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창녕.화왕산(火旺山.757m/옥천매표소-관룡사-청룡암-관룡산-세트장-동문-배바위-서문-정상-동문-산장-옥천주차장.11K.5H)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장기조직 시신 기증서”
어느 날 TV에 88세 한 멋진 노인이 소개되었다. 작은 텐트 앞에 서서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면서
‘기러기는 200년을 사는데 시베리아서 우리나라로 온다. 저 기러기는 100년전 톨스토이나, 차이코프스키를
봤을지도 모르고, 도스토예스키는 사후 150년 되었으니 그도 봤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88세 박상설이라는 노인인데 길 없는 산을 오르고, 강 가나, 넓은 평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누릉지를 끓여 마른 멸치 몇개와 볶은 김 부스러기를 먹으며 자유를 만킥한다.
그의 목에는 작은 손 가방이 걸렸는데 그 안에는 ‘시신기증서, 작은 편지, 그리고 돈 몇 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 편지에는 ‘누구든지 시신을 발견하거들랑 이 돈을 경비로 사용하시고 가족, 친지에겐 알리지 말고 시급히
시신기증 대학병원으로 연락해 주세요’ 그렇게 써 있었다.
오래전 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받다 죽느니 사전에 나를 산에 버리고 산을 헤메기로 했단다.
그렇게 산에 나를 버렸더니 산은 나를 살리더라는 것...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평소 나의 생각을 어쩌면 저리 정확히 걸어가실까? 그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그리하여 막연히 언젠가는 해야지 했던 절차를 지난 주 완료했다.
하나는 장기시신을 기증하는 절차이다.
‘국립 장기조직 혈액관리원’에 인터넷으로 장기,시신 기증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즉,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의향서를 제출하여 ‘국가연명관리기관’에 등록 완료했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상의하면 못하게 할게 뻔하니...
아마 두 주간 정도면 양 기관에서 ‘증’이 올거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살려고 병원도 가고, 주사도 맞겠지만 하나의 ‘죽음의 준비’를 완료했다.
늦 석양이 온 하늘을 물 들이듯 세상을 변화시키고 마지막 영향력을 발하는 멋진 노년의 꿈이 얼마나 교만하고
뭘 남기려는 자체가 부끄러웠는지...
조금 더 일하고 완전히 은퇴하여 작은 차에 텐트 하나를 싣고 전국을 여행할거다,
그리고 걸을거다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어느덧 가을이 깊어간다.
진정한 자유인되어 그리움따라 바람따라..
억새 출렁이는
가을 화왕산을 걷는다.
▲'혼산'의 장점은 일어나 생각나는 대로,
코스도 오면서 발길 닿는 대로.
▲관룡사 석장승
(경남민족문화재 6호).
▲볼적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이 재미있다.
▲관룡사. 좌측으로는 600m오르면 용선대.
청룡암은 0.7K.
▲ 너무 이른 시간,
오늘은 옆으로 스쳐간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2K.
여기서 능선까지는1K.
▲관용사는 절의 규모에 비하여 국보, 보물이 많다.
▲가파르게 700m를 오르면 청룡암.
▲ 깍아지른 절벽아래 자리잡은
소박한 암자.
작은 마당에 서면 영축산 능선, 비들재 능선이 아름답다.
▲세월과 온갖 정성이
기둥마다 서리고.
▲하나하나 올린 정성이
아름다운 산신각.
▲거기를 나오면 능선까지
허기질 정도의 가파른 길.
▲ 능선을 만나고, 우측으로는 '시밋골 노다이'라
불리는 곳이 나오고
10K, 영취산-종암산으로 이어지면 부곡온천까지도 간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은
10여년이 넘는 아득한 세월이 지났다.
▲지금은 안전 시설이 잘 갗춰진 곳,
바람불던 그 시절 위험스런 길이었다.
▲ 암릉 길은 위험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고.
▲ 저 곳을 올라보기로 했다.
거긴 엉덩이 같은 바위가 있으니.
▲ 암능길 묘미는 아찔한 것.
▲북쪽을 향해 찰각.
▲ 여기를 올 때마다 느끼는 여인의 둔부 같은 바위.
야릇한 생각은 위험한 길을
내려가야 하는 이의 태도가 아니지.
▲거기서 바라보는 비들재 능선,
산 아래로는 용선대가 보였다.
▲높은 능선을 오르면 만나는 관룡산.
거기서 수 많은 계단을 내려서면
용선대-관룡사를 만난다.
▲거기는 조망은 없고
누가 허겁지겁 올라온다.
그도 나도 서로를 사진 찍어주려 새벽부터 달렸나 보다.
▲ 봄이면 진달래 꽃 길이었던
길을 내려가면.
▲옥천 매표소에서 임도따라 올라오는 네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북쪽으로 고암면 감리로도 가고,
서쪽으론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걷는다.
▲드라마 셑트장, 상도, 허준, 왕초등
수 많은 영상이 만들어진 곳이다.
▲그 앞으로는 봄 날
진달래가 만발하는 군락지.
▲ 어느 길이나 사람이 있어야 영상이 된다.
남녀의 걷는 길은 더욱 아름답고
혼산의 나는 쓸쓸하다.
▲그렇게 동문으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억새밭...
중앙 길은 동문으로 가는 길,
오늘은 배바위 쪽으로 올라 시계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어느시절 산상 음악회가 여기서 펼쳐졌는데..
그 너른 억새밭이 망가져 갔었다.
▲가까이는 화려한데
전체적으로 예년보다 많지 않은 느낌.
▲천연의 요새인 기암절벽을 이용하여
조성한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크게 명성을 떨친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장군과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던 호국영산이다
사적 제64호.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을
'떼메식 산성'이라 한다.
▲2.7K에 이르는 십리길 산성,
비화가야 시대부터 조선까지 이르렀으니
민초들의 힘겨운 삶이 담겨있는 곳.
▲6만여평의 대평원에 십리 억새밭.
화왕산 억새밭은 산 위에 펼쳐지는 광활한 대초원이다.
▲억새와 갈대의 차이...
개화시기가 같고, 생김새도 비슷하니 혼동하기 쉽다.
▲억새는 물을 싫어하고
갈대는 물가에 산다.
▲그냥 그것만 기억하자. 물 가의 갈대는
고구마 줄기처럼 그렇게 뻗어가
다시 뿌리가 내리고 번식을 하지.
▲하긴 오래전 창녕에서 시행하는 축제를
'화왕산 갈대제'라고
수년간 이름 붙였으니...
▲그 시절 밤에 오르면 저 아래 서문 옆에 천막을 쳤고
쇠고기 국밥이 맛 있었다.
한 줄로 이어선 횃불과 동시에 붙여진 불 세상이 볼만했었지.
▲그러다가 바람 몹시불던 2009년 정월 대보름 날.
2만명 산객들이 불 꽃 날리는 산불이 된 현장에서 난리였고.
▲이 배바위끼지 날아든 불꽃에 7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가 발생했다.
▲아픈 현장도 세월이 가면
씻기는 것..
▲ 노아홍수 같은 물 난리에 배가 떳고
이 바위에 배를 묶었다하여 배바위라 한다니....
▲거기서 바라보는 서쪽의 창녕읍,
그리고 저 멀리 낙동강 강가로 이어진
드넓은 들판.
▲ 멀리 보이는 곳이 정상이다.
▲서문에 도착하면 그 시절
가을이면 즐비했던 온갖 장사치가 정화되어 아름답다.
▲되돌아보면 배바위가 저 멀리 있고.
▲ 정상으로 오르는 중
온갖 바위 이름들이 오르는 이의 힘듦을 상쇄한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귀정되고나면
창의적인 상상력은 없어지는 것.
▲글고 보니 미소라긴 좀 그렇지만
산적 미소 같기도 하다.
▲정상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가면 3등산로,
소나무가 많고 가파른 길 이었지.
▲가을의 꽃들은 곳 곳에 서리고.
▲다시 그 화왕산에 선다.
▲힘들여 온 이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서문에서 올라온 길을 다시 봐가며
동문 방향으로 걷는다.
▲ 누군가의 고향, 추억이 서린 창녕읍,
국보인 진흥황 척경비와 술정리 탑, 석빙고, 그리고 교동 고분군..
비화가야의 역사의 고장이다.
▲진달래, 철쭉 시절에는 여기서
정상 방향을 보는 풍경이 활홀했다.
▲그 건너 정상쪽의 진달래는
넋을 놓게 했었으니.
▲거기 바위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다.
▲이 뱡향은 동문쪽,
건너 산이 관룡사 뒷산, 관룡산.
▲거기서 커피도 마시고, 요기를 한다.
작은 배냥을 지고오면
참 유익함이 많다는 생각.
▲ 저멀리 어딘가 있을 자굴산, 황매산,,,,
천왕봉도 있겠다.
▲ 남동으로는 천주산,
작대산등등이 아련하고.
▲거기를 떠나며
어느 미소가 선한 여인에게 부탁했다.
▲걱정을 해소하는 바위.
그렇지 털어버리는 곳.
▲ 문득 그리운 영남 알프스도 생각나고
지난번 걸었던 소백산 연화봉 길도 그립다.
▲억새야 억새야 억새야 가을억새야
무슨 시름 그리 많아/
하룻밤사이 서리 내린 듯
하얗게 세었느냐/
▲억새야 억새야 억새야 가을억새야
무슨 미련 그리 남아/
하룻밤사이 눈이 내린 듯 피웠느냐/
▲님은 떠났는데 님은 떠났는데/
나만 흔들리네 나만 흔들리네
(이경섭 노래)
▲여기에 서서 바라보니,
천관산 억새, 황매선 그 곳...
그래도 신불산- 영축산은 하늘 억새길이 더욱 그립다.
▲가을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도종환의 마음이 이랬을까?
조금 햇살이 아쉬웠던 날.
▲ 몇 걸음 걷다가 앉아 멍하니
평화를 보고.
▲ 억겹의 세월이 쌓인
풍경을 보기도 했지.
▲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
▲그리운 길,
조금은 아픈 길.
▲머지않아 여기에도
하얀 눈이 내릴때가 오겠지..
그 때쯤 다시 한번 달려오고 싶었다.
▲가을은 흔들흔들
가을벌판에 가서/
흔들흔들 벼들과
같이 춤추고.
▲감사한 하루,
그리움과 외로움이 교차한 시간들.
▲잘 보이지 않게
잘 떠올리지 않게 그리고 아프지 않게
그렇게 나도 세상을 떠날 때 그러자고.
▲뒷 모습은 누구라도 쓸쓸하지
억새 하늘 거리는 거기도 그랬다.
▲누군가 마중 나와 여기서 만난다면
꿈 같은 상상력도 펼쳐보고.
▲온갖 자연이 나를 향한 것처럼
그 다정함이 그리웠기에...
▲아제 시계방향의 길들이
마감되어 간다.
▲ 그래, 그래 봄되면 아니
하얀 눈이 내린다면 다시 오리니....
▲그렇게 길을 재촉
드라마 섿트장을 지나고.
▲고개에서 우측
산장 방향으로 걷는다.
▲ 산장을 지나고 재미없는
긴 포장 도로가 가팔랐다.
▲내가 하는 일, 내가 가는 곳,
내가 만나는 사람....
▲ 인생이란 영원한 직진은 없는거야
그러니 두려워 말자.
▲길은 끝이 나고
드라마 같던 5시간 산행은 아쉼을 남긴다.
▲역사의 고장, 인구 6만의 창녕,
거기에 사는 사람, 거기에 살았던 사람
거기를 그리워 하는 사람.
모두 행복하여라....
▲일찍 나서서 달려왔던 하룻 길,,
다시 그리움이 되고 천천히
그 옥천계곡을 내려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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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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