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충북내 각 고교 학도호국단 대표들 170여명은 지금의 아산 현충사 좌측에 위치한
‘충무수련원’에서 열흘간 훈련을 받았다. ‘이순신 장군’에 관하여 그 일생을 공부하기도 하고
아침마다 현충사를 참배하고 거기서 10여 Km 떨어진 충무공 묘소를 행군하기도 했지.
충무공이 나라 사랑하는 것처럼 유신체제 잘 따르라는 이념교육 이었던 거다.
심지어 사격 연습도 하고 눈물로 나라사랑을 강의하며 유신체제를 강조하는 교수의 강의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후 대학시절엔 유신철페 데모를 하다 서울북부서에서 열흘간
모진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니...).
하여간 이 일정 중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엄청힘듦’만 기억으로 남은 ‘대둔산 승전지를 행군,
참배했는데 이 때 대둔산을 처음 접하면서 대둔산에서 수천명의 국군,경찰이 희생됨에 놀랐었다.
아마 금산쪽 어딘가 그 전적비가 있으리라...
그 얼마 후 예쁜 여학생과 단 둘이 청주에서 버스를 타고, 몇번 갈아 타고.. 대둔산 정상까지
올랐고 출렁 다리에서 엄청 ‘여자다운 겁쟁이’ 인 척하는 여자 친구 손을 잡고 엄청 용감하고
겁 없는 척하며 건너던 기억이 남아있다. 예쁘고 착했으니 어디선가 잘 살겠지...
그런 추억이 있다.(그렇다고 바람둥이는 아니었다)
대둔산(大芚山)!
충남 논산시와 금산군, 전북 완주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금남정맥 제 4구간에 위치에
있음도,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14번째로 자리 잡고 있음도 그리고 내 고향 청주가
가깝다는 것으로 이 산을 새롭게 보게 된다.
특히 이 곳은 임진왜란 때에는 완주목사 권율(權慄) 장군이 2만여명의 왜군을 1.500명의
군사로 막아 냈고 이 대첩을 기념하여 이치대첩비를 세웠다고 하나 일제가 폭파하여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최후의 항전을 했으며' 6.25전쟁 때는 국군과 인민군이 대치하면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곳이라고 한다
주위에 오대산과 천등산 등이 있고 최고봉인 마천대(878.9M)를 비롯하여 곳곳에 기암괴석이
나타나고, 남동쪽과 북서쪽 사면을 따라 각각 장선천과 독곡천이 흐른다.
또한 충청도와 전라도에 속해 있다보니 신경전이 치열하다. 전북과 충남, 두 道에서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고 심지어 안내지도에 보면 완주군 발행은 금산군을 빼고, 금산군 지도는
완주군을 표기 않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헌신하신 분들의 추운날씨속 고생이 눈물겹다.
특히 오늘은 대장에서 부대장으로 강등(?)하신 송산님의 제공이란다. 감사 감사
(앗, 사모님 허가를 받은신거?)
금산의 고속도로 휴게소 '인삼랜드'다. 논산 육군훈련소에 오갈때면 이 휴게소를 드르는데
갈 때의 서운함과 올 때의 허전함이 늘 남아있었다.
정겨운 '오솔길'의 새로 임원진이 구성되고.. 첫 산행 만 차이다.
늘 정겨운 얼굴들이다.
용문골 입구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여기 오기전 배티[梨峙]는 과거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고, 지금도
여수에서- 내 고향 청주를 잇는 17번 국도가 통과한다.
이 고개는 임진왜란 당시 완주군 소양면 신촌(新村)의 곰치대첩과 함께 전라북도를
지켜낸 격전지였다.
산행 거리는 짧은데 가파르고 눈길이 힘들다..
A길을 잃어 버려 전원 B코스를 탄다.
회원들이 듬직하다. 어디가서 '까불어도' 무섭지 않으리라.
드디어 눈 구경을 시작한다.
겨울 산행의 풍경이 시작되고
아담한 암자이다 이름하여 신선암...
여기서 A 코스 길을 잃는다. 그래도 어딘 들 어떻랴..
점점 눈이 많아지고..
행복한 산길이다.
장군봉이 보인다.
아득하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오르는 길...
어떤 이는 케이블카를 타고 먼저 와 있다.
승강장에서 여유있게 넘겨본다.
우리 총무님, 아니 '감사'님으로 승진?
아득하다. 저 꼭대기 위에 서있는 분들이 너무 부럽다.
구름다리... 그 시절 내가 왔던 그 다리이다.
이 나무는 나와 예뻤던 여 학생을 봤을 까?
눈길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이다.
멀리 삼선 계단과 마천대가 보인다.
구름다리에서 내려다 본다 일방통행이니 내려갈 때는 저리로 내려가나 보다.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고 ..인생 길이리라..
위험하기도 하고 고되기도 하고...
지나온 구름다리를 본다.
아득하다 잘 잡고 올라가자.
'기암괴석' 괴암괴석' '기암기석' 뭐가 맞을까? ...1번이다.
겨울산의 풍광들...
여기서 오솔길 식구를 만난다 '되돌아보십시오' 그랬다 30대들? ㅎ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는 여유...오른 자의 여유이다.
이제 정상이 가깝웠다 간간이 상고대가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광
이윽고 정상 '마천대'이다. 웬 '뽈대?"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있게 길을 낸건 개척이리라
그래서 개척탑인가?
그래도 정상에 이 '뽈대'는 어울리지 않는다. 유홍준은 전국의 기념탑, 추모탑들의 천편일륜적인
'뽈대' 형태를 비판하는데 적극 공감한다. 천왕봉이나 대청봉의 빗돌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이 안 어울린다.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세월이 그리 앉았다....
누가 노래했던가
'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제 내려가야 한다. 인생이 그러하듯...
구름다리에서 내려다 봤던 그 길로 내려간다. 위에서 폰이라도 떨어뜨릴라 무섭다.
빨리 지나가야겠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끝없는 길이다...계속
‘동심바위’란다.
아이(童)자에 마음 심(心) .신라문무왕때 원효대사가 처음 이 바위를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이 바위아래에서 지냈다는 전설이 있단다.
하루종일 너무 큰 바위들을 본 까닭인가 원효보다 동심을 잃은 교만인가 난 3일?
3분도 올려 못본다. 내려갈 길이 바쁘다.
과학도의 자세인가? 수행자의 태도인가?
아니면 남의 뜻을 너무 따르는 현대인을 비판하는 것인가?
계곡의 겨울은 고드름으로 대변한다.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역사를 보면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하고 고종과 명성왕후를 위협해 갑오개혁을 단행하자
반외세반봉건 기치로 2차 봉기한 동학농민 혁명군이 공주 우금치 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남은 지도자 들이 대둔산으로 들어와 3개월 동안 최후로 항전한 곳이다
일본군에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대둔산의 바위벼랑에서 모두 몸을 던져 자결했는데,
삼선계단에 가기 직전에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표지가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된 전북 완주군 방향에서 많이들 오르기도 한다 9000원이란다
단체는 왕복은 8천이고...
새로 선임된 권정두 회장님(우측)과, 회장에서 계급이 강등(?)된 남 총무 이천만님...
인자한 미소가 오솔길의 앞날을 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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