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상하이.항주.주가각 역사문화탐방 3.

산꾼 미시령 2016. 2. 19. 10:04


상해 마당로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들어가면

윤봉길 의사의 의거지도 나오고 신발 신은 채로  비닐을 씌우고 들어가

 3층 좁은 게단을 오른다

,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임시정부의 활약을 다룬 영상도 관람할 수 있다. 

백범 선생의 집무실 모형앞에 서본다

1층엔 임정요인들의 단체사진이 걸려있고, 2층엔 백범선생의 사진이 있다.

3.1운동과 이어진 임시정부의 존재

우리의 헌법정신이요 우리나라 건국의 근거가 된다

이 좋은 시절에 관광 다니기도 힘든데

그 시절에 그 고통의 길을 걸어 가신

선열들께 머리가 숙여졌다

그 좁은 골목에 있었다

그 현장이...

그렇게 임시정부를 터를 떠나려한다.

오늘의 우리나라가 거져 얻어진게 아닌 것을 다시 다짐한다.

그 골목 에서 나오면 바로 이런 신 시가지이다.

이렇게 보존 된것만도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바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곳은 '신천지'라고 하는 곳..

상해에서 유럽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외국인들도 많고 전체적인 느낌이 고픙스러운 옛 상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거리에는 중국 공산당의 제1차

전국 대표자대회가 열렀던 곳의 표지판이 있다.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우린 또다시 역사적인 현장

'홍구공원'에 간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터이다. 

공원은 넓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운동,산책들이

평화로웠다.

윤봉길의 호는 '매헌'이다.

그 기념관은 180m를 간야한다.

고교시절, 충남 예산의 윤봉길 사당, '충의사'를 간적이 있다.

그 거사터 앞에는 이런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작은 2층집 기념관이 있었다.
1932년 4월 29일, 이 곳 홍구공원에서 일어난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는

사실상 조선 독립운동사에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 민족에게 독립에의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며

조선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세계에 알린 쾌거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젊은이가 능히 했으니 장하다.”고

 당시 장개석 총통도 높이 살만큼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중국에서 조선인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된 쾌거였다

 

 김구는 1932.4.29. 이 공원에서 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과,

 상하이 점령 전승기념행사에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

협의 끝에 윤봉길이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폭탄은 폭발물 전문가인 김웅에 의해 폭탄 투척에 적합한 도시락 모양과

물통모양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이 기념 행사에서 식사는 제공되지 않으므로

 일본측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각자 도시락을 지참시켰기 때문이다

   윤봉길의사는 폭탄을 도시락과 물통으로 위장한다

. 물통은 투척용이고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으로 ...


혹여 잡혀서 심문을 받지 않고 자결하기 위해서 도시락 모양의 폭탄도 만든 것이다.

폭탄은 두번의 실험을 거쳐 완성하였다.

그 기념관은 엄숙함은 보이지만

작고 초라한 2층 건물이다.

자결직전 체포당한 윤봉길의사는

11월 18일 일본 오사카[大阪] 위수형무소로,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25세였으니...

시신은 아무렇게나 수습, 가나자와 노다산 공동묘지 관리소로 가는 길 밑에

 표식도 없이 매장되었다. 사형 집행 전에 미리 파 놓은 2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봉분(封墳)도 없이 평평하게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윤봉길 의사가 수뇌부를 섬멸시킨 데 대한

일제 군부의 복수였을리..

1946년 6월 30일 해방 후 첫 국민장이 엄수되었고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그렇게 홍구공원의 걸음은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윤봉길의사가 두아들(모순(模淳)과 담(淡))
에게 남긴편지)

이제 우리는 상해의 '푸동지역'

그 중심의 '동방명주타워'를 간다.

그 주변의 빌딩등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동방명주타워'

1971년 7월에 착공, 1994년 10월에 완공한 방송 수신탑으로

총 468m의 높이란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단다.
지난 대만 여행때의 101층 빌딩이 생각났다

그 타워를 오르기 위하여 줄을 선다

지난 춘절 기간에는 6시간을 기다려야 했단다.

일반 관광객은 263m전망대까지

고속 엘리베이터로 10초만에 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사방 야경을 본다

 

그 야경의 화려함에 놀란다

'황푸강'을 오가는 화려한 배들도 보고..

강화유리 밑으로 아찔함에

앉아 보지만 겁나는 얼굴은 어쩔수 없다

동방명주타워 관광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내리면

1952년 창립 된 상해역사박물관에 도달한다.

   ​현재의 건물은 1996년 에 준공하였으며,

이곳은 상해를 방문한 여행자는

꼭 들러봐야 하는 곳 중의 한 곳이다.

근대사의 소욜돌이 속에서

수많은 아픔과 우여곡절을 겪은 상하이 역사를 잘 재현해 놓았다

아득한 옛부터 근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 모습들은 우리 역사를 보는듯 

동질감을 느낀다.

재판을 받는 근대의 모습도 보이고

맛사지를 받는 모습인듯 ...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웃는다.

사진.필름.밀랍인형.미니어처..

다양한 시청각 자료가 부러웠다.

밖으로 나오니

그 휘양찬란함에 정신이 없고..

자! 상하이의 마지막 밤에

우린 유람선에 오른다. 

상해 외탄 야경!

상해탄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황포강을 따라 조성된 시민공원이다.

황포강을 끼고 강 서쪽에 1.7km에 걸쳐 유럽풍의 72개의 주요건물들이

각기 다른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이곳은 홍콩과 같이

강건너 푸동지역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KBS드라마(아이리스)촬영지이기도 하다

 

'동방의 파리'라고 불릴만큼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들들이 이렇게 화려함을 비추고 있디.

건물 불빛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푸동의 야경은 상해여행에서

절대로 빼놓을수 없는 치고의 볼거리 였으니...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요

감격이었다.

아 이제 점점 불은 꺼지고

우린 혼미함으로 숙소로 간다

이제는 돌아가는 날 아침..

7시 나서야 하니 서둔다.

그렇게 3박 4일의 꿈 같은 여행을

추억으로 남기고 다시 푸동 공항을 이륙한다.

한 시간이 채 안되어

제주도 상공을 통과하는데..

시속 900K 속도로,

높히 8200 미터의 하늘에서

하얀 눈 덮힌 '한라'를 본다

백록담의 하얀 설경이 선명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창가 A석 덕분이다 

거제도의 모습이다.

오른쪽 위로 옥포만과 대우조선, 장승포 (오른쪽 위 작은 항구)

지세포(오른쪽 중간 만)

그리고 구조라 해수욕장(오른쪽 아래)이 선명하다.

그렇게 감사와 감격한

상하이, 항주 3박 4일의 여행은

깊은 추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이제는 유럽여행의 꿈을 가슴에 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