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 대사’(無學 朴自超 禪師1327~1405).
고려말(1327년) 경상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훗날 교류한 이성계보다 8살이 많다.
그는 18세에 송광사로 출가하였고 26세에 원(元)나라 연경에 가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과
고려의 나옹(懶翁, 1320~1376)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356년에 귀국하여 천성산 원효암에 머물다가 나옹이 회암사(의정부)를 중건하고 무학을 불러
수좌승으로 삼았는데 나옹이 사망한 뒤에는 무학은 전국을 돌며 수행하였고,
이 때 이성계와 처음 만난 것으로 여겨진다.
이성계의 조선개국과 한양천도등 역사적 전환기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태조는 무학을 매우 신임하였다. 회암사에 역질이 돌자 무학의 건강을 염려하여
광명사로 옮기도록 하였고 장수를 기원하는 탑을 세워주기도 했다.
태조 자신도 왕위를 물려준 뒤 회암사에서 지내기도 하였는데 이른바
왕자의 난 때에는 태조와 태종 부자의 화해를 위해 여러번 함흥과 한성을 오가기도 했다.
말년에 금강산 금장암에 들어가서 여생을 마쳤다(1405). 사망 후 태종의 명으로 무학대사비가 건립되었다.
서울의 ‘무학재’를 비롯하여 전국에 무학대사와 관련된 사찰, 지명등이 수두룩하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역사적 사실도 있겠고, 전설도 있으리라.
부산,
거기에도 무학대사와 관련된 산이 있다.
승학산(乘鶴山)!
무학이 전국을 다니면서 산세를 살피다가 이 곳에 이르러 산세를 보니 마치 학이 날아오르는
듯하다고 하여 승학산으로 부르게 되었단다.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된 그 시절!
하단의 동아대로 올라 여러 봉들을 오르내리고 구덕터널 쪽 동아대병원으로 하산했던
기억이 새롭다.
거기를 간다.
하얀 억새가 장관이요, 부산의 중심지 중구, 서구, 영도구, 사하, 사상구등의 시원한 조망
그리고 낙동강 노을이 아름다운 그 곳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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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낙동강 하구 을숙도(乙淑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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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 심재방
천만리 타관에서 훠이훠이 돌아왔건만
강이 바다를 얼싸 안고
바다가 강을 얼싸 안고
어머니 자궁 같은 을숙도乙淑島
새들의 고향!
누구는 저들을 철새라 부르고
혹은 나그네새라 부르는데
아니다 저들은 고향새인 것이다
바다가 그리운 강처럼
흘러간 세월만큼
저들도 고향이 그리워 돌아온 것이다
새들에게 무슨 다리란 말인가
새들에게 무슨 공원이란 말인가
늪과 뻘과 갈대가 그리운 고향새
고향이 그리워 찾아왔건만
그립던 고향이 아니로세
어머니 자궁 같은
평화와 고요가 그리워 돌아왔건만
고향이 타관 같아
고향새들이 끼룩끼룩 울면서 떠나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