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충청도

충북보은.속리산(俗離山·1,058m/화북탐방지원센터→문장대→신선대→세심정→세조길→법주사→오리숲→주차장(11K. 5시간)

산꾼 미시령 2025. 12. 8. 09:07

! 세조(世祖)’

 

 역사공부를 하다보면 아 그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찌 되었겠나 하는 인물이 있다.

어떤 발명이나 문학, 음악, 미술등으로 전 인류를 행복하게 한 인물도 있고, 자기의 영달을 위하여

수백, 수천, 심지어 수 만명을 죽게한 인물도 있다.

그런 인물을 대하면 참 안타까운 이름이다란 생각이 든다.그 중 하나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다.

 

고종10(1873), 서유영이 쓴 조선 단종부터 순조 때까지의 왕부터 하층민까지

이들에 얽힌 이야기나 풍속등의 141편 이야기의 설화집,

금계필담(錦溪筆談)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일 수도 있고 그냥 전해오는 구전을 정리한 것도 있는데 KBS-TV

'공주의 남자'의 기본 스토리에 나오는 '세희공주' 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조! 조선의 7대 임금으로 13년 왕으로 재위하고 51세에 죽었다

왕 되기 위해 단종 폐위 사건만도 268명을 죽였고, 그외 황보인 김종서등을 죽인

계유정란등을 합치면 헤아릴 수 없다.

 

그에게 사랑하는 딸 세희 공주가 있었다 이런 아버지를 비판하고 갈등을 겪다

자결 하려하기까지 했고 가까스로 어머니 정희왕후가 몸종 하나를 붙여서

도망시키면서 인연 끊고 멀리 가서 살라했다.

 

여러 날을 헤멘 끝에 사경을 헤멜 즈음 충청도 보은의 어느 산골로 가던 중

한 총각의 도움을 받게 되고 결국 세희와 이 총각은 결혼까지 하게 되고

딸 아이 하나를 얻는다.

 

어느 날 세조는 늙고 피부병까지 들어 보은 속리산에 가던 중 한 꼬마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를 따라 아이의 집에 가보니 죽은줄 알았던 딸 세희 공주가 거기 있었고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모르고 밖에 나갔다 돌어오던 남편은 세조인 것을 알았고 들고 있던 낫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다가 부인이 세조의 딸인 것까지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남편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이 직접 김종서를 죽이는 걸 숨어서

눈물로 지켜봤던 김종서의 손자 김승유 였던 것....

 

세조는 며칠 후 사람을 보낼테니 온 가족이 궁궐로 올 것을 약속하고 떠났고

그 사이 가족 셋은 또 다시 숨어사는 먼 길을 떠나는 가슴 아픈 설화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사에는 기록된 바 없다.

딸의 저주였던가 세조는 심한 피부병등을 앓은듯하다.

충북 청주의 초정약수에 다녀갔고, 보은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는 그의 행차시

일어난 사건으로 장관급인 정2품 소나무가 있다.

 

그가 스승인 신미대사가 있던 복천암을 오가며 목욕했던 목욕소등을 엮어

최근엔 '세조길'로 명명하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련한 추억과 아픔이 있는 내 그리운 고향

충북의 자랑  속리산. 법주사!.

한 해가 벌써 저무는 계절에 다시 거기를 간다.

속세 넘어 왕이 거닐던 길을 따라서..

▲ 어느덧 송년의 계절...

3시간을 달려 경북 상주의 '화북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고..

새로 신설된 주자장에서 200m를 더 올라오면

화북탐방지원센터가 있었다..

▲ 다시 만난 맨토와 정겨운 님들...

오랜 세월 산 벗이 되었지.

▲ 10년전에도, 8년에도 여기를 올랐지만

늘  성불사와 오송폭포는 스쳐간다.

문장대는 3.3K.

 속리산은 고운 최치원의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라는

시가 전해오는 명산.

최고봉 천왕봉은

백두대간이 지나며 우리 땅의 큰 산줄기

13개 정맥 가운데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뻗어

 

충북내륙으로 북으로, 안성으로 이어지고,

한강과 금강, 낙동강 물 길로 나뉘는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단풍은 한참 전에 지나갔고

서늘한 공기에 상쾌함은 가득했지

▲숲의 겨울 채비는 스스로 나목되어 부끄럼을 모른다.

인생 욕심은 갈수록 벗을  줄을 모르는데...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내 어릴적 추억과 젊은 날의 아름다운 데이트 장소였던 속리산,

어느덧 60여번의 가을이 지났고

꽃이 피었고, 단풍이 들었고, 설산이 되었겠다

▲ 인생의 황금가는 아직 많이 남은

'청년'.

앉을 때 '아이고, 아아구구' 소리만 안 낸다면...

낙엽은 지고나면 그 뿐

또 다시 우리의 한 해가 그렇게 가겠지...

▲쉰, 쉼, 쉴암...

그런 이름으로 한참 웃으며 논젱을 벌인다

인생은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것

세월이 흐르듯, 삶이 그렇게 흘러가듯...

▲ 겨울 산은 조용해서 좋다..

풀벌레, 산새들도 잠들고

늘 푸르른 봄 날 일수만은 없는 거지

처음부터 나도 우리도..

이제 칠형제 바위가 나타난다.

문장대 정상에서 보면 영락없는 7형제들이었지

 

 조운 시인의 시였던가?

'산에가면 나는 좋더라

바다에 가면

나는 좋더라

 

님하고 가면

더 좋을네라만!

백일 산제단이라했다.

겨울 산을 오른다.

꾸밀필요가 없는 꾸미지 않아도 되는

날 것 그대로의 산

대포라 할까 미사일 이라할까?

어디던가 가지산 오르던 곳에도,

덕유의 할미봉 오르는 곳에도 있던..

▲ 어느덧 계곡은 겨울이 찾아들고

간절히 설산을 꿈을 꾼다.

▲ 세상엔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우리를 기다리는 산들이

많은데...

어느 해였던가

눈 쌓인 산죽이 소담 스러웠었다.

▲드디어 만난 옛 휴게소 터.

법주사 방향, 천왕봉 방향에서 오른 이들이 문장대를 오르기전

잔치집 같은 떠들석함이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한산한 편...

문장대는 천왕봉보다 4m 낮은 1054m

▲ 내 고향 충북뿐 아니라 수도권 중부권은 법주사-냉천골로 오르니

속리산은 충북이라 하지만.

 영남 지역 산객들은 상주로 오르기에 경북 산인줄 알기도 하지.

내 젊은 시절에는

"항상 구름이 가득 서려있다"고 하여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했는데

이 곳에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세조(世祖)

이 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하여 문장대(文藏臺)라 했으니..

▲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래 스무번쯤 올랐을까

 많은 이들이 생각나는 추억의 장소.

▲ 문장대 좁은 철 계단을 오르며 바라본 7형제 바위,

선명하지 못한 날씨가 아쉽다.

▲ 법주사를 비롯한 수 많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고

이 일대가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 드디어 오른 문장대 정상.

우측 너머로는 낙영산, 도장산, 백악산, 군자산

그리고 대아산까지 그리움으로 들어온다.

▲ 천왕봉까지 3.4K

여러번 암릉 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북쪽으론 관음봉(982m)

그 너머로는 어느 여름 올랐던 묘봉,

상학봉이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 관음봉, 묘봉, 상학봉.. 그 짜릿했던 길을

오래오래 기억으로 남았다.

▲ 거기 바람 쎈 정상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추억한다

고마웠던 이, 아름다웠던 추억..

눈 시리도록 억울했던 일.  모두모두 날리며

▲수수만년 역사가 잠겼고, 풍화의 바람이 조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를 다시 못올 아득한 세월에도

저 풍경은 저 자리에 또 다른 사람들을 경탄스럽게 하겠다.

맑은 날 저 멀리 하산지점 법주사와 오리숲,

상가, 주차장도 보였다.

 그 우측으로 그림같은 운해가 그리움으로 아득하고

저 너머,그 너머에 우리 고향 땅도, 부모님 산소도

그리운 초등학교 추억의 뒷 산도 이어지겠다

백두대간 주능선으로 최고봉인 천왕봉(1,058)과 함께

문수봉(1037m), 청법대(1018m), 신선대(1025), 입석대(970m), 비로봉(1,032),...

해발1,000m내외의 암봉이 우뚝솟아 있다.

저 멀리 천왕봉은 실루엣처럼  드러나고

거기서 다시 600m 내려와 삼거리로 내려오면

법주사로 가는 코스가 있다.

진달래 철쭉의 계절은 환상적인 포토죤이 된다.

올라왔던 상주 화북방향...

백두대간 길은 그렇게 흐른다.

▲속리산은 2의 금강산' 또는 '소금강'이라 불리었고,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속리산....

▲ 문수봉을 오르며 되돌아 본 문장대...

어느 계절 다시 오르겠다. 잘 있어야 해, 내 고향 산천답게.

이별이 없는 유일한 사랑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문수봉을 넘으며 청법대를 조망한다.

▲ 잘 있었어?

오랜 세월 그렇게 자라준 멋진 소나무.

그 힘든 정상 바람 속에도 곧게 자랐다.

▲옛 젊은 시절,  여러 곳에 바위를 쪼아

계단을 만든 것을 보았었다.

요즘이면 자연훼손이라 하겠지만 그 때의 경제력은 그게 최선이었다.

문수봉을 지나며 ...

신선대까지는 30여분이 걸렸다

청법대(1018m) 입석대, 비로봉(1032m)으로

이어져  천왕봉은 으로 달린다

▲그 시절 같이 걸은 동행인들도 여기를 지났고

여기를 밟았겠다.

어느 하늘아래,

나처럼 세월의 나이를 먹어가겠지..

오르다가 되돌아 보면

여유로운 자에게만 보여지는 풍광이 펼쳐진다.

그 시절, 그 친구들도 저 봉을 같이 봤겠지

저 바위들도 나를 봤을까?

 사람의 정이 그립고

서러운 옛 추억이 밀려왔다.

신선대 휴게소...

어떻게 여기에 짐을 져 날라

라면도 어묵도 커피도 부침도 만들어 낼까?.

신선대는 화장실도 있고 

모두들 쉬어간.

문수봉, 청법대를 배경으로

거기 서 보기도 하였지

삶이 참 쓸쓸하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너무 빨라,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것 같고

일 년을 눈 깜빡할 새 뛰어 넘은듯 해.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걸까

젊은 청년은 어느덧 주름진 이순의 고개를 넘는다.

저마다 그리움을 안고 길을 간다.

그 오랜 세월에서

의기 투합하여 우정으로 이겨보려고도 하고,

사랑의 화살을 쏘아보기도 했고.

사랑에 빠져 이성을 잃어 버렸던 적도 있었다.

▲ 멘토를 만나 어느덧 십여세월.

감사한 시간들이었고 그 덕분에 전국 명산을 누볐었다.

 신선대 (1,026m)

백학이 날고 신설들이 노닐었다는 ...

일부러 비석을 찾았다, 신선대란 표지보다 '충청북도' 그리고 '보은군'...

정겨운 고향 앞 표지다.

바람 세찬 날에 그래도 진수성찬을 차린다.

산에서의 한 끼, 온 갖 산행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즐거움.

이젠 천왕봉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우린 내려간다.

 산은 항상 그렇게 있지만

그 산을 오르는 인생의 마음은 세월 따라,

계절 따라삶의 애환 따라 다르게 다가옵다.

그렇게 흘러가다

송년의  계절에 이 길을 간다.

 올려다 본 입석대(1,016m)

임경업 장군이 7년 수도끝에 세운 것이란다.

 

임경업, 광해군때 급제하여 인조반정을 거쳐 이괄의 난,

병자호란등을 거친 명장이다.

순천의 낙안군수를 지내기도 했고

 병자호란후 모함으로 52세에 죽어

충주에 그 묘소가 있다.

 그가 7년 수도했다는 경업대에서

그렇게 사방을 둘러봤지.

 산은 언제나 그렇게 있지만

그 산을 오르는 인생의 마음은 세월따라

삶의 애환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괜찮아 억울한 세월이었어도, 고생한 삶,

억척 같이 살아 낸 세월 이었더라도

감사한 오늘이 있으니까.

그 철계단을 내려가기전 우측으로

'관음암'을 간다.

 젊은 시절 이 바위틈을 통과 할 때면

갑자기 바위가 붙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모두들 그런 생각을 했던 속리산의 명물.

 

 그 속에 약수가 흐른다.

임경업 장군이 마셨던 그래서 장군수라 한다.

지금은 얼었고.

 그 작은 터전에 세워진 암자

관음암.

아름다운 암자는 가파른 바위 절벽 아래에 자리하여

우리 고향쪽 하늘을 향한다.

어떻게 땔감을 조달하며 어떻게 식량을 저 나를까?

 하나하나 힘겹게 져 올렸을 옹기들이

신심의 놀라움을 증언한다.

남쪽방향으로 

호쾌한 조망은 시원하기도 하고

 저 아래 금강골  끝에 세심정-법주사가 있다..

 작지만 아름다운

기도처 이겠다.

 거긴 얼마나 추운 바람이 불었던지

볼이 얼얼했던 곳, 부디 겨울 잘 이겨내시기를 기도했다

▲ 여기를 같이 걷던 그 시절, 그 친구들..

모두들 건강 하시기를.

경업대부터는 아득한 철계단을

내려간다

 그 시절 금강골은 찬란했던 만산홍엽 단풍 길.

아쉽게 절정의 계절이 지났다.

▲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스님을 만나 차 한잔씩 하시고 온다는 부러운 말씀.

▲ 수 많은 이들이 나무를 주워 떠 바치고

웃었겠다. 소망의 받침이겠다.

그렇게 내려서면 금강골 휴게소, 철거되고 터전만 남았더라..

깨끗함은 잘했다 싶지만

추억이 허물어졌다는 생각도 들고.

금강골의 그 포근한 길은 돌고 돌아

서러운 세월처럼 흐르고..

▲흔들바위라 했다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했으면 흔들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속리산의 숨은 명소 '비로산장' 유명한 정치인, 명사들이 묵어갔다.

 고 김태환 씨가 지은 개인 산장으로, 50여년 역사를 이어오고

지금은 대를 이어 가족이 운영한다.

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

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사람들이 때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

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시를 남겼습니다.

 

▲신선대에서 입석대-비로봉-천왕봉으로 가면

여기로 내려와 합류한다

속세를 떠나는 속리산 이름처럼

어느 날 삶의 시간을 잠시 로그아웃하고

어디론가 따나고 싶은 계절..

문장대에서 냉천골로 내려오는 길과

신선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세심정(洗心停).

이름과는 달리 막걸리, 파전이 유혹했다.

 오늘 날 BC카드처럼

여행을 위해서는 곡식을 짊어져야 했던 시절...

이 골짝에는 곡식 찧는 이런 절구가 400여개가 있었다니

자칭도사, 묵객, 수양하는 이..가득 했을..

세조가 스승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복천암까지 세조길이 조성되었다.

▲ 조선 영조때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에는 대 전제가 '산자분수령' 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천왕봉에 떨어진 빗방울은 한강,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이된다.

▲ 겨울이 살얼음으로 내려앉은 저수지

세조길 덕분에 호젓한 숲길을 간다.

▲ 겨우 13년 재위를 하려고

300여명을 희생시켰던 조선 7대임금 세조...

51세에 죽었다.

▲ 그가 피붓병에 걸려 청주 초정약수도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도 참회의 세월은 있었겠다.

그렇게 법주사에 도착한다.

어릴적 추억과 그리움이 서린 곳....

 최고의 명당 법주사

553(진흥왕 14)에 의신이 창건했고,

776(혜공왕 12)에 진표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미륵 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바뀌었다.

'호서 제일 가람별칭처럼 국보 3보물 12,

시도유형문화재 22점 등 문화재가 많다

쌍사자석등. 보물 제5.

신라석등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추정한다

2층 대웅보전, 보물915

여러 보물로 지정된 불상을 간직하고 있.

사천왕석등(보물15)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 양식.

뒤로 대웅보전과 좌측으로 원통보전(보물916)이 보인다

2018630,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등 7곳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란 이름으로 등재를 결정했다.

팔상전, 국보 55호인 5층 목조탑.

통일신라시대의 건축물로 중,개축을 거듭했고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그린 8장면의 팔상도가 있다.

어느 겨울 교직원 나들이 때 나이드신 스님이 포토 포인트가 여기라

알려주셨던 곳.

▲ 사천왕상은 보수중이고

충북유형문화재 제46호.

당간지주...

내 고향 청주에도 옛 '청주극장' 광장에

이 문화재가 잇었다. 돗대를 상징한다.

 

석연지(국보 제64)

8각의 바침대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목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 무늬로 장식한 간석을 놓아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모습의 걸작

법주사 경내에는 원통보전석연지, 철당간, 무쇠 솥, 마애여래의좌상 등

유물이 많으나시간이 급해 더 세밀히 추억하지 못하고

...

추래암,

나 어릴적에는 저 위에 500년 된 작은 소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시절 고사했고 지금은 탑을 놓았다.

 그 옆에 고려시대의 마애여래 좌상이 미소짓고 있다.

보물 216

 

▲ 이 외에도 400가마로 밥짓던 대형 쇠솥

보물1413, 어린 시절 봐던 그 모습..

 어린시절 단체사진 찍던 일주문 '호서제일가람'.

속리산은 법주사의 문화재뿐 아니라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과 속리산의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

 주차장까지의 '오리숲(2K) 추억과 행복의 길.

추억이 서린 아름다운 법주사 그리고 속리산..

그렇게 하루 해가 찬바람과 함께 저물어 간다.

내 고향 충북....

바다가 없는 유일한 내륙이다.

통행금지가 엄격했던 시절에도 충북은 통행금지가 없던 고장이었다.

그 시절 '속리산관광호텔' 앞의 즐비한 상가들..

인구소멸 시절이지만 모두들 다시 번창 하셨으면..

정이품송 [正二品松.천연기념물 103]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조의 이야기와 함께

수령 600여년 지났지만 세월엔 장사가 없는듯 우람한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속리산의 상징.

속리산을 가려면 비포장 12구비 '말티재'

차에서 내려 차를 밀면서 넘어야 했다.

▲ 포장되면서 많이 길이 넓어지고 구부러진 길이 바로 서더니

최근엔 터널이 생겨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며칠전부턴 설렘속에 기다렸던

내 고향 충북의

속리산,법주사 산행길...

다시금 아픈 추억을 남기고 거기를 떠난다.

 

남으로 남으로 달려온 하루.

내 고향, 속리산...

 

영원히 거기 그렇게 있겠다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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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을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