲처녀 아버지 역시 딸을 구원해 준 생명의 은인이므로, 자꾸 만류한다.
여러 날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義男妹)을 맺어.

▲함께 계룡산(鷄龍山)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돈으로 청량사(淸凉寺)를 새로 짓고,
암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토록 남매(男妹)의 정으로 지낸다
두 사람이 입적한 뒤에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이 남매탑(男妹塔)이요,
상주(尙州)에도 또한 이와 똑 같은 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 '남매탑' 본래이름은 '청량사지 석탑'.
5층 누이탑은 보물 1284호, 7층 오라비탑은 1285호로 1998년 지정되었다.

▲ 얼음장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大德)의 부동심(不動心)과,
백설(白雪)인 양 순결(純潔)한 처자의 발원력(發願力),
그리고 비록 금수(禽獸)라 할지라도 결초심(結草心)을 잃지 않은
산중 호걸(山中豪傑)의 기연(機緣)이 한데 조화(調和)를 이루어,
지나는 우리의 심금을 붙잡는다.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은 모든 등산객의 마음일까?
산 허리를 타고 고운 눈이 쌓이는 날에 올라 한번 머물고 싶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 대표작, 피천득의 '수필'이나
이상보의 '갑사로 가는길' 거기에는 '시나브로' 란
아름다운 우리말이 소개된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계룡산은 여러 곳 그렇게 걸어야 할 구간이 이어진다.

▲삼불봉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올 것을....

▲그래도 아름다운 암릉길에 마지막 남아 환영해
주는 진달래가 아름다웠다.

▲그 시절 오가는 무리들로 정체되었던 길...
산악 인구는 줄어 어딜 가든 그 시절 풍경은 만날 수 없으니.

▲'왕과사는 남자’ 영화로 유명해진
더욱 숭모전이 있는 동학사... 저 아래 있는거지.

▲세조 3년(1457) 10월 24일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승하했지만
시신을 거두는 자가 없었다.
그때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암장하고

▲ 임금의 옷을 모시고 망명길에서 김시습을 만나
공주 동학사에 이르러 단을 만들어 어포를 올려놓고
김시습이 찬한 제문으로 제사지냈다.

▲계룡산은 최고봉 천황봉과 (약 845m),
이름이 특이한 봉우리로 능선 중간에 위치한 쌀개봉.

▲ 쌀개봉은 디딜방아의 쌀개를 닮았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었지만
두 봉우리 모두 통제구역이다.

▲관음봉은 전망이 좋아 인기 있는 봉우리
세 부처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삼불봉,
능선 끝자락 쪽에 위치한 봉우리, '연천봉'이 있다.

▲'삼불봉'은 겨울 설화(雪花)가 유명한 곳이지만
세월은 이미 초여름.

▲저기 높은 바위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상보는 갑사로 가는 길 수필에서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

▲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 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은, 마치 북국의 설산이라도 찾아간 듯이 아취(雅趣)에 흠씬 젖는다.'

▲ '원근을 분간할 수 없이 흐릿한 설경을 뒤돌아보며,
정상에 거의 이른 곳에 한일자(一字)로 세워 놓은 계명정사(鷄鳴精舍)가 있어
배낭을 풀고 숨을 돌린다. 뜰 좌편가에서는 남매탑이 눈을 맞으며
먼 옛날을 이야기해 준다.'...

▲거기 햇살 뜨거운 정망좋은 바위에 앉은 우리...
진수성찬에 텃밭 농사지은 쌈들을 풀어 놓아 환영받았다.

▲삼불봉에서 이렇게 내려와 밥상에 앉은 우리...
신선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다시보는 계룡산의 위용...
조선건국 초기에는 이 일대를 도읍지로 삼으려는 '신도안'이 이 일대다.
신라시대에는 5악의 하나로
왕들의 제사터로 쓰이기도 했다.

▲수 많은 무속인들이 터 잡아 훈장처럼
'계룡산에서 20년 수도...'
70-80년대에는 무려 100여개의 신흥종교 집단들이 들어 차 있었다.

▲내려 온 길도 올려다 보면 아득,
우리의 세월도 그러겠다 벌써 60년 70년...
세월을 살았으니.

▲맨토와 만나 어느덧 20년을 바라본다.
지리종주를 비롯, 덕분에 전국의 산들을 답사했다.

▲여기 삼불봉부터 관음봉- 문필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이 압권인데,
출발이 너무 늦은 오늘은 여기서 갑사로 내려갈 아쉼.

▲날카로운 봉들이 서로 이어져
각각의 능선으로 휘달리는 환상적인 길...

▲천 길 벼랑을 넘나들며 솟아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 떨리는 절승인데
그 위를 걷는다는 건 계룡산만의 특권..

▲어느 사진이든 각각의 포토 이미지는 동일했고
그것은 수채화라는 그림..

▲저기 보이는 곳은 세종시,
계룡산은 대전,공주,계룡등 번잡한 도시로 둘러쌓인 곳이지만
어디든 그림이 된다.

▲저기 아래는 갑사. 김동주는 동학사란 시에서
'봄의 끝자락에 우리네 가슴에 담아온 세상 것은
바람소리 물소리에 흘러가고..'그랬다.

▲거친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작은 듯 하면서 큰 산인 계룡산.

▲산세만 빼어난 족보없는 산이 아니라는 것.
우선 역사의 산이다.

▲ 신라때 오악(嶽) 중 서악으로 제례가 올려진 이래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직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던 장소였다.

▲ 풍수지리학상으로 정감록에서 말하는 소위
십승지(十勝地) 중의 으뜸이고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천년고찰과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 등 충절을 기리는 사당도 품고 있다.

▲산세는 두 말하면 잔소리. 변화무쌍한 암봉과 기암절벽,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성곽과도 같은 자연 암릉에 오묘한 자연의 섭리로
빚어낸 가을 단풍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한다.

▲건너봉에서 바라본 삼불봉,
왜 삼불봉 이라하는지 여기서 보면 알수 있겠다.

▲오르다 만난 묘소 하나, 이 높은 곳에 어찌 모셔왔으며,
상석들은 어찌 운반 했을까 후손들의 정성이 대단했다.

▲푸른 신록은 아름답고 뻗어가고
골마다 신화, 전설이 배어 빛나는 풍경.

▲자연성릉으로 가는 길, 오늘은 여기까지
아쉼에 발길을 멈추고.

▲그리움에 물을 주니 그리움이 자라나고
세월을 거슬러 그 시절 동행했던 이들을 떠 올린다.

▲저기 통신시설이 있는 봉이 천황봉, 그 우측이 쌀개봉
여기서부터 자연성릉으로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능선.

▲어느덧 전설이 된 자연성릉의 끝 관음봉,
거기를 오르는 400여개의 철계단 위에 서면 동서남북 아름다운 조망이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가는이들의 뒷 모습을 안다.
너도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추억을 모두 간직하고 살 수 있다는 건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그 추억들은 그 시간에 존재했던 나아게 놓아두고
나는 현재의 시간을 살았어야 해.

▲아름다운 삼불봉.. 어느 겨울 서설이 덮힐
그 곳을 보다가 남매탑을 보고 싶다.

▲이제 관음봉 코스를 포기하고 금잔디 고개로 내려간다
조금은 아쉬운.

▲동학사 직전 범종루 옆에는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충의절신을 모신 사당이 셋 나란히 붙어있다.

▲ 시대별로 보면 동계사는 고려 태조때 신라
충신 박제상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 삼은각은 조선초 고려의 세 충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지었으며,
숙모전은 조선 세조때 김시습이 단종을 비롯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충신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

▲역사는 흘러간다. 우리의 삶처럼,
오래오래 건강하여 같이여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도 했다.

▲거기에 너른 폐사지 같은 금잔디 고개를 만난다.
바람 시원한 너른 곳에 여러 쉼의 시설들이 있어 놀란다.

▲묘소자리로도, 작은 암자자리로도 그림이겠다.
“햇빛에 반짝이는 풀빛이 금처럼 보여 붙은 이름”
그래서 금잔디 고개란다.

▲거기서 부터 내려가는 길은 너덜길.
마지막 남은 무릎의 힘을 다 빼간다.

▲이상보는
'동학사엔 함박 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그렇게 수필을 시작했다.

▲ 세월은 옹이 구멍같은 자취를 남겼고...숲이 먼저 길을 내어주고
바람이 그 길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 계룡산 자락을 따라 걷다 보면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마음은 그보다 먼저 고요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무언가를 내려놓아도 괜찮은 순간—
그 길 끝에 고요히 숨 쉬고 있는 절 하나, 갑사다.

▲신흥암이라했다
인적없는 고요한 곳, 그 자리 앉음이 범상치 않았다.

▲ 계곡 물은 돌을 스치며 낮게 흐르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금빛 조각처럼 길 위에 흩어진다.

▲자리를 탓하지 않고 거기에 자리하여
세월을 이겨간다.

▲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생각은 하나,둘 가벼워졌다.

▲가을에 이 단풍을 걸으면 참 좋겠다 생각도 했다.
그래서 '갑사로 가는 길'인가 보다.

▲거기 맑은 계곡물에 땀을 씻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이거가 말거나
시원한 건 어쩔 수 없는거니.

▲ 숨 가쁘던 길 위에
내가 놓고 온 것은 피로가 아니라
쓸데없는 마음들이었다.

▲ 정상보다 더 높은 곳은
어쩌면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산을 내려오는 지금,
비로소 알겠다 올라간 것은 몸이었고 내려오는 것은
맑아진 마음이라는 것을...

▲용문폭포를 다녀오고 싶지만 다시 올라야 하는 부담감...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 봄에는 연초록 숲이 생기를 더하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시원한 물소리가 어우러지며,
가을에는 단풍이 산사를 물들여 깊은 운치를 더한다.

▲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때(5세기 초)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창되었다.

▲갑사에는 월인석보 목판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되었다.
'월인석보'는 세종과 세조 때 만들어진 불교 경전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불교 교리를 담고 있으며
한글로 풀이되어 있어 초기 한글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다.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으뜸가는 '갑사' 초기 삼국시대 백제 구이신왕 원년에(420년)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 한때 화엄종 10대 종찰로 번성했던 갑사 경내에는
국보 삼신불괘불탱을 비롯 철당간 및 지주 등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 대웅전은 조선 시대 건축물로, 단정하고 안정된 구조가 특징.
화려함보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그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온갖 재난에 불타고 다시 짓고 그렇게 오늘에 왔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찰
갑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다.
사찰로 들어오는 길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이어지는
힐링 탐방로로 유명.

▲이러한 환경 덕분에 갑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하는 수행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단다.

▲'사갑룡계'?
한참을 홀로 읽다가 다시 읽는다
아! '계룡갑사'.

▲갑사에서 주차장까지의 오리숲은 참 아름답다.
사천왕문을 지나 일주문에 이리는 길은 고목들이 늘어선 운치 있는 길.

▲종일 이상보의 '갑사로 가는 길'
이제는 희미한 글들이 아른거린 하루
'흙이나 돌이 모두 둔에 덮힌 산 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은...

▲마치 북국의 설산이라도 찾아간듯한 아취에 흠씬 젖는다 '
그랬다.

▲길은 간다. 소복한 서설이 내리는 날 여기를 걷는다면
사랑하는 사람과는 더욱 좋을 거겠다.

▲ 바람 소리, 물소리, 그리고 고요한 공기 속에서
이곳 갑사가 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머물게 했는지 ....

▲거기에 한창 '황매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황금색 꽃이 군락을 이루고...

▲봄의 끝자락에
우리네 가슴에 담아온 세상 것은
바람소리 물소리에 흘러가고/
불꽃처럼 애 끓던
잿빛처럼 숨 가쁜
숫용과 암용의 사랑했던 전설이 귓속에 흘러오네/.

▲어디든 사람 사는 곳, 녹두도 있고, 구기자도 있고,
우엉, 기장... 한 주먹씩 넣어 푹 달이면 절로 보약일듯하다.

▲거기 시원한 그늘에 앉아 맘씨 좋은 분 제공으로
시원한 음료를 마신다. 피자 닮은 파전도 같이..

▲계룡산 계곡에 취한
원시적原始的 사연이 물안개 글씨로 읽혀지네
무녀인지 선객인지.

▲ 아! 이제는 또 다시 이득한 추억으로 간직하려 한다.
오늘 하루의 길을...
공력은 없아도 인정많은 범이 착한 처자를 물어다 주었다고 ..
9년전 '누가 압니까? 착한 범이 처자를 물어다 줄지를..' 그랬었는데
이미 내 곁에 앉아 있더라 세월은....

▲그렇게 또다시 추억을 남기고
남으로 남으로 고향 산야를 거기에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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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에서/김동주)
빠알갛게
달아오른 선승 하나가
숫용추 암용추의 용울음 사연을 우체통 가슴에서 꺼내네
천황봉을 오르는 달빛 따라
산길 찾는 사람에게
억장 같은 편지를 휘파람 불며 읽어주네
봄의 끝자락에
우리네 가슴에 담아온 세상 것은
바람소리 물소리에 흘러가고
불꽃처럼 애 끓던
잿빛처럼 숨 가쁜
숫용과 암용의 사랑했던 전설이 귓속에 흘러오네
우리의 막술잔엔 하늘로 오르던
암용의 능엄주가 녹아있고
숫용의 여원인이 꿈틀대네
목화토금수 오행처럼 다섯이 손 잡고
삶의 굴곡진 물길에 떠내려온 용추 그림자를 마시네
계룡산 계곡에 취한
원시적原始的 사연이 물안개 글씨로 읽혀지네
무녀인지 선객인지
저녁산에 젖은 발자국소리가
빈술잔에 하나 둘 모여
샛별처럼 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