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강원도

평창.계방산(운두령-안부-1492봉-정상-주목3거리-노동계곡-야영장-이승복생가-아랫3거리(11.4K,5시간)

산꾼 미시령 2016. 1. 11. 09:40

1968년,12월 3.4.5일, 필자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과 부산은

이 해부터 추첨제로 바뀐 치열한 ‘중학교 입시’을 ‘청주중학교’에서 치렀다. 마지막 5일,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데, 중. 고학생들이 ‘새 역사를 창조하자’는 현수막을 들고 시내행진 하는 걸,

시골 소년은 경이로운 눈으로 봤고, 훗날 그것이 ‘국민교육헌장 선포’ 이었음을 안다.

 

 그러던 며칠 후, 12월 9일에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 산골, 9살 이승복과 어머니, 7살·4살의

두 동생등 네 명이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울진·삼척’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이 마을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세 가족을 몰살했다.

86살 노인과 젖먹이까지 죽였다. 칼로 찌르고 돌로 찍어서 웅덩이에 끌어다 버렸다.

 

 5명의 생포된 자들은 이 살육의 목적이 산간오지의 작은 마을에 혁명거점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승복의 아버지(37살)는 이웃집에 갔다가 죽임을 모면했지만, 그 날의 충격으로

40여년을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2014년 작고했다.

 생존자 형의 증언으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소리치며 저항했다는 현장 발 기사가

11일 조선일보에 특종 보도 되었다.

 이 이승복의 ‘항거’는 1969년 도덕교과서에 실렸고, 영화로 만들어 졌으며 각 학교등에는 오랫동안

이승복을 기념하는 웅변.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 등이 이어져 반공 아이콘이 된다.

 

 광복 70년의 한국 현대사는 어느 대통령의 공식적 동상도 세울 수 없었지만 ‘반공소년 이승복’과

 ‘효자 정재수’의 형상은 전국 국민학교에 세워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표상이 되었다.

 

 그 해 1월 김신조등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유일하게 김신조만 생포되었고, 10월에는 3차례에

걸친 130명의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가 침투했다.

 이 사건으로 110여명의 공비와 민간인.군경 40여명 등이 희생 되었고 우리 사회는 오래오래

‘반공’정신에 투철해야 했고, 다른 의견을 말하면 ‘저 건 사회주의자다’ ‘간첩이다’‘종북이다’..

봉쇄되고 억압된다.

 

  지금 살았으면 58세 돼지띠, 그런데 1992년 한 저널잡지가 이 ‘이승복 사건’이 조작 되었다고

보도하여 우리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교과서에도 제6차 교육과정 개편 때 제외되었으며,

중.고 시절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칩니다’ 좌.우 손을 순차적으로 치켜들며(이 때 시선은 손끝을 봐야

하는 거다)  외친 웅변선수, 필자의 충격은 더 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이승복’은 신화가 되었다. 반공소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고 전국의

초등학교에는 지금도 이 소년의 시멘트  조형물로, 산간 도서 폐교는 풀 속에 방치되기도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런 불행한 사건으로 우리사회는 다른 생각, 다른 표현을 철저히 막는 도구로 ‘반공’ 이데오로기가

되었다 우선은 조용하고 일사 분란한 것 같아도 그런 시대와 사회는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준다

 

 좀 시끄럽고 절차가 요란해도 이런 비판, 저런 의견이 충돌하며 가감될 때 우리사회는 더

건강해 지리라. 그런 면에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하며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겨운 ‘오솔길’ 첫 산행은 그 ‘반공소년 이승복’의 고향 ‘계방산’을 간다

눈이라도 소복이 쌓였으면 좋겠다

새로운 첫 해이니..

 

산행은 구름이 넘나든다하여 이름붙인 '운두령'에서 시작된다.

오르는 길 옆에 전국의 버스가 100대는 될듯 싶다.  이 고개는 1080m이란다.

엄청 올라온 것이다.

 '홍천군 남면'과 '평창군 진부면'의 경계이다.

제법 쌀쌀하다. 31번 국도가 지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도로인 줄 알았는데

더 높은 도로가 있다 태백.정선.영월의 경계점 '만항재'는 1330m 란다.

눈이 없으면 어쩌나 조바심하는 '남쪽'의 사람들에게

얼마가지 않아 눈이 남아있고 상고대가 서려있다.

계방산 정상까지는 4.1K이다. 운두령에서 채 500m 높이를 오르지 않는 거다

그러나 중간에 제법 가파른 오름도 있다.

아침에 살짝 눈이 뿌렸다. 그러나 이내 맑은 하늘이 되고

햇살이 따뜻하다 아! 이 상고대가 녹아버리면 어쩌나?

급히오르지만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마음도 급해지고 오를수록 경치는 더 활홀해 진다.

중간중간 안부가 있어 쉬기도 하는데

모진 바람에 힘든 세월을 살았다. 오래오래 거기 있기를 빌어본다.

이제는 정체다

바람이 불면 상고대는 눈발처럼 흩날리고 마음은 급해지는데..

그래도 정상에 늦게 올라  녹아버리면 안되니

우선 경치좋을 때 사진을 찍어두자

전국에서 모인 산군들..

활홀경의 마음은 한가지 이리라

이런 사진을 많이 본 탓일까

파란 하늘도 올려다 보는데...

어디나 눈길 닿는 곳마다

 놀람 그 자체이다.

바람이 불면 이렇게 눈보라 속처럼 흩날리고

온화한 바람과 햇살이 좋다

감사한 마음도 가득하고..

남쪽,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볼수 있으랴

오를수록 멋진 풍경과

파란 하늘은 더하고....

이렇게들 점심을 먹는다

가만보니 가운데 구멍이 나고

아래는

'사리마다'고무줄 모양 고무줄이 있다

나도 하나 살까?

같이 먹을 일행을 구하지 못할거다.

'상고대',상고대는 과냉각 물방울(영하의 기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방울)이

 영하의 기온에 놓여 있는 어떤 물체와 충돌하여 만들어진다.

이 물방울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충돌과 거의 동시에 동결되어 상고대층을 형성한다

이런 과학이야기는 골치 아프다

밤새 내가 '맹그렀다' 이게 좋다.

중간 중간 안부에서는

즐거움이 넘치고.. 동서사방 거침없는 풍광에 놀랜다

여기는 1492봉, 저 멀리 계방산 정상이 보이는데

즐거운 사람들이 점심을 나눈다.

우린 좀 더 가자

북서쪽으로 멀리 멀리...

설악산까지 보인다는데 오늘은 그 정도 조망은 아니다.

저렇게 '오대산'으로 뻗어가고

이름하여 '한강기맥'이란다..

남쪽으로도 바라보고

이제 정상을 향해 나아가

1K 남았고 약간의 오르막이 전부이다.

포근하다

모두들 동서남북

멋진 풍광에 시끄러운데

좌우 어디를 눌러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람도 많이 없다.

 그대로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

길고 그 오름은 한 줄로 정체길을 간다.

햇살과 하늘과...

황홀하다.

나무와 하늘과 구름

멀리 달려 온 모든 것이 아깝지 않다

이제 바로 정상이 눈앞이고

발걸음은 정체이고

마음은 급하다

눈 속의 추억만들기인가 누워 보는사람

빠져보는 사람...

즐거움이다

항상 李대장님과 둘만 남는다

우리 '오솔길'가족들은 뵈지 않는다. 늘 송구하고..

누가 그랬다 '계방산'은 3가지,

'한 바람  분다/ 한 눈한다/ 한 전망한다.' 란다

계방산 계곡엔  무장공비 사건이 날 때마다

뉴스를 탔다. 북으로 가는 통로인가 보다

가까이 진부면 '방아다리'약수터 계곡에서

온 가족이 여름날 여러번 야영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누가 이렇게 하늘과 나무와 눈을 만들겠는가

'계방산'은 가까이 '오대산'이 있고

그 오대산 입구는 '월정사'와 긴 계곡

그리고 그 끝에는 '상원사'가 있었다.

계방산(桂芳山:1,577m)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 설악산(1,708m),덕유산(1,614m)

다음으로 다섯번째 높은 산이다,

인내심 없는 우리는

이렇게 '박을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줄이 너무 길어 이렇게 ..

겨울 등산복은 배 나올 사진 걱정을 안한다.  

그렇게 올라온 길도 보며..

여기서 '노동리'방향으로 내려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좀 길게 타 보려한다.

저렇게 '오대산' 방향은 이어져 가는데...

저기 어딘가에 설악산 ,오대산,가리왕산, 그리고 두타산,태기산이

조망되는데 구별이 안된다.

바람을 피해 넘어 가서 점심 자리를

잡아보자.

내려온 곳에서

방금 내려온 돌탑의 정상도 올려다 보고..

아이젠이 아니면 힘든 내리막길이다.

미끄러져 내려온 길도 올려다 보며

겨우 한 자리를 골라

점심을 나누는데... 컵라면, 커피.. 꿀맛이다.

정상에 급한 환자가 생겼는지..

 헬리콥터가 한 참을 눈 바람을 이르키며 어렵게 태우고 내려간다.

안녕이기를 빈다.

그렇게 다시 길을 나서자

우리는 '주목3거리'에서 '야영장'.

'이승복 생가' 방향의 '노동계곡'으로 간다.

그 뱡향은 응달 때문인

엄청 눈이 남아있고..

풍경은 점점 더 짙어진다.

아! 여기다 주목지대!... 활홍한 풍경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주목'과 '구상나무'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구상나무'는 제주와 덕유산에 자생하고,  덕유가 북방한계선이란다. 

크리스마스 나무라고도 하고..

그러므로 '덕유산 향적봉'등은 '주목'이고 그 산 아래는 구상나무이며

덕유산 북쪽 산들은 '주목'인 것이다.

죽어천년 살아천년..

늘 푸른 바늘잎 나무로 속이 붉은 빛이라하여

'朱木'이란다.

여기저기 수백년 주목들이

고목이 되어간다.

마지막 눈 속이 아쉬어 자꾸 돌아보고

려온 길을 올려다도 본다.

'죽어천년'을 살아가는 '세월'도

경이롭게 올려다보며

미끄러져 간다.

무주의 '삼봉산' 생각이 났다. 거기보다 경사가 완만하여

정말 '비료부대'가 제격이리라

감사와 아쉼의 발길은 같은 가슴인듯..

조용히 내려간다.

즐거움에 시끄러움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말투로 구별된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이제 급격한 내리막은 없다

평온한 길로 조용히 걷는다.

그러다 보니 모든 오솔길 가족들도 뒤로하고

둘이서도 전진만 하느라 같이 찍어 보지를 못했다.

매번, 동료들과 같이 어우려져 가보자는 다짐이 헛 구호이다.

점점 눈이 없어지고..

계곡은 그래도 '오대산 국립공원' 추위를 실감하는데..

아쉼과 함께 시작된 임도..

그 길을 좀 지루했다.

정상에서 야영장은 5.4K 인듯하다.

정겨운 님과 함께 걷기가 좋은 길이다.

자동차 야영장.. 시설이 좋다는 느낌이다.

대학시절 저 너머 '상원사' 가는 계곡에서 야영했던 생각도 났으니...

'이승복 생가' 그 자리에 복원해 놓았다..

비극의 역사 현장..복원 되었지만

생가터 그 자리란다.

여기서 '기념관'은 4여K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걸어내려 와

복잡한 관광버스들이 대기하는

아랫삼거리에 닿는다.

방 두개를 빌려 뜨거운 동태국으로

밥을 먹는다. 행복감에 젖고..

 

 

 

사 랑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정호승 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