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남.부산.울산

경남거창. 감악산(紺岳山·952m/가재골 주차장 -선녀폭포- 수교- 계단 - 명산삼거리- 정상 - 방송 중계소-연수사- 물맞는 약수터 - 등산로-도로 - 가재골주차장(7K.4H)

산꾼 미시령 2022. 12. 19. 09:48

거창양민학살사건 - 끝나지 않은 이야기.

거창군(居昌郡),

6만의 인구로 경남 중에는 함안군에 이어 두 번째 인구를 자랑한다.

오늘날이야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뚫려 편리한 교통을 자랑하지만 옛 거창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 연이어 뻗어 있고 3개의 국립공원이 가까이 있는 산중의

분지고을이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정자들과 수승대를 비롯한 빼어난 자연경관, 그리고

많은 종가, 고택들이 산재한다. 그런데 거창엔 깊은 아픈 상처가 있다. 신원면을

중심으로 발생한 거창양민학살 사건이다.

 

6.25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은 급히 퇴각했는데 퇴로가 막히자

지리산 일대로 숨어들었고 거기 빨치산들과 합세하여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에

국군은 남원에 토벌을 전담하는 11사단 사령부를 두고 소탕작전을 펼친다.

 

밀고 밀리는 중에 중공군이 개입한 한국전쟁 중 50여명의 빨치산들이

신원면 경찰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과 청년의용대 40여명이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국군은 소탕작전에 들어가 통비분자를 색출한다며 여러 마을 주민을 신원초등학교

에 모이라했고 집결지로 데려오면서 170여명을 사살한다.

 

또한 학교 교실에 모인 사람들도 군인, 경찰, 공무원 가족만 남기고 골짜기로 끌고 가

집단 사살했고 여러 마을들이 불태워졌는데 1583채가 불탔고 719명이 목숨을 잃었다.

51211, 하루 만에.

 

군인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외부 왕래를 끊었지만 3월 거창출신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하였고 국회는 진상조사단을 꾸려 현지조사를 하러 내려갔다

 

그러나 계엄군을 인민군 복장으로 위장시켜 위장총격을 가하여 조사를 방해하였고

이 사실이 워싱터포스트등 외신에 보도되자 정부는 학살 책임자를 군법회의에 부쳐

연대장등에게 무기징역, 징역형 등을 선고 했으나 모두 1년 만에 석방되었고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역사는 흘러갔다

 

전쟁이 끝나고 신원면 사람들은 박산골 골짜기에서 유골을 수습했고 누구 유골인지

분별을 못하니 어른남자, 어른여자, 아이들로 구분하여 뒷산에 묻었다

 

19604.19혁명 후 비로소 남자합동지묘’(109), ‘여자합동지묘’(183), 두 개의 봉분을

만들고 아이들 유골 235구는 소아합동지지(小兒合同之地)’로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이은상이 쓴 위령 비를 세웠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구테타가 일어난 지 3일만에 합동묘소는 개장명령이 내려졌고

위령 비는 글자 하나하나를 정으로 쪼개 뭉갠 다음 땅 속에 묻는다

 

26년이 흐른 1987년 민주화 열풍이 일어나자 유족들은 묻혀 있던 위령 비를 꺼내

파괴한 자들이 사과 후 다시 세우라! 비석 받침대에 걸쳐 놓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1996년 거창사건 명예회복 특별법이 제정되어 여러 추모사업이 진행

되었고 2004년 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준공되었다.

 

그 후 거창사건 관련자 배상법이 논의 되었지만 거창뿐 아니라 산청, 함양등지의

비슷한 사건까지 복잡하여 해결을 못하고 있다.

 

해방 이후 갈등의 우리나라는 곳 곳에 이런 억울한 사연들을 남기고 말았다.

억울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숨 죽여 살아온 유족들과 관련인 모두에게 참 위로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 해가 저무는 계절,

그 비극을 안고 있는 신원면과 그 북쪽 남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거창읍의 남쪽에 솟은 거창의 진산, 감악산(紺岳山·952.0m)을 간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거창의 그 산을 걷는다.

▲오늘은 '산맥등산클럽'회원들과 일원되어

거창의 감악산을 간다.

▲'장수'회원 11명도 '게스트' 되고.

▲중턱 '가제골 주차장'에 도착했.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길은 여럿,

동네 뒷산 같은 정겨운 산

 동서사방 길들이 많았고.

▲왜 고행의 길 일까?

힘들었던 시절,

나무지게 지고 넘던 고갯길이란다.

▲정상까지 도로가 뚫리고

고냉지 채소밭들이 즐비하고,

 바람개비 풍력발전기, 방송3사의 중계소까지.

 

▲주차장 화장실 뒤로

급하게 내려가는 것으로 산행시작.

▲여러번 아이젠을 착용해야 할까의 고민.

▲우측으로는 선녀폭포.

칠석 날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승천했다던가?

선녀만 있다면 다녀오겠지만 

 

▲여기서 정상은 3.1K

넘고 넘어야 한다..

▲꿈결같이 달려온 한 해,

어느덧 카렌다도

새 것이 걸리는 즈음.

▲ 코로나 시절에도

버스로 산행을 할 수 있게된 한해,

감사한 시절이었다.

▲삶의 길이 힘들 때도

마음을 다 잡고 용기를 내어 새로 도전하듯

산행 길은 그런거니.

▲선녀 폭포도 다녀오고 그래야 하는데

오늘은 모두들 마라톤 같은 걸음,

손발이 시리니 그럴거다.

▲새로운 한 해도

무욕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좋은 친구분들과.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도,

더 건강해지지도,

더 좋은 연인이 안 생겨도 괜찮으니.

▲그냥 이대로 산행 많이 할 수 있게만.

주식은 조금 더 오르려면

올라도 되고 ㅎ

▲간혹 내가 산 건 떨어지고, 왜 내가 팔면 그때부터 오를까?

거꾸로 되면 안되나?

그러기도 하지만  소망이 너무 많다,  다 욕심인 것을...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것들...

그리운 산, 그리움의 불 길을 당긴다.

▲많은 눈이 아니라도

눈 귀한 경남인들에겐 오랜만의 기쁨.

▲여러 작은 봉들을 넘어야 했.

▲오래된 내 바지가 내엉덩이 잘 알듯,

오래된 내 구두가 내 발가락 잘 알듯,

오래된 산 벗들과 같이 늙어감이 좋다.

▲이런 날도 있는거야 하얀 눈,

오솔길 산행 길

빛나는 님들과 함께.

▲이 분도 이런 날도 있다  '외 기러기'?

그래도 자유함에 행복해 하는듯한데

일러줄 사람이 생각난다.

▲연수사 옆, 물 맞는 약수탕이 있다는데

한 여름 이야기.

오늘은 춥다.

▲여기를 오를 때 그 많은 노래중에 그 노래가 입에 불렸다

'가련다 떠난련다 어린아들 손을 잡고...'

어쩌자고 아버지는 못살아도 좋고  외로워도 좋단 말인가?.

▲'눈물어린 보따리에

젖어든 황혼빛' 탓인런가?

가는 해도 가고, 오는 해는 또 오면 그 뿐인데.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되어

조금 더 여유를 즐기는 것이 행복이겠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렏포드가 말했다

인생은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것,  세월이 흐르듯, 삶이 흘러가듯.

▲내가 할 일은 애써 잡으려 발버둥 치는게 아니라

그것들이 내개 머무르는 잠시동안

아끼고 사랑해 주는것...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기대하며

같이 있는 동안 즐거워 하는것..

▲잠시 내 손에 머물다 가는 것들을

감사히 잘 놓을줄 알자.

▲내가 진정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니까.

▲같은  취미의 산행꾼

귀하고 감사하단 생각이 절실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

그 순간 소통하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인거니까.

▲순간에 머무르기

붙잡아 두고 싶은 찰나처럼.

▲여기는 4거리,

명산, 연수사 갈림길.

▲바람이 없어 다행인 길

손발이 시렸고 볼이 따가웠다.

▲이 산 넘어 신원면에는

아픈 상처가 깊이 스며있다.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

잘 규명되고 잘 치유되었으면.

▲햇살은 맑고 바람없이

이 풍경이 간직되었.

▲어떤 영웅도 꿈을 다 이룬 이가 있겠는가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 

그러면 된 것고, 다 이룬 것이려니.

▲햐얀 설산을

두 마리 고라니가 스쳐갔다

우리는 객이고 그들이 주인.

▲한 여인이 두 손으로

한 아름 눈 담아 뿌린다

그 가슴의 동심이 아름다웠다.

▲그냥 아름 다운 여인들로만 보여야 하는데

왜 계속 민주당, 국민 힘당 생각이 날까.

▲그 노래를 잊었을까?

하얀 눈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욱.

▲누가누가 새벽 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 길에 구두 발자국.

▲도련님 따라서 새벽 길갔나

길손 드문 산길에 구두 발자국

겨울 해 다 가도록 혼자 남았네.

▲이 노래는 눈 길 걸을 때마다 자동 반주기...

그 놀이와 제격이었다

고무줄 놀이.

▲고무줄 놀이에 빠지지 않던

고무줄 끊기!

나에겐 착함보다 용기없이 그걸 못해봤다.

▲이제 햇살 고운 정상에 올라선다

952m 감악산 정상을.

 

▲서쪽 멀리 덕유의 향적봉,

남덕유, 서봉...우람하고

남쪽으론 천왕봉 웅석봉 왕산 필봉산까지 선명했다.

감악산(紺岳山·952.0m)

거창군 신원면과

그 북쪽 남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남동으로는 합천호 주변의 금성산,

악견산,의룡산,허굴산이 보이고.

▲합천과 산청의 경계인 황매산, 월여산

서북으로는 덕유 능선길이 우림하고,

황석,거망,기백,금원산이 그림같다.

▲유명한  명산들이 첩첨이 이어지고

북동으로는 오도산, 비계산, 미녀봉이 선명했다.

▲다향한 코스로

여름산행이면 더욱 좋겠다.

▲오늘 알았다

가을 하늘보다

겨울 하늘이 더 높다는 것을.

▲이 풍광에서

어디서 밥을 먹을까 우린 그게 더 기대된다.

▲공중,

참 좋다

중심이 비어서 더욱.

▲박노해가 노래했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 묵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품어안고/

몇버닝고 혼잣말로 중얼 거리시네/.

▲이 겨울 눈 속의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방송 3사 중계소 마당 끝에는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었다.

▲저기가 월여산, 그 뒤는 황매산

그리고 좌측으로 미녀봉.

.

▲그 마당엔 햇살이 따뜻하고

벼름박 담장은 바람을 막아줬다.

▲이제 점심을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오돌오돌 떨린다, 손 끝이 아프다.

▲누가 쫒아오듯 달려야했다

최고 추운듯 했다 거기가..

▲가파르다가, 평온하다가

연수사로 가는 길은 그랬다.

▲그래도 하얀 그림같은 풍경이 좋았고

향적봉이나 바래봉을 거니는 이들을 부러워 했으니.

▲한 여인이 엉덩 방아를 찧었다

배냥 , 어깨를 떨어줬다 정 스럽게.

엉덩이를 털어야 하지만 차마....

 

▲ 하얀 연수사가 아름다워

거기 서 보시라 했다

절에 촛점을 맞췄음을 이 분들은 모른다.

천년고찰 연수사(演水寺)

신라 애장왕 3년(802년) 감악조사가

남쪽에 절을 지으려했는데.

▲다듬어 놓은 석가래 큰 통나무가

한밤중에 없어져 다음날 찾아보니.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서

발견되어 이 곳에 건립했단다.

▲200m 떨어진 곳에

물 맞는 약수탕이 있는데

신라 헌강왕이 중풍을 고쳤다는 전설...

.

▲ 연수사 뒤 바위구멍에서

나오는 이 샘물은

극심한 가믐에도 마르지 않는단다.

▲감악산 아늑한 품에 안겨

약수의 전설과  애잔한 전설이 서린 은행나무등

천년사찰의 명소.

▲거기에 하얀 눈이 내리니

세밑 정서와 맞는 풍경이었다.

▲고드름도 길게 이어져 가고

푸른 하늘 아래 단청은 더욱 빛났다.

▲인생의 겨울, 계절의 겨울,

그림자가 제일 길듯

마음의 키도 가장 많이 자라는 계절.

▲미소짓게 하는 형상.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처럼

 

▲거기 따뜻한 마루에 앉아

망중한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감악산 연수사...

고즈넉한 조용함이 아름다웠으니...

▲물 맞는 곳을 가보고 싶었으나

추위는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일주문 옆 은행나무(높이38m, 둘레7m) 600년된 보호수다.

고려왕손에게 시집가 유복자를 낳고

속세를 떠난 여승이 심었다는 전설.

▲ 유복자를 낳는

여인의 삶을 헤아리다 보며

큰 도로를 만난다.

▲다시 포근한 길을 되돌아 보고

원점 회귀의 가재골 주차장에 닿았지.

▲ 거창을 떠나, 도착한 함양의 '안의'

거기 소박한 목욕탕에 언 몸을 담그니

천하 부러울게 없고.

▲함양군 수동면 파출소 건너의

소박한 어탕국수집.

▲바글바글 6명 씩 앉은 상위에

빙어무침이 나와 입맞을 돋우고.

▲무릎과 등들을 붙여

앉은 자리에

정은 더욱 깊어갔으니.

▲ 곱배기 같은 양에, 진한 어탕국수는

목욕 후 반질반질한 얼굴에 만족감을 더했다.

 

그렇게 하루해는 저 물고 .

생초 IC를 거쳐 집으로 간다.

집에서 나와 집으로 못간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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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Home /김윤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 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