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고창.방장산(方丈山734m/장성갈재- 쓰리봉-서대봉-연자봉-봉수대-정상-억새봉-벽오동-갈미봉-양고살재 10K.5H)
‘홍길동(洪吉同)’
홍길동은 조선 연산군 때 장성군 아곡리 아치실에서 서얼 신분으로 태어났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에는 부조리한 제도와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는데
그 시절이나 오늘 날이나 이 항쟁은 가진자 권세가들은 자기 지키느라 여념이 없고 힘없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이 나섰다.
홍길동도 서얼 신분으로 관리가 되지 못하고 고향 방장산 일대에서 세력을 키워 주로 탐관오리나,
토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을 구휼하였다.
한때는 하동 화개와 진주까지도 세력을 넓혀 관군과 대항한 인물로 알려졌다.
말년에 붙잡혀 가혹한 국문으로 세상을 뜬다.
100년후, 허균은 실존인물 홍길동 전을 최초의 하늘소설로 써냈고
그 경판본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꺽정,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3대 의적’으로 손꼽힌다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 방장산 아래 그의 고향에는 홍길동 생가와
테마파크가 조성되었다.
선운사의 고장, 고창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정읍의 내장산과 이웃하는 산,
방장산을 간다.
코로나등으로 어이하다 보니 동행한 지가 여러 해가 지났다.
멘토 이성묵 회장님과 같이 거기를 걷는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성갈재'
여긴엔 통일공원이 조성되었다.
(전남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퍽 오랜만에 '산내들 산악회'와 동행했다,
정겹고 활기찬, 그리고 헌신적인 봉사인들이 가득한 부러운 산악회다.
▲장성골재는 정읍과 장성의 경계이며, 홍길동의 활동 무대였다.
여기부터 오늘 걸을 종일 답사 길이
전북과 전남의 경계선.
▲코로나 등으로 오래 멘토와 산행을 못하다가
오늘 동행하였다.
백구대간과 모든 정맥길을 통달한 진정한 산악인이다.
▲산행은 출발하였고 쓰리봉까지 1.8K는
앞사람 엉덩이가 코에 닿는 가파른 길.
▲새로 편백 숲을 조성하려는지
작은 묘목들이 심겨졌다.
겨울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저기는 입암저수지,
우측으로 호남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린다.
▲여러번 쉬어야 하는 산을 힘들게 넘지만
쓰리봉은 아득히 남아있다.
▲류시화가 그랬다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허공에 시를 쓴다고...
▲ 그러면서 나는 12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하얀 눈 오는 날 여기를 걸으면
참 좋겠단 생각도 했지.
▲변산지맥 갈림길도 만난다
여기서 부터 변산반도의 내변산 등으로
뻗어가는 22K!.
▲쓰리봉이 여긴가 하여 서 보지만
여기가 아니였지.
▲나태주가 그랬다 너와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네가 없으면 인생도 사막이다/
오늘도 내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그리고 쓰리봉을 만난다.
함안 여항산을 '갓데미산'이라 부른것처럼
한국 전쟁 때 미군들이 이렇게 불렀단다.
▲여기서 동쪽으로는 내장산 줄기가 흐르고
장성의 여러 산줄기 실루엣이 그리움이었다.
▲출발지에서 1.8K 왔고
방장산 까지는 3.4K.
▲바람은 온화하고 햇살은 따뜻했다.
여름 계절의 요란함이 초겨울 풍경으로 잠들었다.
▲가야할 먼 길, 가운데 삼각뿔이 봉수대이고
방장산 정상은 좌측이다.
▲앞은 서대봉-연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서쪽으로는 고창들녘이 광활하다.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되어 눈 오던 날/
고운 감성의 이해인 수녀의 감성이다.
▲누군가 비닐속에 이름을 넣어
그렇게 걸어 두었다.
▲서대봉...
이미지가 안 떠오르고
그냥 부산의 서대신동만 생각났다.
▲그 다음 봉을 오르면 연자봉...
상사화로 유명했던 연실봉이 생각났고.
▲내장산에서부터 영산강을 곁으로 연산지맥이 흐른다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을 필두로 9정맥,
18기맥, 100여개가 넘는 지맥이 흐른다.
▲거기 따뜻한 자리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게
오찬을 즐긴다,
먹을건 별로 없어도 행복이 가득했으니.
▲큰 기대를 걸고
막바지 오르면 봉수대.
▲거기에 올라 지나온 길을 본다,
저 멀리 쓰리봉- 서대봉- 연자봉이었다.
▲거기 너른 전망대 같은 곳이 봉수대였다.
거기서의 사방은 거칠것이 없다.
▲어느덧 12월이 되고
세월 빠름도 실감하는 담소도 나누고.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
▲방장산은 저쪽 이라고 포즈를 취해 보지만
엉성함이야 세월탓만 이겠는가!.
▲거기서 포만감에 행복한 일행을 만난다.
산을 사랑한다는 것,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
행복한 순간이었지.
▲출발지에서는 6.2K를 왔고,
정상은 가까이.
▲저기가 방장산 정상,
동쪽으로는 내장산, 입암산,
백양산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오늘 산줄기중에는 동서를 넘나든 여러 재를 만난다.
장을 오갈 때, 전남, 전북을 넘을 때
고단한 나뭇꾼이 넘나든 고개이리라.
▲쓰리봉은 저렇게 멀어지고,,
역사의 고난마다 산적들도, 의병 영웅들도,
난리 때마다 민초들을 품어 살려낸 산.
▲갈색 산의 알몸을 드러내고
겨울을 이겨간다.
▲방장산.
너무 오르기 힘들어 되돌아갔던 이들이 '반등산'이라 했었것을 방등산이라했다가...
고창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심산으로 추앙 받아왔다.
▲전북의 고창, 정읍과,
전남의 장성의 경계를 이룬 산.
서쯕으로 광활한 고창의 들녘과 서해바다가 조망되었다.
▲고창, 고인돌의 고장이고, 복분자, 풍천장어등이
유명하다.
가을 선운사의 선운산을 아름답게 등산했던 추억.
▲여기는 서쪽 용추고개로 내려가는 삼거리,
용추계곡은 이 산의 4개 계곡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
▲옆으로 장성휴양림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임도를따라 페러글라이더 객들과,
산악 자전거 동호인들이 오가는 길.
▲거기엔 일찍 심었던 편백 숲이
아름드리 되어 휴양림을 이룬다.
▲연무로 인하여 기대했던 조망은 깨끗하지 못하지만
큰 기대로 억새봉을 오른다.
▲고창 들녘은 여전히 시원했고,
동쪽으로는 백양산,
그리고 홍길동의 고향 장성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지나온 길은 아름답고
편안해 지는 마음.
▲거기엔 페러글라이더
활공장이 있었다.
▲억새가 많아 억새봉 이었다가
최근들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되었다.
▲아래로는 고창 읍내가 선명하고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서해바다로 이어지겠다.
▲패러 글라이딩과 행글라이딩은 무엇이 다를까?
낙하산을 날개처럼 만들어 글라이딩 성능을 극대화 한 것이
패러 글라이딩이란다.
▲ 막 출발하는 라이더에게 물었다
날다가 강이나 나무위에 떨어지면 어쩌느냐고
바람이 심하면 그러 수도 있지만 그런 날은 탈 수도 없고.
▲ 보통은 양궁 과녁보다 더 정확히
착지 할수 있게 조정한단다.
▲거기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도 했고.
▲공중 높이 뛰어 오르기도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
▲다시봐도 아름답고
부러운 분들이리라.
▲거기에 여러 행사를 알수 있는
제단도 있고.
▲'방등산가 비'도 있었다.
'고려사 약지'에는 백제가요 다섯편이 전하는데 그 중
'방등산 곡'이 전하고 도적떼에게 잡힌 여인이
▲ 남편이 자기를 구하려 오지않아
애통해하는 내용 이지만
정읍의 '정읍사' 같이 원문이 내려오지않아 안타갑기 그지없다.
▲고창과 장성, 그리고 정읍의 여러 산야를 품고 있으니
오늘날은 힐링의 산인 샘.
▲산악 자전거가 다닐만큼 길은 편안해지고
하산을 채촉했다.
▲여기는 갈미봉...
친절한 봉우리 표식도 고맙지만
여러 봉들을 구테어 이름 붙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양고살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나뭇잎은 미끄러웠다.
▲방장사를 기대했지만 이 등로 아래에 위치했고
여기는 작은 암자.
▲그렇게 내려오면 지금은 아래로 터널이 생겨
차량이 많지 않은
'양고살재'.
▲이 고개는 고창과 장성의 경계,
따라서 전남과 전북의 분기고개다.
▲'양고살재' 이름이 독특하다
1636년(인조14) 그 치욕의 병자호란때 고창출신 박의 장군이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청의 누루하치 사위였던,
▲적장 '양고리'를 사살하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말 하자면 호국의 성지인 샘.
▲내려온 갈미봉은
저렇게 아득했다.
▲차가운 날씨 뜨끈한 어묵을 끓여낸
집행부의 손길이 고마웠고.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었으니...
자주 참가는 못해도 '산내들 산악회' 영원한 발전을 빈다.
▲서쪽 방향으로 7K엔 고창읍이 위치한다.
고창읍성과 고인돌 공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구역의 고을이다.
▲이제 거기를 떠난다. 이제는 어느 산을 가든지
내 생전에 다시 못 올지도 모른다는 아련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그렇게 오래만에 멘토와 함께 걸은 아름다운 길...
석양의 고속도를 달려 동으로 동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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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엽서 / 이해인
12월엔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 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주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 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 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주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